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해까지 500년…‘아이스팩 처리 대란’ 시작됐다
  • 박치현 영남본부 기자 (sisa518@sisajournal.com)
  • 승인 2021.03.24 14:00
  • 호수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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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시대 맞아 아이스팩 사용량 급증
주성분 발암물질인데, 처리예산·전문성 없어 지자체 비상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비대면 거래가 증가하면서 택배 물량이 급증하고 있다. 그만큼 택배 쓰레기도 같이 늘어난다. 식료품을 택배로 주문하면 신선도 유지와 부패 방지를 위해 아이스팩이 동봉된다. 육류 1kg 주문에 서너 개씩 들어 있다. 아이스팩 안에 들어 있는 젤의 주재료는 폴리에틸렌(석유 찌꺼기)이다. 젤은 온도에 따라 형태가 바뀌는 미세 플라스틱 일종인데, 물에 녹지도 않아 환경오염 유발은 물론 인체에도 해롭다. 전국 지자체들이 수거는 하지만 수요처를 찾기가 쉽지 않아 재활용도 어렵다. 팬데믹 시대, 아이스팩 처리가 골칫거리로 등장한 것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아이스팩 생산량은 전년(2억1000만 개)보다 5000만 개 늘어난 2억6000만 개로 추산된다. 이 중 80% 정도는 종량제 봉투에 담아 버리고, 15% 정도는 하수구로 버려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시중에 유통되는 아이스팩의 80%는 폴리아크릴화나트륨 등 고흡수성수지(SPA·Super Absorbent Polymer)로 이뤄진 '젤 아이스팩'이다. 양성봉 울산대 화학과 교수는 “고흡수성수지는 미세플라스틱의 일종으로, 자연분해에만 500년 이상 걸린다. 하수구에 버리면 수질오염을 유발하고 태우면 발암물질이 나온다”고 설명했다. 환경부의 '재활용품 분리배출 가이드라인'(2018)에 따르면, 아이스팩은 ‘겉 비닐을 깨끗하게 유지하면 재활용이 가능하고, 버릴 때는 종량제 봉투에 넣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조건이 있다. 비닐 포장재를 벗겨내고 젤 형태의 내용물을 말려 종량제 봉투에 넣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소각장에서 제대로 타지 않아 분리배출의 의미가 없다. 또 하수구에 버리면 수질오염을 유발하고 먹이연쇄 과정을 거쳐 인체에 축적될 수 있다. 

이이스팩이 환경오염의 주범으로 부상하면서 전국 지자체들 사이에 ‘재활용 수거 열풍’이 불고 있다. 대구시 남구는 아이스팩을 종량제 봉투로 교환해 주고 있다. 두레생협연합회는 지난 1월 인천 부평구청과 ‘아이스팩 재사용 사업 업무협약식’을 체결했다. 전남 신안군은 청사 안에 수거함 4개를 마련하고, 수거되는 아이스팩은 지역 소상공인들에게 제공하기로 했다. 서산시는 충남 최초로 15개 모든 행정복지센터에 아이스팩 수거함을 설치했다. 여기서 모아진 아이스팩을 세척해 동부전통시장과 자활센터 등에 무상 배부하고 있다. 울산 북구는 3월3일 8개 행정복지센터에 아이스팩 수거함을 설치했다. 하지만 수거율이 저조해 아이디어를 내놨다. 아이스팩 5개를 가져오면 롤화장지 1개를 지급하는 ‘보상제’를 도입하면서 하루 300여 개씩 수거되고 있다. 

대구 남구청이 ‘아이스팩 종량제 봉투 보상교환사업’으로 수거한 아이스팩을 대구 지역 새벽배송업체인 네이처팡에 전달하고 있다.ⓒ대구시 남구청 제공
대구 남구청이 ‘아이스팩 종량제 봉투 보상교환사업’으로 수거한 아이스팩을 대구 지역 새벽배송업체인 네이처팡에 전달하고 있다.ⓒ대구시 남구청 제공

수거해도 재활용 방법 없어 처리에 골머러

과연 아이스팩 재활용 정책은 순항하고 있을까? 시사저널 취재 결과 수거는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지만, 수요처를 찾지 못해 애를 먹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3월16일 기자가 울산시 북구 재활용 선별장을 찾았을 때 수거된 아이스팩 4000여 개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북구 관계자는 “환경부의 권고에 따라 아이스팩을 수거해 처리 과정을 거쳐 전통시장과 회센터, 마트 수산물 코너 등에 무료로 나눠줄 계획이다. 생각보다 엄청난 예산이 들어가고 처리 과정이 복잡해 선별장에 모아둔 상태”라고 말했다. 아이스팩을 재활용하려면 세척과 소독을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력과 처리 장소, 폐수정화시설이 필요하다. 구청 예산으로 감당하기에 역부족인 데다 전문성도 없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라는 설명이다.  

재활용업체에 맡길 수도 없다. 단가가 맞지 않기 때문이다. 아이스팩 한 개를 생산하는 데 100원이 든다. 반면 아이스팩을 재활용하려면 200원 정도 들어간다. 박상재 울산자원순환사업협동조합 사무총장은 “수요처에서 재활용 아이스팩을 두 배나 비싸게 살 리 만무하다. 그리고 재활용품을 찝찝하게 생각한다. 판로가 없는데 재활용 아이스팩을 수거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위생 문제도 아이스팩 재활용의 발목을 잡고 있다. 육류 소·도매업을 하는 조수근 울산포크 대표는 “경제성도 문제지만, 상인들이 거부감을 느끼는 부분은 위생 문제다. 재활용 아이스팩을 사용해 탈이 나면 전적으로 판매자 책임인데, 누가 그걸 쓰겠느냐”고 반문했다.  

아이스팩 재활용은 2차 오염도 우려된다. 박주행 울산시 자원순환과 재활용계장은 “수거한 아이스팩에는 생선 냄새와 고기 핏물 등이 묻어 있고, 각종 세균 번식도 무시할 수 없다. 경우에 따라서는 세제를 사용해야 하고, 소독약품은 필수사항이라 수질오염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울산 북구는 아이스팩 재활용사업을 포기한 상태다. 그렇다고 쏟아져 들어오는 아이스팩을 무작정 쌓아놓을 수도 없다. 박 계장은 “현재로서는 별다른 대책이 없다. 북구가 수거한 아이스팩은 쓰레기소각장으로 보내 태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소각 과정에서 이산화탄소가 대량 발생한다. 또 아이스팩에 들어 있는 물과 미세플라스틱이 상호 작용을 일으켜 발암물질인 다이옥신까지 나온다. 그렇다고 매립장에 묻으면 땅이 심하게 오염된다. 재활용은 한계가 있고, 나머지는 태우거나 묻는 방법 말고는 별다른 대책이 없다. ‘아이스팩의 딜레마’인 셈이다. 울산시 중구·남구·동구·울주군 등 다른 기초단체는 아이스팩 재활용사업을 포기 또는 당분간 시행하지 않기로 했다. 북구의 실패 사례를 봤기 때문이다. 박 계장은 “환경친화적인 아이스팩 확대·보급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대구 남구청이 ‘아이스팩 종량제 봉투 보상교환사업’으로 수거한 아이스팩을 대구 지역 새벽배송업체인 네이처팡에 전달하고 있다.ⓒ대구시 남구청 제공
(왼쪽)울산 북구는 3월3일 8개 행정복지센터에 아이스팩 수거함을 설치했다. (오른쪽)아이스팩에 들어가는 고흡수성수지(SAP·Super Absorbent Polymer).ⓒ울산시 북구청 제공·게티이미지 코리아 제공

친환경 아이스팩이 그나마 유일한 대안

아이스팩 수거 열풍이 불기 시작한 건 지난해 10월부터다. 전국 지자체들은 사용한 아이스팩을 경쟁적으로 수거해 재활용 아이스팩을 만드는 데 행정력을 집중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복병을 만났다. 엄청난 예산과 인력을 감당할 지자체가 많지 않았다. 수요처의 반응도 시큰둥했다. 대구시 기초단체 관계자는 “전문업체를 통한 세척 등 철저한 위생관리와 안전성 홍보, 직접 배송 등으로 재사용률을 높이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예산 문제로 포기했다”고 말했다. 야심 차게 시작했던 아이스팩 재활용사업이 위기에 빠진 것이다. 미세플라스틱으로 만든 아이스팩이 쌓여가고 있다.   

이런 와중에 농촌 지역에서는 ‘위험한 재활용’까지 이뤄지고 있다. 울산의 한 시골마을에서 주민들이 아이스팩 수거함을 비치하고 자발적인 수거작업에 나서고 있다. 주민들에 따르면 일주일에 30∼40개 정도 수거된다. 문제는 세척이나 소독을 하지 않은 상태로 지역 소규모 식당 등에 공급된다. 정인권 내과 전문의는 “사용한 아이스팩을 소독 처리하지 않으면 매우 위험하다. 당국의 철저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코로나19 사태로 배달음식 주문이 늘어남에 따라 배달앱 등에 식품안전정보를 연계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환경공단은 아이스팩 회수·세척·재활용 사업 확대를 위해 지방자치단체와 시민단체, 전통시장연합회 등과의 협업을 모색 중이다.

시사저널 취재 결과 아이스팩 재활용률은 20∼30% 정도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매립·소각돼 환경오염을 가중시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올 한 해에도 3억 개 이상의 아이스팩이 사용될 것으로 예상된다. 핵심 키워드는 '감량'이지만, 말처럼 쉽지 않다. '재활용'도 현재의 방법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양성봉 울산대 화학과 교수는 “아이스팩 재활용이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만큼 제조 단계에서부터 친환경 소재를 쓰도록 정부 차원의 제도와 지원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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