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에서의 매질, 그래서 더 아프다… 文정부에 회초리 든 진보
  • 이원석 기자 (lws@sisajournal.com)
  • 승인 2021.03.20 10:00
  • 호수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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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진영 한목소리 “가장 큰 문제는 내로남불”

같은 매라도 더 아픈 매가 있다. 바로 가족이 드는 매, 사랑의 매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태는 정국의 블랙홀로 작용하고 있다. 정부·여당 입장에선 4·7 재보선을 앞두고 터진 초대형 악재다. LH 사태는 진보 성향의 시민단체인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하 민변)의 폭로에서 시작됐다. LH 사태는 문재인 정부가 책임을 피할 수 없는 사안이다. 여기에 최근 임명된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이 바로 직전 LH 사장 출신이다. 여권에 악재가 될 가능성은 불 보듯 뻔했다. 

특히 문재인 정부에는 참여연대와 민변 출신이 유독 많다. 현 정부를 ‘민변공화국’ ‘참여연대정부’란 말로 빗대 표현했을 정도였다. 팔은 안으로 굽기 마련인데 이들은 다른 선택을 했다. 정공법을 택한 것이다. LH 사태로 변 장관은 취임한 지 석 달도 되지 않아 사의를 표해야 했다. 문 대통령도 “성실하게 살아가는 국민들에게 큰 허탈감과 실망을 드렸다”며 사과했다. 

그럼에도 참여연대와 민변의 채찍질은 멈추지 않았다. 이들은 첫 번째 기자회견 이후에도 정부 합동특별수사본부의 1차 조사 결과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추가 폭로를 하는 등 계속 정부를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참여연대와 민변은 담담한 모습이다. 참여연대의 서성민 변호사와 박효주 간사는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한목소리로 “정무·정치적 판단으로 발표 시기를 선거 이후로 미루거나 하는 것은 권력 감시단체로서 소명이나 활동 정신과는 맞지 않다고 판단했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앞으로도 어떤 사안이든 해야 할 일을 제때 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시사저널 취재 결과, 참여연대와 민변은 물론 진보진영의 시민단체들 사이에서는 “이제부터라도 제대로 감시와 견제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익명을 요구한 진보 성향의 다른 시민단체 관계자는 “최근 진보진영의 시민단체에서도 문 정부에 대한 불만이 상당하다. 촛불 정부로서의 소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질타”라고 털어놓았다. 그러면서 “(LH 폭로에) 왜 정치적 판단이 없었겠나. 참여연대와 민변이 이번에 작정하고 정부에 경고를 한 것이라고 본다”고 했다.

사실 문재인 정부를 향한 진보진영의 쓴소리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하 경실련)은 문 정부 임기 초반부터 부동산 정책을 꾸준히 비판해 왔다. 지난해에는 50회 이상의 부동산 정책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지난 3월3일에도 기자회견을 열고 현 정부 출범 이후 4년 동안 25차례 부동산 대책이 발표됐지만 집값이 잡히기는커녕 서울 아파트값은 한 채당 5억원(78%) 상승했다는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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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임준선·뉴스뱅크·연합뉴스 

경실련 “이 정부가 진보인가? ‘짝퉁 진보’다”

경실련의 비판은 매서웠다. 김헌동 경실련 부동산건설개혁본부장은 “처음 1~2년은 정부 정책을 지켜봤지만 2019년부터는 도저히 안 되겠어서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전혀 듣고 있지 않다. 문재인 정부이기에 더 실망스럽다”고 했다. 김 본부장은 “이 정부가 과연 진보인가. 재벌 개혁을 했나. 전경련(전국경제인연합회)을 해체했나. 대체 뭘 했나.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등이 자기 재산을 남들과 나누는 삶을 살았나. 이런 사람들을 ‘싸가지 없는 진보’ ‘짝퉁 진보’라고 한다”고 일갈했다. 

여성계의 비판도 만만치 않다. 여성계는 젠더 이슈에 대한 현 정부의 소극적인 정책에 실망감을 숨기지 않고 있다. 특히 잇따른 여권 정치인들의 성폭력과 이를 대하는 태도에 큰 충격을 받은 모습이다. 김은주 한국여성정치연구소장은 “문 정부 들어 여성 의제와 관련해 문제 됐던 것들이 입법 등을 통해 그래도 차곡차곡 진행되고 있지만, 특히 재보선과 관련해 이 선거가 왜 발생했는가에 대한 문제의식이나 책임감이 없는 것 같다. 문 정부 들어서도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여성·성범죄 문제는 후순위에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근 들어 진보 지식인들의 작심 비판도 이어지고 있다. 강준만 전북대 교수와 홍세화 전 진보신당 대표 등이 대표적이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와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등 이름 있는 진보진영 지식인들도 쓴소리를 내놓고 있다. 

최 명예교수는 지난 1월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문 정부는) 촛불을 자신들 뜻대로 해석하고 전유하며 ‘적폐청산’이라는 기조로 국가주의적 운영을 해 나갔다”며 “촛불로 세워진 정부가 촛불을 배신하고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고 비판해 여권을 더 가슴 아프게 했다. 홍 전 대표도 본지 인터뷰에서 “잡초, 즉 적폐를 다 없애겠다고 해서 우리에게 후련함에 대한 기대를 줬다. 그런데 정작 자기 앞마당 무성한 잡초는 건들지도 않는 형국이 이어졌다”고 질타했다. 특히 그는 “왜 대통령이 되었는지, 왜 집권했는지 의문이 들게 한다”고 꼬집었다. 

진보 지식인들이 현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책들도 계속 출판되고 있다. 이병천 강원대 명예교수, 김태동 성균관대 명예교수, 조돈문 노회찬재단 이사장 등 진보 지식인 323명이 참여한 ‘사회경제개혁을 위한 지식인선언네트워크’에서 저술한 책 《다시 촛불이 묻는다》는 부동산 등 정부 정책과 방향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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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민변 관계자들이 3월2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LH 투기 의혹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진보 지식인들의 ‘작심 비판’ 잇따라

유창선 시사평론가도 최근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라는 책을 냈다. 책 제목부터 심상치 않다. 책에는 대화와 타협이 없고 생각이 다르면 적폐로 낙인찍는 문 정부의 ‘극단 정치’에 대한 비판과 민주주의에 대한 성찰이 담겼다. 그는 1세대 정치평론가로 한때 진보진영에 몸담는 등 대표적인 진보 논객이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는 방송에서 배제되는 탄압을 받기도 했다. 

이들의 현 정부를 향한 각양각색 비판들은 서로 결이 다르다. 하지만 공통적으로 나오는 대목이 있다. 바로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다. 참여연대 집행위원장 출신으로 진중권 전 교수 등과 함께 이른바 《조국흑서》를 공동 저술한 김경율 회계사는 “문재인 정부에 크게 실망한 건 한마디로 말하면 조국 사태 등에서 비롯된 내로남불 때문이다. 보수정권 때 이른바 민주·진보진영이라고 하는 자신들이 얘기했던 같은 잣대를 정작 자신들에겐 들이밀지 않는 위선 때문”이라며 “이견을 적대시하고 배제함으로써 조화 내지는 합의점을 형성해 가는 민주주의의 기본적 태도와도 맞지 않는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유 평론가는 “최근 문재인 정부에 대한 비판은 진영을 넘어 전방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이념적인 잣대와 상관없이 어떤 상식과 정의의 차원에서 봤을 때 문제가 심각하다는 방증”이라며 “촛불 정부라고 하더니 내로남불, 결국은 정의롭지도 공정하지도 못한 것에 대한 비판들이 공통되게 나오고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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