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 3세 여아 미스터리… ‘DNA 지목’ 친모는 무엇을 숨기려 하나
  • 이혜영 기자 (zero@sisajournal.com)
  • 승인 2021.04.03 10:00
  • 호수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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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적 물증 앞에서도 진술 바꿔가며 ‘버티기’
사라진 아이는 어디로…‘조직적 범행’ 가능성도

사라진 아이 1명은 어디에 있는 걸까. 사망한 아이의 친모는 무엇을 숨기려 하는 걸까. 경북 구미에서 발생한 3세 여아 사망 사건의 마지막 퍼즐이 맞춰지지 않고 있다. 네 번에 걸친 유전자(DNA) 검사는 공통적으로 한 사람을 사망한 아이의 친모로 지목한다. 그러나 물증만으로는 사라진 아이의 행방을 밝힐 수 없었다.

사건 전모를 알아내기 위해선 친모의 입을 열어야 한다. 경찰이 50여 일간 대대적 수사를 통해 친모로부터 ‘출산’ 자백을 받아내려 한 것도 이 때문이다. 강력한 물증을 앞에 두고도 진술을 바꿔가며 혐의를 부인하는 피의자와 여론전에 나선 주변인들. 전문가들은 ‘조직적 범죄’ 가능성에 무게를 싣고 수사를 확대할 필요성이 있다고 지적한다.

3월17일 경북 구미경찰서에서 3세 여아 사망 사건의 친모인 석아무개씨(가운데)가 호송 차량으로 이동하고 있다. 경찰은 이날 석씨를 미성년자 약취 혐의 외에 시체유기 미수 혐의를 추가해 검찰에 송치했다.ⓒ연합뉴스

DNA·혈액형 분석 모두 부인하는 석씨

구미의 한 빌라에서 사망한 A양(3)의 친모로 밝혀진 석아무개씨(48)는 당초 이 사건의 목격자였다. 지난 2월10일 석씨 부부가 빌라 위층에 거주하는 딸 김아무개씨(22)의 집을 찾았다가 숨진 A양을 발견한 뒤 경찰에 신고하면서 충격적인 사건이 드러났다. 김씨는 재혼한 남편과의 사이에서 생긴 둘째 아이 출산을 앞둔 지난해 8월, A양을 홀로 빌라에 남겨둔 채 떠났다. 김씨가 혐의를 자백하면서 비극적 사건의 윤곽도 모두 드러난 듯했다. 

그러나 DNA 결과가 나오면서 사건은 급반전됐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DNA 검사 결과, A양의 친모는 김씨가 아닌 석씨였다. 국과수는 네 번에 걸쳐 검사를 진행했고, 모두 석씨가 A양의 친모라는 결과가 나왔다. 그럼에도 석씨의 입이 열리지 않자 검찰은 대검 과학수사부에 유전자 검사를 다시 의뢰했다. 결과는 역시 국과수와 동일했다. 국내 유전자 분석 양대 기관에서 ‘사망한 아이의 친모=석씨’라는 결론이 일관되게 나오면서 오차 확률은 사실상 ‘0’이 됐다. 검경이 이례적으로 DNA 검사를 반복해 실시한 것은 석씨의 진술을 깨트리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석씨는 여전히 2018년 출산 사실을 부인하며, 큰딸인 김씨가 사망한 아이의 친모라는 주장을 고수하고 있다.

출산 자체를 부인한 석씨는 경찰이 내놓은 ‘아이 바꿔치기’ 역시 성립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인다. 큰딸 김씨가 2018년 3월 출산했던 산부인과 기록에 따르면, 김씨가 출산한 아이의 혈액형(A형)은 김씨(BB형)와 그의 전 남편(AB형) 사이에서는 나올 수 없는 유형이다. 때문에 경찰은 석씨가 자신이 낳은 아이와 김씨가 낳은 아이를 산부인과에서 바꿔치기한 것으로 판단했다. 출생 후 채혈 검사를 하기까지 48시간 사이에 두 아이를 바꿔치기 했다는 것이다. 경찰은 복수의 물증으로 ‘석씨=A양 친모’, A양과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김씨의 자녀가 바꿔치기됐다는 것까지는 흔들리지 않는 ‘진실’이라고 보고 있다. 여기에 석씨가 출산을 앞두고 당시 근무하던 회사 컴퓨터로 ‘셀프 출산’을 검색한 점과 석씨의 임신 사실을 짐작하게 하는 관련 증언도 일부 확보했다. 하지만 의문은 계속됐다.

석씨의 출산 추정 시기는 2018년 1월이고, 김씨는 같은 해 3월 출산해 발육 상태가 확연히 다른 두 아이를 병원에서 바꿔치기하는 것이 가능하냐는 이유에서다. 그런데 의외의 곳에서 석씨 측 해명을 둘러싼 허점이 발견됐다. 석씨 남편은 최근 큰딸인 김씨가 출산했을 당시 병원에서 촬영한 아이의 사진을 공개했다. 이 사진이 ‘바꿔치기’ 가능성을 더욱 높인 것은 아이의 모습이 일반적인 신생아들과는 사뭇 달랐기 때문이다. 사진 속 아이는 병원에서 신생아들에게 채우는 식별표가 발목에서 분리돼 있었고, 발육 역시 약 3.5kg으로 태어난 신생아로는 보기 어려운 점이 많았다.

해당 사진을 본 수도권의 한 산부인과 전문의는 “(김씨가) 제왕절개로 낳았다면 아이가 병원에 머무르는 기간이 7~10일가량일 텐데 태어난 지 열흘도 안 된 신생아로 보이지는 않는다”고 지적했다. 아이의 피부 상태나 허벅지 둘레 등을 볼 때 의문점이 많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신생아들은 피부에 붉은기가 돌고 태지가 있어 사진 속 아기처럼 뽀얀 피부를 갖기 쉽지 않다”며 “배냇저고리가 상체를 겨우 덮고 허벅지 살이 접힐 정도인 것을 볼 때 생후 10일가량의 아이는 아닌 것 같다”고 설명했다. 신생아 식별표가 어떤 이유로 신체에서 분리된 채로 있었는지도 석연치 않은 부분으로 지적됐다. 경찰은 이 같은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해당 산부인과 원장과 당시 근무했던 의료진을 상대로 탐문과 조사를 진행 중이지만, 결정적 진술은 아직 확보하지 못했다.

3년 넘게 드러나지 않은 범행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이 드러난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한 것들로 얽혀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특히 석씨의 진술이 여러 번에 걸쳐 뒤바뀌고 있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짚었다. 석씨는 수사 초기 단계에서 “김씨와 사이가 좋지 않아 A양이 방치·사망한 것을 알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경찰은 두 사람이 지속적으로 메시지를 주고받은 점과 상당한 친밀도를 가졌다는 여러 단서를 포착했다. 석씨가 사망한 A양을 처음 발견한 것도 신고일 이전이었으며, 사체 유기를 시도한 점도 밝혀냈다.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이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라진 아이의 행방을 하루라도 빨리 확인하는 점”이라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석씨가 수사 과정에서 여러 번 거짓말을 했는데, 특히 사망한 아이를 처음 발견한 뒤 김씨에게 ‘내가 치울게’라고 한 것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석씨의 반응도, 김씨의 대응도 모두 일반적인 대화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승 연구위원은 “경찰이 발표한 내용을 모두 사실이라고 가정한다면, 석씨와 김씨는 숱한 우연에 우연이 더해져야 출산과 아이 바꿔치기 등을 완벽히 실행할 수 있는데 공범이나 누군가의 도움 없이 이 모든 것을 처리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분석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 역시 조직적 범죄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대검에서 추가로 진행 중인 DNA 검사에서마저 석씨가 A양 친모라는 결과가 나왔다는 점에 미뤄보면 석씨 개인이나 가까운 주변인들의 공모를 넘어선 또 다른 인물의 개입, 조직적 범죄와 은폐가 이뤄졌을 개연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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