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두 “불공정한 결과 낳는 불공정한 과정 뜯어고쳐야”
  • 김종일 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21.03.19 16:00
  • 호수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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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 원장 “정치인들, 길게 보지 않고 당장의 표만 원해”

김광두. 그는 어떤 상징이다. 대통령선거 때마다 유력 대선후보의 경제 과외교사로 호출된다. 여야를 가리지 않는다. 그를 선점하면 ‘경제’라는 어려운 숙제의 첫 장을 끝낸 게 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그랬다. 대선 과정은 물론 대선 후에도 쓴소리의 상징인 그를 중용했다. 그렇게 대통령 자문을 수행하는 국민경제자문회의 초대 부의장(의장은 문 대통령)으로 일했다. ‘Mr. 쓴소리’는 1년 반 넘게 소득주도성장 등에 견제구를 던졌다. 

지금 시대의 불공정 문제는 경제와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 어디서부터 꼬인 걸까. 문제의 근원은 무엇일까. 왜 ‘공정’을 부르짖었던 문재인 정부는 ‘공정’으로부터 허물어져 내리고 있을까.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 원장(서강대 석좌교수)에게 묻고 싶었다. 김 원장은 오래 고민한 듯했다. 그의 말은 거침없었지만 그 안에는 오랜 고민과 성찰이 담겨 있었다. 몸에 좋은 약은 쓴 법이다. 아직 현 정부의 임기는 1년 넘게 남아 있다. 

ⓒ뉴스뱅크 

왜 지금 공정이라는 가치가 화두일까.

“우리는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공존하는 체제에서 살고 있다. 민주주의는 1인 1표로 상징된다. 모든 구성원이 동등한 목소리를 낼 수 있다. 하지만 일단 먹고사는 문제가 먼저다. 생존권이 우선순위의 맨 앞에 자리한다. 산업화를 거쳐 소득수준이 높아지면 달라진다. 민주화에 대한 요구가 커진다. 우리는 모두 이뤘다. 지금은 돈과 권력이 많다고 멋대로 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그런데 그 믿음이 지난 (박근혜) 정부에서 깨졌다. 그래서 국민들은 촛불을 들었다. 촛불의 첫 모티브는 최순실씨 딸의 특혜와 반칙으로부터 시작됐다. 그때도 공정하지 못하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그렇게 정권교체가 됐다.”

문재인 정부는 ‘공정의 역습’을 받고 있다.

“촛불로 집권한 문재인 정부가 역사적으로 가져야 할 책무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단연 공정하고 정의로운 질서를 만드는 일이었다. 그것이 바로 촛불시위에 참여했던 시민들이 가장 원했던 일이다. 그 희망을 잘 받들겠다고 해서 탄생한 정부가 바로 이 정부다. 실제 그런 기대감이 컸다. 그런데 그 기대가 지금은 완전히 깨졌다. 기대가 컸던 만큼 강한 불만이 표출될 수밖에 없다.”

‘공정의 역습’이 어디서부터 시작됐다고 보나.

“결정적 발화점은 조국 사태다. 조국 전 장관은 공정하고 정의로운 세상을 말해 사람들로부터 많은 기대를 받았다. 그런데 자녀 교육 문제가 터졌다. 실체는 달랐다. 더 큰 문제는 ‘이중 잣대’였다. 여권은 자신들은 옳고 상대방은 틀렸다는 자세를 견지했다. 똑같은 기준을 갖고 자신들이 하는 것은 ‘괜찮다’고 하고, 상대방에게는 ‘아니다’고 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대표적 사례다. 보수정부의 전직 대통령들을 수사할 때는 ‘우리 총장’이라고 했는데, 자신들을 수사하자 ‘나쁜 사람’이라고 했다. 기준이 바뀐 셈이다. 공정과 정의라는 게 뭐냐. 누가 뭐라 해도 헌법 정신이다. 그건 움직일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런데도 여권의 대응은 한결같았다. 추미애 전 장관의 행태는 ‘진영 논리의 끝’이라는 느낌을 더 줬다. 그러니 국민들 보시기에 ‘이거 뭐야’라는 마음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공정의 신화’는 경제에서도 무너진 느낌이다.

“자산 불평등이 빠르게 심화되면서 불공정 논란은 더 심해질 수밖에 없었다. 특히 부동산 문제가 불을 질렀다. 집은 삶의 기본 조건이다. 집값이 거시적 상황에 따라 오르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다. 그런데 정책을 잘못 썼다. 스무 번이 넘는 대책이 나왔는데 한 번도 성공을 못 했다. 무능한 것이다. 백번 양보해서 무능해도 괜찮다. 그런데 지금은 집 없는 사람이 집을 가질 수 없게 됐다. 이분들 입장에서는 노동의 가치가 의미가 없어지게 됐다. 열심히 일하면 무얼 하나. 평생 열심히 일해도 대가가 없게 생겼는데.”

‘결과의 공정’을 추구하는 현 정부도 나름 노력을 하고 있지 않나.

“그게 바로 문제다. 불공정한 과정을 뜯어고쳐서 문제의 본질을 해결해야 하는데, 이를 다 놔두고 결과가 불공정하다며 인위적으로 그때그때 개입하고 있다. 이는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불공정하다는 인식을 키우게 된다.”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어려운 분들을 돕겠다는 그 마음이 공정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다른 쪽에서는 불공정할 수 있다. 왜 인천국제공항공사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문제가 공정 문제를 촉발했을까? 의도는 좋았다. 하지만 그 절차는 오히려 불공정이란 서사를 낳았다. 왜 많은 사람이 반발하고, 상당수 국민이 이에 동의했을까? 우리 모두는 ‘노력한 만큼 보상받아야 한다’는 원칙에 합의하고 산다. 이게 바로 노동의 가치다. 그런데 이 원칙이 깨졌다. 그 과정이 설득력을 갖지 못했다.”

능력주의가 제일 공정하다고 할 수 있나. ‘3루’에서 태어난 사람과 아닌 사람의 차이는 크다.

“맞다. 족집게 과외를 받을 수 있는 사람과 아닌 사람의 차이는 실제 크다. 이 격차는 어떻게 줄여야 할까.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가. 공교육 전체의 질을 높여 족집게 과외를 안 받아도 되는 여건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격차를 발생시키는 여건은 그대로 두고 결과의 불공정함만 문제 삼고 이를 인위적으로 조정하면 논란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대안은 무엇일까. 

“모두의 여건을 비슷하되 수준 높게 만들어주는 일이다. 이를 제일 잘하는 나라들이 바로 북유럽 국가들이다. 그들이 강조하는 분야가 바로 보육과 복지, 여성이다. 부자든 빈자든 교육과 보육에서 받는 양질의 서비스는 같다. 그렇다면 애초에 문제 발생 자체가 적게 된다. 여기에 세계화와 기술혁신의 대안으로 재교육과 평생교육에 투자해야 한다. 북유럽 국가들이 역시 잘하는 분야다. 말하자면 접근 방식을 기회의 균등에 맞춰야 한다. 기회의 균등을 보장할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능력을 키워서 정당한 보상을 만들어줘야 한다. 과정은 불평등하게 만들어놓고 결과에서 시정하겠다고 하면, 그 시정 자체가 불공정해질 수밖에 없다.”

어떻게 해야 바뀔까. 

“쉽지는 않다. 정치가 바꿔야 하는데 정치인들은 길게 못 본다. 그들은 시스템을 고치려 하지 않는다. 당장의 표를 원한다. 미래를 말하는 스테이츠맨(Statesman·지도자)은 보이지 않고 폴리티션(Politician·정치인)뿐이다. 그럼에도 방법은 하나뿐이다. 좋은 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북유럽식으로 보육과 교육, 여성에 투자하면 그 사회 구성원들의 지적 수준은 물론 건강까지 증진된다. 여성들의 사회 참여는 사회 전체의 노동 공급을 늘린다. 생산능력이 높아진다. 보육과 교육 여건은 여기에 필수다. 정부 지출을 여기에 집중해야 한다. 실업수당식 정책을 늘리는 것과 이런 방식의 차이는 크다. 좋은 인력이 공급되니 기업들도 움직이게 된다. 결국 질적 도약이 된다. 그러니 기업들도 세금을 기꺼이 낸다. 이렇게 순환구조가 이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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