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H는 어쩌다 괴물이 되었나
  • 공성윤 기자 (niceball@sisajournal.com)
  • 승인 2021.03.12 16:00
  • 호수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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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강한 독점 권력 이용한 회사의 돈벌이에 직원까지 가세
“해체시켜 복지부 아래 둬야” 주장도

‘국민주거생활의 향상과 국토의 효율적인 이용을 도모하여 국민경제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한국토지주택공사법 1조에 나와 있는 LH의 목적이다. 이는 2009년 LH 설립 때부터 바뀐 적이 없다. 하지만 LH를 둘러싼 지금의 행태는 국민경제 발전과 거리가 멀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3월11일 LH 직원 투기 의혹 1차 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20명의 투기 의심자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앞서 참여연대가 의혹을 제기한 13명 외에 7명이 더 늘어난 것이다. LH는 대체 어떤 곳이기에 목적과 다른 길을 걸어왔을까.

“LH는 토지수용권, 용도변경권, 독점개발권이라는 3대 권력을 갖고 있다. 대통령이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이는 서민의 주거 안정만을 위해 사용하라고 위임해 준 권력이다.” 김헌동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부동산건설개혁본부장의 말이다. 그는 지난해 11월 펴낸 저서 《김헌동의 부동산 대폭로》를 통해 LH가 틀어쥔 권력이 유례없을 만큼 막강하다고 비판했다. 그 말대로 LH는 토지의 취득부터 개발, 비축, 관리, 공급, 그리고 임대사업까지 도맡아 하고 있다. 개성공단을 비롯해 추후 북한과 토지 개발을 이끌어갈 주체도 LH다. 문제는 이 많은 사업권을 지나친 수익 추구에 이용하면서 불거졌다.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왼쪽 둘째)과 장충모 한국토지주택공사 사장 직무대행(오른쪽)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3월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최근 벌어진 LH 직원들의 투기 의혹과 관련해 허리 숙여 사과하고 있다.ⓒ시사저널 박은숙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왼쪽 둘째)과 장충모 한국토지주택공사 사장 직무대행(오른쪽)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3월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최근 벌어진 LH 직원들의 투기 의혹과 관련해 허리 숙여 사과하고 있다.ⓒ시사저널 박은숙

“경쟁 필요 없다”더니 민간사업 참가하고 땅 장사

지난 2009년 10월 LH 출범식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민간회사와 경쟁할 필요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민간기업이 이익 나지 않아 일 안 하겠다는 부분을 보완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 약속은 불과 한 달도 안 돼 무색해졌다. 민간이 주도하던 경기도 성남시 대장동 도시개발사업의 주도권을 가져오기 위해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국회에서는 “민간 영역에서 경쟁해 돈 되는 개발사업만 독식하려는 전략으로밖에 볼 수 없다”는 비판이 나왔다.

서민 주거안정이란 명분을 내세워 돈을 챙겼다는 논란에도 휩싸였다. 2010년 LH는 서울 서초구 우면동 A2 블록에 아파트를 분양했다. 이명박 정부에서 ‘보금자리주택’이란 이름으로 추진한 공공임대주택이다. 당시 LH가 발표한 분양가는 3.3㎡당 1020만원. 그런데 LH는 인근의 A1 블록을 민간 건설사에 팔았고, 1년 뒤 이곳에 지어진 아파트는 분양가 1900만원을 기록했다. 같은 지역에 들어선 아파트임에도 가격이 2배 가까이 벌어진 것이다. 이 과정에서 LH는 택지 매각으로 4300억원의 차익을 본 것으로 알려졌다. 경실련은 “보금자리 아파트가 LH의 땅 장사, 건설사의 집 장사 수단으로 전락했다”고 주장했다.

보금자리주택을 비판하며 출범한 박근혜 정부에서도 논란은 계속됐다. 2013년 정부는 공공임대주택사업을 ‘행복주택’으로 바꿔 LH에 맡겼다. 그러면서 행복주택 의무 운영기간을 30년으로 정했다. 주거안정의 틀인 장기공공임대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다. 그런데 30년이 지나면 토지와 건물을 모두 팔겠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뒤늦게 드러났다. 공공성이 강한 임대주택 용지를 수익 실현 도구로 이용하려는 셈이다.

한편에선 공기업의 근본적 딜레마 때문에 비판을 피할 수 없다는 시각도 있다. 설립 취지상 공공성을 우선해야 하지만, 막대한 빚을 감당하려면 수익성도 추구해야 하기 때문이다. LH는 2009년 출범 이후 매년 부채가 100조원이 넘었다. 지난해 상반기에는 131조원을 기록했다. 이는 결국 세금 부담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크다. 수익을 추구하지 않으면 국민경제 발전이란 목적과 오히려 더 멀어질 수도 있다.

단 공기업의 수익 추구와 직원의 사익 추구는 별개다. 직원이 회사 이권을 개인적으로 이용했다면 직권남용이나 직무유기에 해당할 수 있다. 게다가 이번 LH 투기 의혹은 허위공문서 작성을 포함해 금융실명법·농지법·건축법 위반 등도 걸린 문제다. 그럼에도 직원들은 수차례 선을 넘었다.

 

회사 수익·직원 사익 별개인데…각종 비리 판친 LH

2009년 국민권익위원회는 LH 직원이 부동산 업자에게 향응을 받은 사실을 적발했다. 공공임대아파트 임차권을 양도 승인해 주는 권한을 악용한 것이다. 같은 해 또 다른 LH 직원은 신도시 공사에 참여할 건설업체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뇌물을 받아 구속됐다. LH 출범 전후로 2년간 금품·향응 수수 등으로 징계를 받은 직원은 68명에 달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비리는 이어졌다. 2018년에는 LH 직원 2명이 구속됐다. 브로커들에게서 뇌물을 받은 혐의다. 3월8일 김상훈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2019년 LH 내부 부패행위는 23건으로 나타났다. 2014년(3건)과 비교해 약 8배 증가했다.

 

“주택 보급률 100%…국가가 왜 신도시 만드나”

권력의 부패는 비단 LH만 경계해서 될 일이 아니다. 서울주택도시공사(SH)와 경기주택도시공사(GH)도 같은 권력을 쥐고 있다는 점에서 감시의 필요성이 제기돼 왔다. LH 투기 의혹이 공론화되자 이들도 주목을 받게 됐다. SH는 3월9일 “14개 사업지를 대상으로 직원 및 가족의 매입 전력을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또 GH가 참여한 경기도 남양주 다산신도시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정부 조사 범위에 포함될 계획이다. 전상직 한국자치학회장은 “공기업이 항상 공공의 선을 추구하는지에 대해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며 “공(公)’ 개념의 재정립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김헌동 경실련 본부장은 아예 ‘LH 해체론’을 주장했다. 그는 “주택 보급률이 60~70%일 때는 LH가 신도시를 조성해 서울의 집값을 낮출 필요가 있었다”며 “지금은 100%가 넘는데 왜 국가가 나서서 신도시를 만드나”라고 지적했다. 그런 차원에서 김 본부장은 이번 LH 사태의 시발점이 된 3기 신도시 건립계획을 취소하고 투기꾼이 손해를 보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짓지도 않은 아파트를 이용해 돈을 버는 건 투기꾼과 언론뿐”이라며 “이들 말만 듣는 정부가 과연 옳은가”라고 꼬집었다.

김 본부장은 LH를 ‘주택청’으로 만들어 보건복지부 산하에 둘 것을 제안했다. 부동산 정책을 복지 차원으로 접근해 공공주택을 확보해야 한다는 취지다. 나아가 청년 등 집이 없는 국민은 월세도 국가가 보장해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본부장은 “공공주택이 임대주택이란 시각부터 잘못됐다”며 “나라 주인이 나라 소유의 집에 들어가서 사는 게 왜 임대인가”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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