나발니 구속 후폭풍…거칠 것 없던 푸틴, 제대로 ‘임자’ 만났다
  • 클레어함 유럽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2.07 10:00
  • 호수 163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독약 테러 피해자 알렉세이 나발니 징역 선고에 러시아 시민과 국제사회 분노
푸틴 정권, 시위 확산하자 야권과 시민사회에 ‘전쟁 선포

러시아 반정부 저항운동의 상징이 된 야권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가 올해 노벨 평화상 후보로 추천됐다. 1월31일 로이터통신은 러시아 학계와 노르웨이 기후환경부 장관을 역임했던 올라 엘베스투엔이 나발니의 “러시아의 평화로운 민주화를 위한 노력”을 기리기 위해 그를 추천했다고 전했다. 

러시아 특수경찰들과 나발니를 지지하는 시위대가 1월23일 모스크바에서 격렬하게 충돌하고 있다.ⓒEPA연합

하지만 나발니에 대한 국제사회의 폭넓은 지지에도 러시아 사법부는 2월2일 그에게 3년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했다. 이번 집행유예 판결 취소 공판에서 나발니에 대한 집행유예는 실형으로 전환됐다. 그는 동생과 함께 2014년 프랑스 화장품 회사 ‘이브 로셰(Yves Rocher)’의 러시아 지사 및 하청업자와 관련된 횡령(약 5만 달러) 사건으로 기소돼 징역 3년6개월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은 바 있다.

이미 가택연금으로 보낸 시간을 제외하면 앞으로 2년8개월의 형량이 남은 셈이다. 이에 나발니와 그의 변호사는 집행유예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러시아 당국의 주장에 항의했다. 나발니는 지난해 8월 독약 테러를 당한 후 베를린에서 출국 이틀 전인 1월15일까지도 재활치료를 받은 의료기록을 전송했으며, 자신의 위치 등에 관해 통고했는데도 당국이 고의로 허위정보를 알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변호사 측은 항소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한편 이 사건을 담당했던 모스크바 시노놉스키 구역법원의 재판장은 판결 직전 사임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월28일(현지시간) 모스크바 외곽 노보오가료보 관저에서 화상으로 열린 내각회의를 주재하고 있다.ⓒ타스연합뉴스

《푸틴의 궁전》 폭로에 대한 정치보복

나발니가 유죄 판결을 받았던 이브 로셰 사건과 ‘키로프레스(Kirovles)’ 사건 모두 유럽인권법원이 “자의적이고 명백히 불합리하다”는 판결을 한 바 있어 나발니 징역 선고는 러시아 당국의 정치보복이라는 평가가 압도적이다. 나발니는 이브 로셰 사업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고, 관련 증인들도 재판 전 그를 전혀 본 적이 없다고 증언했다. 아울러 이브 로셰 측도 재정 손해가 없었다고 밝혔다. 나발니는 법정에서 유럽인권법원의 판결은 ‘유럽회의(Council of Europe)’ 회원국인 러시아 사법체계의 일부이기에 그 결정을 따라야 한다며 심지어 러시아 정부는 이 판결을 일부 인정해 보상금까지 지불했다고 말했다.

싱크탱크 ‘카네기 모스크바센터’의 알렉산더 바우노프 선임연구원은 나발니가 법적으로 가능한 최고 판결을 받은 이유는 그가 푸틴 대통령을 공격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나발니가 의식 회복 후 독일 슈피겔과의 인터뷰에서 푸틴을 독약 테러의 배후로 지목했고, 최근 《푸틴의 궁전》이라는 폭로 다큐로 그를 공격했기 때문이라고 봤다. 이 폭로 다큐는 1월19일 유튜브에 업로드된 후 조회 수 1억 회를 넘어섰다.

나발니는 2011년 이래 러시아 고위 인사들의 부정부패를 조사해 폭로하는 반부패재단을 운영해 오고 있는데, 러시아에 40개 지부가 있다. 640만 명의 구독자를 가진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러시아 국민과 직접 소통하는 능력도 푸틴 정부에 큰 위협으로 여겨진다. 그는 2019년부터 집권여당을 이길 가능성이 가장 높은 후보를 알려주는 ‘스마트 투표(Smart Voting)’ 앱을 통해 선거 참여를 독려했는데, 지난해 모스크바 시의원 선거에서도 일부 여권 후보가 낙선하는데 기여했다. 오는 9월 국회 선거를 앞둔 푸틴 정부가 긴장하는 이유로 분석된다. 나발니는 3년 전 대통령선거 공약으로 반부패, 교육과 보건의료, 환경, 문화부문 투자, 중산층을 위한 저렴한 주택 공급, 최저임금 상승 등을 약속했으나 후보 등록 자체가 허용되지 않았다.

나발니는 그간 집시법 위반으로 수차례 감옥에 보내졌고, 2019년 수감 때도 독약 테러를 당했다고 주장했다. 당국은 지난해 반부패재단 본부를 압수수색하고 그와 가족의 은행계좌를 동결하는 등 정치적 압박을 이어왔다. 나발니는 공판 발언 중 “푸틴은 토론이나 선거 캠페인에 참여하지 않고 살인만이 유일한 싸움의 방식”이라며 “역사에 ‘블라디미르 팬티 독약살해자’로 이름을 남길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또한 “러시아의 평균 수입은 한 달 265달러(약 29만원)”라며 2000만 국민이 빈곤선 이하의 희망 없는 삶을 살게 만든 현 정부의 실정을 비판했다. 그는 시민들에게 “부디 정부가 러시아 전체를 다 수감할 순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내 재판을 통해 더 두려워하지 말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나발니의 판결 결과에 러시아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크게 반발하고 있다. 푸틴 정권의 야권 탄압이 정점에 달했다는 비판이 많다. 독일의 메르켈 총리를 비롯한 유럽연합 지도부에서도 나발니와 집회 참가자들의 즉각적 석방을 요구하며 추가 제재를 논의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라트비아의 독립언론 ‘메두사’도 사설을 통해 이 판결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메두사는 “게임의 규칙을 거부하는 야권 인사들에게는 ‘죽음 아니면 감옥행’이라는 두 가지 선택밖에 없다는 정부 입장을 수치심 없이 보여주고 있다”고 질책했다. 또한 “나발니는 오랜만에 러시아의 정치 독점에 도전하는 데 성공한 첫 정치인이고, 미래에 변화가 가능하다는 희망을 주었지만 이 판결이 이마저도 짓밟았다”고 평가했다.

1월18일 러시아 야당 운동가 나발니(왼쪽)가 귀국하자마자 경찰관에게 끌려가고 있다.ⓒ타스연합뉴스

“오랜만에 러시아 정치 독점에 도전한 정치인”

카네기 모스크바센터의 안드레이 콜로스니코프 선임연구원은 나발니 수감에 대해 “사법 시스템 및 외교부의 붕괴를 뜻한다”고 평가했다. 지난 2003년 당시 러시아의 최고 재력가 미하일 호도르콥스키가 탈세, 돈세탁 등의 혐의로 기소돼 10년간 구속되자, 그 여파로 러시아와 서방 간 불편한 외교관계가 생긴 것과 비슷한 무게를 가진다는 분석이다. 2001년 민주주의와 인권 옹호를 기치로 ‘오픈 러시아재단’ 을 창립했던 석유회사 유코스의 최고경영자 호도르콥스키는 ‘정치에 관여하지 말라’는 푸틴의 경고를 무시하고 복수 야당의 선거 캠페인을 재정 지원했다. 당시 러시아 부총리였던 미하일 카시야노프는 이후 다큐 《블라스트(Vlast)》(2010)에 출연해 그가 기소를 당한 것은 과거 야당과 진보단체 지원에 대한 정치탄압이라고 증언한 바 있다.   

“러시아의 혼란과 시민 탄압 더 극심해질 것”

지난해 러시아 의회에서는 ‘외국의 영향 및 외국 스파이와의 싸움’이라는 명목하에 헌법 개정이 있었다. 이로 인해 사실상 러시아 내 시민사회단체 및 독립언론에 대한 해외 기부의 길을 막은 ‘외국 스파이법(Foreign Agents Law)’ 개정안이 통과됐다. 이 법은 외국 국적의 개인 및 외국 정부로부터 재정지원을 받을 경우 의무적 신고와 함께 정부 요구 시 조사받을 것을 규정하고 있는데, 이를 어길 경우 최대 1만 달러(약 1100만원)의 벌금과 2년 징역형을 비롯해 집회 금지, 계좌 접근 제한 등 각종 규제를 받게 된다.

오슬로대학 박노자 교수는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이런 법률은 푸틴의 지지층을 결속시킨다고 지적했다. 그는 “러시아엔 미국을 적대시하는 사람들이 60%가 넘는다. 푸틴의 지지층은 ‘미 제국주의’를 세계에 대한 최악의 위협이라고 여기고 푸틴을 이에 대항하는 지도자로 보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며 “일부 복지정책과 ‘항미(抗美) 민족주의’야말로 푸틴 정권 장수의 비결”이라고 분석했다. 또한 그는 이런 배경에서 대(對)러시아 제재 조치에 대해 회의론을 내비쳤다. 경제 제재 조치의 경우 민생에 위협이 될 뿐만 아니라 “러시아를 혐오하는 서방”과 “나발니는 서방의 자산”이라는 푸틴의 프레임만 더 강화시킬 뿐이라는 지적이다. 

러시아 정치분석 연구소 ‘R.Politik’의 타티아나 스타노바야의 향후 정세 분석도 주목된다. 그는 나발니에 대한 러시아 법원의 징역형 선고에 대해 무용담의 첫 장일 뿐이며, 향후 나발니를 탄압하기 위한 잠재적 형사기소는 충분히 많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2021년이 러시아 정권과 사회에 무엇을 가져올 것인가’라는 제목의 글을 웹사이트에 공개하면서 그는 지난해 통과된 러시아 헌법 개정이 가져올 심각한 시민권 침해를 우려했다. 그는 올해 반정부 성향의 매체와 블로거에 대한 푸틴 정권의 정교하고 강력한 탄압이 예상되며 야권과 인권단체, 시민사회에 대한 전반적인 전망이 매우 우울하다고 내다봤다.

스타노바야는 현 정권이 친(親)푸틴에 반하는 모든 것을 잠재적 국가안보의 위험으로 여기는 가운데, 점차 대화 능력을 상실하고 국가와 사회 간의 긴장을 증가시키고 있다고 분석했다. 또한 국민을 ‘우리’와 ‘그들’로 나눠 분리 통치하는 메커니즘을 만든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집권 세력은 집회를 통한 시민의 저항이나 지지율 저하에 크게 동요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들에게 나발니나 집회에 참가하는 시민들은 단지 공공의 적이며 외국 간섭의 구실을 제공하는 수단일 뿐이라는 인식 때문에 집회의 자유 보장은커녕 대화나 양보의 가능성을 철저히 배제하리란 것이다. 즉 대규모의 광범위한 시민사회의 저항이 있지 않는 한 수많은 체포와 기소, 탄압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라디오프리유럽(Rferl)’ 보도에 따르면, 1월23일 나발니 석방 집회가 시작된 이래 이미 1만 명 이상이 체포됐고, 집회에서 곤봉과 전기충격기 등 경찰의 지나친 폭력과 고문을 보여주는 동영상, 증언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스타노바야는 “다만 푸틴 정권은 20년 만에 처음으로 대중의 불만을 통제 가능한 방향으로 전환할 수 없는 전혀 새로운 상황에 직면했다”며, 정부가 탄압을 선택하겠지만 아울러 푸틴을 축으로 한 지지를 공고히 하기도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러시아 사회는 더 심각하게 양극화되고 미래를 예측하기 어려운 시대를 맞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나발니가 쏘아올린 공으로 인한 푸틴 정권과 러시아 시민사회의 맞대결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