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금융위-한은) 싸움에 새우(소비자) 등 터질라 [김상철의 경제 톺아보기]
  • 김상철 경제 칼럼니스트(전 MBC 논설위원) (ls@sisajournal.com)
  • 승인 2021.03.25 10:00
  • 호수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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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금법 개정안 두고 금융위와 한은 사사건건 ‘충돌’
소비자 보호 장치 허술해질까 우려

금융위원회가 의원입법 형식을 빌려 추진하고 있는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이하 전금법 개정안)’을 두고 금융위와 한국은행이 정면 충돌했다. 전금법 개정안은 은행 계좌에 연계된 전자 금융업의 금융 플랫폼 형태로의 전환과 디지털 금융 이용자 보호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골자다. 갈등은 지급 결제 청산과 관련한 허가와 감독의 권한 때문에 벌어졌다. 개정안에서는 빅테크 거래에 대해서도 청산 절차를 도입하고 있다. 네이버와 카카오 같은 빅테크 내부의 결제 내역을 금융결제원이 받아 ‘청산’하도록 한다는 내용이다.

원래 은행을 통한 송금은 청산이라는 절차를 거친다. 청산은 은행 간 채권·채무 관계를 계산해 서로 주고받을 금액을 확정해 결제까지 마무리하는 것을 말한다. 청산 업무는 금융결제원이 한다. 금융공동망을 통해 지급 지시를 중계하고, 금융기관 간 주고받을 차액을 확정한다. 최종적인 결제는 한국은행의 결제 시스템을 통해 이루어진다. 금융결제원에 ‘흔적’이 남고, 은행 간 불일치가 발생하면 결제 자체가 이뤄지지 않는 시스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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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정무위에 계류중인 전금법 개정안을 두고 금융위와 한국은행의 갈등이 커지고 있다. 사진은 정무위 모습ⓒ시사저널 박은숙

빅테크 업체 관리권이 갈등 배경

반면에 현재 빅테크를 통한 거래는 외부기관, 즉 금융결제원을 통한 청산 절차를 거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카카오페이 이용자가 카카오페이의 다른 이용자에게 송금한 내역은 카카오페이 내부에서 처리할 뿐이다. 앞으로는 외부기관, 그러니까 금융결제원에 거래 내역을 보내 기록을 남겨놓겠다는 게 법안의 취지다. 금융위는 개정안을 통해 금융결제원에 대한 포괄적인 감독권을 가질 수 있다. 네이버페이나 카카오페이 등 빅테크 업체를 통한 거래도 금융결제원이 수집·관리하고 이를 금융위가 감독하는 식이다. 이게 논란의 불씨가 됐다.

한은은 결제 관련 업무가 중앙은행의 고유 권한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금융위가 금융결제원의 감독 권한을 갖게 되면 결과적으로 중앙은행의 지급 결제 관리 영역을 침범한다는 것이다. 한은은 국회에 제출한 의견서에서도 개정안이 한은의 고유 기능을 크게 침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문제를 금융결제원에 대한 주도권 싸움으로 보면 한은과 금융위 간의 충돌은 밥그릇 싸움으로만 비친다. 실제로 금융결제원장을 어느 쪽에서 맡느냐는 문제는 금융위와 한은의 감정싸움으로 번진 원인일 것이다. 금융결제원장 자리는 과거 한은 출신이 맡는 게 관행이었다. 하지만 2년 전 이주열 한은 총재가 지명한 인사를 두고 한은 노동조합이 강하게 반발했고, 결국 결제원장 자리는 금융위로 넘어가 지금은 금융위 출신이 금융결제원장을 맡고 있다.

일반 소비자의 눈으로 볼 때 지급 결제 업무가 중앙은행의 고유 권한이라는 주장은 큰 의미가 있다고 하기 어렵다. 어느 쪽에서 금융결제원을 맡든, 감독권을 누가 가지든 상관없이 중요한 일은 결제에 차질이 일어나지 않고 소비자 보호에 문제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금융의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되면서 이용자 보호 강화는 필수가 됐다. 빅테크의 업무 영역이 확대되는 만큼 소비자 보호를 위한 규제 장치 역시 마련되어야 한다.

지난해 독일에서는 전자 지급 결제업체인 와이어 카드가 파산하면서 고객 돈 19억 유로, 우리 돈으로 약 2조6000억원이 사라졌다. 전자 지급 거래 증가세가 가파른 상황에서 소비자 보호장치를 마련하지 않으면 결국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큰 것은 사실이다. 소비자들이 네이버페이 등에서 충전한 금액은 지난해 9월 이미 2조원을 넘었다. 어떤 이유로든 전자 금융사업자가 문을 닫았을 때, 이용자의 잔액이 얼마인지 알 수 없다면 돈을 돌려주기 어렵다는 게 금융위의 설명이다. 사고를 사전 예방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기록이 외부에 남아 있다면 고객이 맡긴 돈을 빅테크 회사가 함부로 다른 목적에 사용하기도 어려워진다. 한은도 이런 점에서 개정안의 방향 전체를 부정하지는 못한다. 금융위의 관리·감독 강화는 불가피하다.

개인정보 보호 측면에서 취약성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은행의 경우 다른 은행 간 거래인 외부거래는 금융결제원의 청산 절차를 거치지만 내부거래는 자체 회계처리로 종결된다. 내부거래는 금융결제원 결제 시스템에서 처리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개정안은 빅테크의 내부거래, 즉 가입자 간 거래도 금융결제원 시스템을 통한 청산을 의무화하고 있다. 소비자를 보호하겠다는 취지라고는 하지만, 금융 당국이 빅테크의 모든 거래를 들여다볼 수 있는 구조다.

한은은 빅테크 업체들이 금융결제원에 제공하는 고객의 모든 거래 정보를 제한 없이 접근해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고 비판한다. 국무총리실 산하 개인정보보호위원회도 일부 조항은 개인정보보호법 체계와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서, 포괄위임금지 원칙에 위배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개정안은 빅테크가 금융결제원에 제공하는 개인정보의 구체적인 사항을 법률이 아닌 시행령에 위임하고 있다. 구체적인 내용이 정해지지 않아 과도한 개인의 사생활 정보까지 포함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개인정보보호법은 일반법이다. 모든 개인정보에 적용하는 것이 옳다. 소비자 보호와 개인정보 보호의 조화는 필요하다. 금융 당국이 언제, 어디까지 어떤 정보를 볼 수 있는지는 사전에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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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진교 정의당 의원이 2월2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전금법 개정 반대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

기존 금융권과 빅테크 간 역차별 우려도

금융위와 한국은행의 충돌에 가려져 관심을 크게 받지 못하고 있지만, 전금법 개정안에는 다른 중요한 이슈도 있다. 종합지급결제사업자의 제도화 문제다. 자본금 200억원 이상인 카카오페이나 네이버 파이낸셜, 토스 등이 대상이 될 수 있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금융위원회의 지정에 따라 사업자로 허가를 받을 수 있는데, 비금융업으로 분류된다. 하지만 은행의 요구불계좌와 유사한 결제계좌를 직접 발급하고, 자체 계좌를 통해 급여 이체를 포함한 은행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소비자는 네이버 등에서 계좌를 개설하고 인공지능(AI)이 추천하는 보험이나 펀드 상품에 가입할 수도 있다. 그러나 부실이 발생했을 때, 이에 대해 네이버에 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3월말부터 금융소비자보호법이 시행될 예정인데, 핀테크 업체들은 이를 적용받지 않는다. 사실상 은행이나 카드회사와 같은 업무를 수행할 수 있게 되면서도 관련 규제를 피해 갈 수 있다는 얘기다. 기존 금융업과의 역차별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금융산업은 핀테크 혁신의 등장에 따라 급변하고 있다. 기존의 금융기업과 빅테크 간 견제와 경쟁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네이버 파이낸셜은 비금융 정보를 활용해 소상공인에 대한 대출 조건을 낮출 수 있었다. 은행은 할 수 없었던 일이다. 현재의 관련 법은 디지털 금융의 현실을 제대로 규율하는 데 한계가 있다. 전자금융거래법은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수단과 관련한 법률일 뿐이다. 앞으로 인허가 체계를 포함해 금융업법은 근본적인 개편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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