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선 이후 물러난다지만 윤석열 업고 복귀할 가능성
‘김종인의 매직’은 이번에도 통했다.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가 예상을 뒤엎고 야권 단일 후보로 확정되면서다. 당 안팎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오 후보의 승리를 강하게 확신하던 김 비대위원장은 ‘선거의 달인’으로서의 자질을 다시 한 번 입증하게 됐다.
김 위원장은 4‧7 보궐선거를 끝으로 비대위원장 자리를 내려놓겠다고 공언했지만, 정치권에선 벌써부터 그를 차기 대선의 ‘킹메이커’로 점찍어둔 모양새다. 일각에선 그가 제3지대에서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교감하며 정계 개편을 위한 밑 작업에 착수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옹졸하다’ 비판에도 굽히지 않은 김종인의 소신, 통했다
김 위원장은 23일 야권 단일화 최종 결과가 나온 직후 기자들과 만나 “제1야당의 오세훈 후보로 단일화가 되는 것은 처음부터 상식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오 후보의 승리 이유에 대해 “박영선, 나경원, 안철수, 오세훈 후보들 각종 여론조사를 분석해보면 결국 안 대표는 3등으로 처져있던 상황이다. 그게 이번 여론조사에서도 그대로 반영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위원장은 단일화 국면 초창기부터 안 후보를 평가 절하하면서 “우리 당(국민의힘)이 이긴다. 걱정 말라”고 확언해 온 바 있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에서 오 후보가 안 후보에 밀리는 국면에서도 이렇게 자신해온 터라, 당 안팎에선 “도대체 무슨 자신감이냐” “김종인의 ‘몽니’다”라는 비판도 받았다. 김 위원장이 안 후보와 공개적으로 날 선 비판을 주고받을 때에는 ‘옹졸하다’거나 ‘민주당의 X맨’이란 모욕적 언사를 듣기도 했다. 더 나아가 “물러나라”는 당 중진들의 요구에 직면하기도 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김 위원장의 말은 적중했다. 당 안팎의 비판에도 자신감을 굽히지 않았던 김 위원장의 소신이 통한 것이다. 김 위원장은 2012년 대선에선 박근혜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후보의 당선을 이끌었고, 2016년 20대 총선에선 더불어민주당의 승리를 견인했다. 이번 보궐선거에서 오 후보가 박영선 민주당 후보까지 꺾으며 서울시장에 당선되면, 그야말로 ‘김종인의 매직’이 완성되는 셈이다.
오세훈 이기면 김종인, 野구심점 등극…윤석열 ‘입당’ 명분 확보도
이 때문에 국민의힘 일각에선 벌써부터 김 위원장의 당 대표 추대 가능성이 솔솔 제기된다. 대선까지 1년 남짓 남았으나 아직 당내 차기 대선주자가 없는 만큼, 그 공백을 채우기 위해서라도 김 위원장을 잡아둘 수밖에 없다는 예측이다. 다만 이 경우 ‘반(反)김종인’을 내세우는 당 중진들의 견제가 걸림돌로 작용할 전망이다.
김 위원장은 일단 자신의 임기를 보궐선거 때까지로 못 박은 상태다. 그는 이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나는 오 후보가 (단일 후보로) 선출됨으로 인해 내가 국민의힘에 와서 할 수 있는 역할의 90%는 했다고 본다. 나머지 10%를 더해서 오 후보를 당선시키는 것으로 내가 국민의힘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다 하지 않았나”고 말했다. “보선이 끝나면 미련 없이 떠난다”던 기존의 입장을 바꾸지 않은 것이다.
한편 ‘킹메이커’로서 입지를 굳힌 김 위원장의 다음 카드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김 위원장은 윤 전 총장을 향해 “별의 순간을 잡았다”고 치켜세우는가 하면 “윤석열 만큼 용감한 사람이 없다”고 극찬하기도 했다. 김 위원장이 일단 당을 떠나 윤 전 총장과 접촉한 뒤, 국민의힘 외곽에서 세력화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깊어진 安과의 골 어쩌나…‘화학적 결합’이 시급
다만 이 같은 시나리오는 모두 국민의힘이 보궐선거에서 승리했을 때를 전제로 한다. 현재 정치 지형 상으로는 오 후보가 박 후보에 유리한 형국이긴 하지만, 남은 2주 동안 어떤 이변이 연출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만약 오 후보가 박 후보에 밀리 선거에서 떨어진다면, 김 위원장은 물론 야권 전체가 정계개편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될 공산이 크다.
선거 승리를 위해 당장 김 위원장이 꺼야 하는 급한 불은 안철수 후보와의 껄끄러운 관계를 정리하는 것이다. 두 사람 사이 감정의 골이 깊어질 대로 깊어진 만큼 진정한 의미의 ‘화학적 결합’은 쉽지 않을 것이란 우려가 제기돼서다. 양측은 최근 서로의 부인에 대해 비판하는가 하면 ‘정신이상자’ 등 수위 높은 발언까지 쏟아내며 날 선 공방전을 벌였다. 특히 안 대표도 서울시장 범야권 선거대책위원장을 맡기로 약속하면서, 두 사람은 한 배를 타게 됐다. 지지도를 최대치로 높이려면 이들의 정치적 화해는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에 김 위원장은 안 후보를 향해 “그간 야권 흥행을 위해 여러 노력을 해 주어 감사하게 생각한다”며 “본인이 열심히 시장 선거를 돕겠다고 얘기했기 때문에 지켜지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안 후보는 이를 의식한 듯 “야권의 승리를 위해 힘껏 힘을 보태겠다”며 “국민께서 바라시는 정권교체의 교두보를 함께 놓아갈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