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거티브’는 악마의 유혹…지지도 낮은 후보가 빠지기 쉬워
  • 이상철 성균관대 교수(수사학) (chunyg@sisajournal.com)
  • 승인 2021.04.02 16:00
  • 호수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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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언과 막말 난무했던 박영선-오세훈 후보 TV토론
후보 자신에게 부메랑처럼 돌아와 치명상 입히기도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고장 났다”

2021년 서울시장 후보 TV토론은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얼마나 심하게 고장 났는지를 보여줬다. 4월7일 보궐선거를 앞두고 열린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 간 MBC와 KBS 두 차례 토론에서 서울 시민을 위한 정책과 비전의 경쟁은 사라졌다. 대신 흑색선전, 폭언과 막말, 윽박지르기, 끼어들기, 무시하기, 인신공격, 낙인찍기, 덧씌우기 등 네거티브 TV토론 전략이 난무했다. 시민들은 코로나19 사태로 무너져버린 서울의 민생경제, 중국발 황사로 인한 대기오염, 내 집 마련의 고통, 재산세와 종부세 인상, 저출산 문제, 청년실업, 수돗물, 뒤엎어 놓은 서울 광장으로 인한 교통체증 등으로 하루하루가 어려운 팬데믹의 삶을 살고 있는데, 서울시장 후보들은 해묵은 과거사 문제로 상대방 흠집내기에만 몰두했다.

박영선 후보는 오세훈 후보에게 “자고 나면 거짓말” “또 거짓말한다” “말 바꾼다” “협박한다” “눈 가리고 아웅”이라며 내곡동 일대 그린벨트 해제 과정을 공격했다. 오 후보는 “입만 열면 내곡동으로 가는데, 제가 박 후보에 대해 단 한마디라고 부정적이거나 흑색선전에 가까운 얘길 한 적이 있느냐” “마음가짐을 좀 바꿔서, 제대로 된 정책과 비전으로 승부하셨으면 한다”며 부정적 공방의 책임을 상대편에게 돌리기도 했다.

여론조사 지지도가 낮은 후보들은 TV토론에서 흑색선전과 네거티브 같은 악마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 후보자의 도덕성과 자질을 위한 인물 검증은 TV토론에서 필요한 부분이지만 정도가 지나친 네거티브 공방은 결국 부메랑이 되어 자신이 치명상을 입는 경우가 허다하다. 2012년 대통령 후보 TV토론에서 정의당 이정희 후보는 박근혜 후보에게 “내가 출마한 것은 당신을 떨어뜨리기 위해서”라고 한 막말 한마디로 정치 이미지에 치명상을 입고 공공의 무대에서 사라졌다.

2017년 대선 토론에서 안철수 후보는 “제가 MB 아바타입니까” “제가 갑철수입니까”라는 발언으로 대선에 패한 것은 물론 정치 이미지에 치명상을 입게 된다. 2020년 미국 대선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지지도가 떨어지자 제1차 토론회에서 끼어들기, 윽박지르기, 막말 등 온갖 네거티브 전략을 구사하다 여론의 뭇매를 맞는다. TV토론에서 네거티브 전략이 결국 자신의 이미지로 돌아와 지지도 향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결론이 나자 트럼프는 제2차와 제3차 토론회에서 최소한의 매너와 규칙을 지키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서울 상암동 MBC에서 열린 《100분 토론》 서울시장 보궐선거 후보자 토론회. 4·7 서울시장 보궐선거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가 3월29일 밤 첫 TV토론을 벌였다.ⓒ시사저널 이종현
서울 상암동 MBC에서 열린 《100분 토론》 서울시장 보궐선거 후보자 토론회. 4·7 서울시장 보궐선거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가 3월29일 밤 첫 TV토론을 벌였다.ⓒ시사저널 이종현

정치 지도자의 말은 칼과 같아

정치 지도자의 말과 행동은 공동체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리스의 소피스트들은 정치 지도자의 말은 칼과 같아서 잘 쓰면 맛 좋은 요리의 도구와 같이 공동체의 미래와 비전을 여는 길이 되고 잘못 쓰면 폭력의 도구가 된다는 비유로 우리에게 교훈을 주었다. 폭언의 정치를 조장하는 TV토론이 안타깝다. 네거티브 토론에선 논리와 대화가 설 자리가 없다. 상대 후보를 낙인찍고 감성적이며 자극적인 언어의 껍데기만 남는다. “MB 패밀리” “MB 황태자” “도쿄박영선”과 같은 말들이 언어의 껍데기다.

서울시장 후보 TV토론에서 상대에 대한 배려나 여유의 정치를 찾아볼 수 없었다. TV토론에서는 내용도 중요하지만 발언할 때 어조와 어투와 같은 비언어적 매너와 태도도 중요하다. 박영선-오세훈 토론의 경우 비언어적 눈빛, 시선 처리, 제스처, 얼굴 표정 등 질의와 답변을 하는 과정에서 비아냥거리는 어조와 어투로 공격하는 일이 허다하게 일어났다. 디베이트와 에티켓의 합성어인 디베티켓이 있어야 한다.

 

그리스·로마 문명이 수사학 발전시켜

막말과 폭언의 TV토론은 자라나는 세대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건강한 민주주의를 실현하려면 서울시장 후보들을 대상으로 한 토론 관련 소양교육을 선행할 필요가 있다. 고대 그리스·로마 문명은 건강한 민주주의와 공화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토론은 기본적 소통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토론을 수사학 혹은 레토릭이란 학문의 일환으로 발전시켰다. 그리스·로마 문명은 토론자의 품위와 매너를 중시하며 데코롬(decorum)이란 개념을 확립했다. 데코롬은 주어진 토론의 상황과 목적에 부합하는 적절한 어휘와 내용은 물론 품위 있는 비언어적 태도 등을 의미한다.

근대 서구는 그리스·로마 문명을 이어받아 민주주의를 발전시켰다. 영국은 타 유럽 국가보다 수백 년 앞서 민주주의를 실현하면서 토론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이를 교육의 제도로 만든 나라다. 영국의 TV토론에서는 풍자와 해학이 넘친다. 수백 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케임브리지와 옥스퍼드대학 간 토론전은 풍자와 해학, 유머와 재치가 있는 토론자를 가려낸다. 공교육에서 이런 토론 교육과 훈련을 받은 이들이 영국 민주주의를 이끄는 지도자가 된다. 유머와 위트가 없는 정치인은 성공하기 힘든 반면, 유머와 위트가 있는 정치인은 성공적인 지도자로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처칠 총리는 이런 일화를 남겼다.

어느 날 의회 토론에서 야당의 여성 의원 에스더가 “만약 당신이 내 남편이라면, 커피에 독약을 타서 주었을 거다”라고 막말 공격을 하자 처칠은 “내가 남편이었다면 그 커피를 바로 마셨을 겁니다”라고 응수해 좌중을 웃음바다로 만들어버렸다. 이런 전통을 이어받아 서구의 대학생 토론대회에서 가장 인기 있는 토론의 형식은 의회 토론 방식(parliamentary debate format)이다. 자신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전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풍자와 재치로 매너 있게 상대방을 공략하면 점수를 더 획득하는 토론 형식이다.

 

선거 토론 주관, 선관위에서 민간으로 옮겨야

후보자 TV토론을 주최하는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와 토론을 주관하는 공영방송사도 책임을 피할 수 없다. 중앙선관위 산하 선거방송토론위가 주최하고 공영방송사들만 주관하는 대선후보 TV토론이나 지방자치단체장 후보 TV토론은 유권자들에게 재미없는 토론으로 정평이 나 있다. 방송사의 무대 장치는 물론 후보자들이 매끄럽게 토론할 수 있도록 형식을 개선해야 한다. 중앙선거방송토론위가 주최하는 후보 TV토론은 공정성과 발언의 형평성을 앞세우며 발언 시간을 지나치게 제한하거나 발언 순서를 기계적으로 편성해 TV토론을 재미없게 만들어버렸다.

공직자선거법을 개정해 후보 TV토론은 정부 기관 소관이 아니라 민간 혹은 시민의 영역으로 이전해야 한다. 시민들이 주체가 되어 주관하는 토론이 더욱 공정하고 형평에 맞으며 유익한 토론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TV토론의 주최와 주관은 한국기자협회, 관훈클럽과 같은 전문 언론인 단체와 유관 학계, 시민단체 등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구성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이다. 

이번 서울시장 후보 토론에서 MBC는 토론 진행 경험이 일천한 인물을 사회자로 선정했다. 이 사회자는 후보들의 발언 시간 관리 능력도 부족했으며, 오세훈 후보에게 “주도권을 너무 강하게 썼다”고 비판적 발언을 하거나 오 후보의 시각 자료 활용을 두고 “5번 활용해 이에 대한 항의가 들어오고 있습니다”를 두 번씩이나 반복하며 훈계조로 발언함으로써 스스로 공정성을 포기하기도 했다. 

 

직설보다 유머와 위트, 은유 사용하길

상대 후보를 비판할 때도 품격 있는 언어와 어휘를 선택하고 직설적인 공략보다 은유적 비유나 유추로 공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막말과 폭언의 TV토론을 보며 서울 시민들이 ‘종로에다 사과나무를 심는’ ‘아름다운 서울’을 가져다주는 시장을 바라기가 무리라는 점을 느꼈다. 시민들은 꿈과 희망이 있는 말, 여유와 유머가 있는 TV토론, 위안과 격려가 되는 TV토론, 배려와 상생이 있는 TV토론을 누릴 권리가 있다. 시민들은 원색적인 TV토론, 자극과 폭언의 TV토론을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이상철은 누구

1960년생으로 35년 전 휴먼커뮤니케이션을 공부하기 위해 미국 미네소타로 갔다. 1999년 귀국해 레토릭(수사학)과 스피치, 토론을 가르치다 지금은 성균관대학교 학부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2000년 국내에서 최초로 전국대학생토론대회와 고등학생토론대회를 개최한 일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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