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리된 발찌, 남다른 발육…의혹 더 커진 구미 여아 사건
  • 이혜영 기자 (zero@sisajournal.com)
  • 승인 2021.03.29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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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모 석씨 남편이 공개한 신생아 사진으로 의혹 증폭
3월17일 경북 구미경찰서에서 3세 여아 사망사건의 친모인 석아무개씨가 호송 차량으로 이동하고 있다. 경찰은 이날 석씨를 미성년자 약취 혐의 외에 시체유기 미수 혐의를 추가해 검찰에 송치했다. ⓒ 연합뉴스
3월17일 경북 구미경찰서에서 3세 여아 사망사건의 친모인 석아무개씨가 호송 차량으로 이동하고 있다. 경찰은 이날 석씨를 미성년자 약취 혐의 외에 시체유기 미수 혐의를 추가해 검찰에 송치했다. ⓒ 연합뉴스

경북 구미에서 발생한 3세 여아 사망 관련 핵심 피의자들이 여전히 '아이 바꿔치기' 혐의를 부인하며 수사에 혼선을 더하고 있다. 친모 측은 '출산'과 '아이 바꿔치기' 의혹이 커지자 사망한 여아의 신생아 시절 사진을 공개하며 반박에 나섰다. 그러나 이들이 공개한 과거 사진이 한편으로는 범행 가능성에 더욱 무게를 싣는 물증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찰은 현재까지 확인된 유전자(DNA)·혈액형 분석 등 과학적 증거에 더해 혐의를 뒷받침 할 또 다른 핵심 물증 확보에 속도를 내고 있다. 

29일 경북경찰청과 구미경찰서 등에 따르면, 경찰은 당초 사망한 여아 A양의 친모로 알려졌다가 언니로 밝혀진 김아무개(22)씨가 병원에서 출산한 후 촬영한 신생아 사진에서 식별표인 발찌가 분리돼 있던 점에 대한 구체적인 경위를 조사 중이다. 경찰은 사망한 여아가 산부인과에서 채혈 검사를 하기 전 48시간 내에 바꿔치기 됐을 것으로 보고 해당 병원의 전·현직 종사자들을 상대로 진술 확보에 나섰다.

 

'아이 바꿔치기' 가능성 더 키운 신생아 사진

경찰이 발찌가 떨어진 점에 주목하는 것은 통상적으로 산부인과에서는 퇴원 전까지 아이가 뒤바뀌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신생아 발목에 부착된 식별표를 제거하지 않기 때문이다. 신생아는 물론 일반 병동에서 환자 손목이나 발목에 부착하는 식별표는 특수 재질로 돼 있어 손으로 잡아당기나 단순 실수로는 제거되지 않는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식별표를 훼손하지 않는 한 신체에서 떼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특히 갓 태어난 아이에 부착된 식별표는 병원 내에서 더욱 각별히 관리된다. 신생아 식별표에는 출생일시와 태명(또는 이름), 친모와 친부의 이름 등 각종 정보가 함께 기재된다. 신생아를 산모가 입원해 있는 병실로 이동시킬 때나 다시 신생아실로 데려오는 경우 모두 식별표를 재차 확인하는 과정을 거친다. 병원 내 신생아실은 동시에 여러 명이 머무르는 데다, 산모가 있는 병실 내 이동과정에서 뒤바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확실한 안전장치인 식별표를 제대로 관리하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에 해당한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달랐다. 사망한 아이의 친모로 드러난 석아무개(48)씨의 남편이 억울함을 호소하며 공개한 신생아 시절 병원에서 촬영한 사진 3장은 모두 아이의 식별표가 발목에서 분리돼있다. 2장은 식별표가 아이 머리맡에 놓여 있고, 1장은 침대 가림막에 걸쳐 있다. 아이가 누워 있는 자세나 겉싸개 형태 등을 볼 때 각기 다른날 찍었을 가능성도 있다. 발찌가 우연히 발목에서 빠진 것이 아니라 상당 시간 또는 여러 날에 걸쳐 식별표가 아이와 분리돼 있었을 가능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석씨 남편은 "사진 속 발찌는 가위 등으로 훼손되거나 끊긴 흔적 없이 머리맡에 그대로 있었다"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산부인과에서는 식별표가 훼손되지 않았더라도, 분리됐다는 그 자체로 큰 문제이기 때문에 발찌가 채워지지 않은 아이를 왜 그대로 뒀는지에 대한 보강 수사가 필요하다. 식별표를 채울 때는 발목으로 빠져나올 우려가 있어 비교적 탄탄하게 묶어두는데 이를 어떻게 뺀 것인지, 아니면 처음부터 채워지지 않았는지 여부도 경찰이 밝혀내야 할 부분이다. 특정 이유로 아이 발목에서 식별표가 분리됐다 하더라도 간호사나 의료진이 이를 왜 재부착하지 않았는지도 의문이 남는다.

이와 함께 석씨 측이 공개한 사진 속 아이의 모습도 더욱 의구심을 키우고 있다. 석씨의 남편은 큰딸인 김씨가 출산한 이후 일주일 내에 병원에서 촬영한 사진을 공개했다. 그러나 3.45kg에 출생한 것으로 돼 있는 아이는 신생아들이 입는 배냇저고리가 기저귀 상단을 겨우 가릴 정도로 키가 컸고, 갓 태어난 아이로 보기 어려울 정도로 통통한 모습이었다. 신생아 전용 침대가 꽉 들어찬다는 느낌이 있을 정도였다. 

수도권 지역의 한 산부인과 의사는 석씨 남편이 공개한 사진을 확인한 후 "아기의 발육 상태가 신생아라고 보기 매우 어려운 점이 많다"며 "태어난 지 일주일 밖에 안된 아이의 경우 피부에 붉은기가 많이 돌면서 태지로 덮인 경우가 대부분이고 (석씨 가족이 공개한 사진과 같이) 병원에 머무는 며칠 사이에 뽀얗게 되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또 "허벅지 둘레 등을 봐도 생후 열흘을 전후한 아이로 보이지는 않는다"고 덧붙였다. 식별표가 아이에게서 분리된 점에 대해서도 "이해하기 어렵다"면서 "병원이나 의료진 입장에서 식별표가 분리됐다는 것은 일종의 사고이기 때문에 저렇게 허술하게 관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3월17일 경북 구미경찰서에서 김한탁 구미경찰서장이 '구미 여아 살인사건'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3월17일 경북 구미경찰서에서 김한탁 구미경찰서장이 '구미 여아 살인사건'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과학적 증거와 배치되는 진술…"허점 반드시 있어"

경찰은 석씨 측이 아이 바꿔치기 의혹을 부인하기 위해 제시한 사진이 오히려 혐의 입증에 더욱 무게를 실을 수 있다고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현재까지 경찰이 확보한 물적 증거는 ▲ 세 차례에 걸친 DNA 검사 결과 석씨가 사망한 A양의 친모라는 점 ▲ 석씨 큰딸인 김씨가 2018년 3월 산부인과에서 출산했다는 점 ▲ 혈액형 분류법 상 김씨와 전 남편 사이에서는 산부인과에 출생 기록에 남은 아이의 혈액형이 나올 수 없다는 점 ▲ 누군가에 의해 아이가 바꿔치기 됐다는 점 등이다. 

그러나 석씨가 A양의 친모라는 점 외에 석씨의 출산 경위와 구체적 시기, A양이 어떻게 김씨의 아이로 돼 있었는지, 아이 바꿔치기를 누가 주도했고 개입했는지 등은 여전히 미궁인 상태다. 산부인과가 아이 출생 이후 채혈을 하기까지 48시간 동안 병원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아직 안갯속이다.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이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라진 아이의 행방을 확인하고, 만일 살아있다면 하루라도 빨리 찾아내야 한다는 점"이라며 "김씨가 출산한 아이의 생사를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바뀌거나 거짓으로 일관하는 석씨 진술을 좇아갈 것이 아니라 확실한 물적 증거(이미 확보한 DNA 검사와 혈액형 분석 결과)에 기반한 '본류'를 잘 따라가는 수사를 펼쳐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석씨가 인정하지 않더라도 이미 여러 번의 DNA 검사와 혈액형 분석을 통해 '석씨=사망한 아이의 친모', '사망한 아이는 김씨와 김씨 전 남편 사이에서 나올 수 없는 혈액형'이라는 점은 입증이 됐고, 이는 진술에 따라 변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경찰 수사 등을 통해 밝혀진 부분을 보면 석씨와 김씨는 수사 초기 단계에서 주장한 것처럼 데면데면한 모녀 관계가 아니었다"면서 "미장원도 함께 가고, 딸의 휴대폰에 저장된 석씨의 이름에 하트가 2개나 들어가 있는 점 등이 이를 증명한다"고 부연했다. 또 "석씨가 사망한 아이를 발견했을 당시 '내가 치울게'라고 말한 점 등 궁극적으로 누구를 보호하려는 것인지를 집중적으로 파고들 필요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또 석씨와 김씨의 공모 관계가 아직 명확히 드러나지 않은 만큼 김씨가 제왕절개로 출산하게 된 경위도 추적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학적인 사유가 아닌 다른 이유로 제왕절개를 택했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의사결정 과정을 거쳤는지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특히 석씨가 셀프 출산을 검색한 정황이 확인됐고, 진술을 바꾸는 과정에서 석씨 본인과 가족 등 주변인의 진술에도 반드시 허점이 있을 것이라며 이에 대한 집중적인 조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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