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년째 사과 한마디 없는 전두환…광주는 오늘도 울었다
  • 이혜영 기자 (zero@sisajournal.com)
  • 승인 2021.05.18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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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국립 민주묘지서 5·18민주화운동 41주년식 거행
‘5·18 피고인’ 전두환 침묵·부인 속 진상조사 활동 계속
김부겸 국무총리가 5월18일 오전 광주 북구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열린 제41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을 마친 뒤 유가족을 위로하고 있다. ⓒ 연합뉴스
김부겸 국무총리가 5월18일 오전 광주 북구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열린 제41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을 마친 뒤 유가족을 위로하고 있다. ⓒ 연합뉴스

5·18 민주화운동 41주년을 맞은 광주에서는 대한민국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한 시민들의 숭고한 희생과 넋을 기리는 기념식이 열렸다. 희생자 가족들은 세월이 흐를 수록 선명해지는 가족을 향한 짙은 그리움을 나타내며 눈물을 흘렸다. 41년 전 광주를 무참히 짓밟았던 전두환(90) 전 대통령의 사과는 올해에도 없었다. 

18일 오전 10시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국가보훈처 주관으로 열린 제41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이 거행됐다. 기념식에는 코로나19 상황을 고려해 김부겸 국무총리와 여야 지도부, 5·18 유공자 및 유족, 각계 대표 등 99명이 참석했다.

올해 기념식 주제는 '우리들의 오월'로, 41년 전 광주의 오월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오월이라는 의미가 담겼다. 5월의 아픔에 대한 진정한 사과·용서·위로를 통해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그 정신을 전국화·세계화해 국민통합을 이루자는 메시지다.

1막 공연에서는 올해 41년 만에 사진이 발견된 고(故) 전재수 군과 5·18 당시 투사회보의 필경사로 활약한 고(故) 박용준 열사의 사연을 담은 영상이 상영됐다. '기록을 말하다'라는 주제로 유네스코 기록물로 등재된 5·18 당시 일기 등을 활용한 독백 형식의 공연과 비올라 5중주의 '바위섬' 추모 연주가 이어졌다. 2막 공연에서는 미얀마 등 전 세계 민주주의를 선도하는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표현하는 영상이 상영됐다. 기념식은 참석자 전원이 일어나 5·18 상징곡인 '님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는 것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5·18 민주화운동 41주년을 맞은 18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를 찾은 시민이 열사 묘소를 참배하고 있다. ⓒ 연합뉴스
5·18 민주화운동 41주년을 맞은 18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를 찾은 시민이 열사 묘소를 참배하고 있다. ⓒ 연합뉴스

김 총리는 기념사에서 "화해와 용서는 지속적인 진상 규명과 가해자들의 진정한 사과, 살아있는 역사로서 '오월 광주'를 함께 기억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며 당사자들의 용기 있는 증언과 가해자들의 사과를 촉구했다.

이어 "광주에 투입됐던 공수부대원이 지난 3월 자신의 총격에 희생당한 고(故) 박병현 씨 유가족을 만나 사죄했다"며 "당사자와 목격자 여러분, 더 늦기 전에 역사 앞에 진실을 보여달라. 내란목적 살인죄를 저지른 핵심 책임자들도 진실을 밝히고 광주 앞에 무릎 꿇고 용서를 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광주시민들이 군부 독재에 맞서 싸우는 미얀마 시민들을 응원하고 지난해 대구에서 코로나19 환자가 급증했을 당시 가장 먼저 병상을 내주고 도움을 준 점을 언급하며 '오월 정신'을 강조했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 김기현 국민의힘 당 대표 권한대행, 여영국 정의당 대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등도 기념식장을 찾았다. 더불어민주당 대권 주자인 김두관 의원, 정세균 전 총리는 이날 오전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5·18 구묘역)을 참배했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이날 오후 광주 동구청에서 기본소득지방정부협의회 소속 광주 5개 구청장과 간담회를 한 뒤 묘역을 참배할 예정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사자명예훼손 혐의 1심 선고공판에 참석하기 위해 11월30일 광주지방법원에 출석하고 있다. 이날 재판부는 5·18 당시 헬기사격이 있었다고 판단하며 전씨의 사자명예훼손 혐의에 유죄를 선고했다. ⓒ연합뉴스
전두환 전 대통령이 사자명예훼손 혐의 1심 선고공판에 참석하기 위해 2020년 11월30일 광주지방법원에 출석하고 있다. 이날 재판부는 5·18 당시 헬기사격이 있었다고 판단하며 전씨의 사자명예훼손 혐의에 유죄를 선고했다. ⓒ연합뉴스

전두환, "사격 명령" 증언에도 '모르쇠' 일관

1980년 5월 18일 광주에서 무고한 시민들을 군화발로 짓밟고 무차별 사격을 가한 가해자 전두환 전 대통령은 올해에도 아무런 입장을 내지 않았다. 

5·18과 관련한 재판에서도 전 전 대통령은 단 한번도 참회나 반성의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전 전 대통령은 2017년 출판한 자신의 회고록에서 5·18 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에서 헬기 사격 목격을 증언한 고(故) 조비오 신부를 가리켜 '신부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하고 사자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에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그러나 전 전 대통령은 건강상의 이유를 들어 항소심 재판 출석을 계속 거부하고 있다. 오는 24일 예정된 공판에도 불출석 의사를 밝혔다. 

지난해 11월30일 광주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에 참석했던 전 전 대통령은 재판에서 졸거나 시종일관 무성의한 태도로 공분을 샀다. 취재진과 몰려든 사람들에게 짜증 섞인 말을 뱉으며 다소 흥분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알츠하이머병에 걸렸다는 이유를 들며 1심 재판 출석을 거부했던 전 전 대통령은 2019년 11월 말 강원도에서 골프를 치고, 12월엔 12·12 사태 가담자들과 오찬 회동까지 가진 것으로 드러나 지탄을 받았다.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의 모습 ⓒ 5·18민주화운동 기록관 홈페이지 캡처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의 모습 ⓒ 5·18민주화운동 기록관 홈페이지 캡처

조사위 "조준 사격, 시신 매장" 증언 확보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이하 조사위)가 진행할 면담 조사 역시 전 전 대통령은 응하지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조사위는 다음달부터 전 전 대통령의 사격 지시 사실을 증언한 정호용 당시 특전사령관 등 신군부 핵심 관계자 37명에 대한 본격적인 면담 조사를 진행할 방침이다. 

조사위는 당시 계엄군이 시민들을 향해  M60기관총과 M1소총을 이용한 조준 사격을 했다는 구체적인 진술을 확보했다.

조사위가 확보한 진술에 따르면, 제3공수여단은 1980년 5월20일 오후 10시 이후 광주역, 22일 이후 광주교도소의 감시탑과 건물 옥상에 각각 M60기관총을 설치하고, M1에 조준경을 부착해 시민들을 살상했다. 제11공수여단도 같은 달 21일 전남도청 앞 집단 발포 직후 금남로 주요 건물 옥상에 저격수를 배치해 시위대를 향해 조준 사격했음을 인정한 진술을 확보했다.

복수의 계엄군 진술을 통해 광주교도소 옆 고속도로에서 차를 타고 지나가던 신혼부부가 군의 발포로 숨졌고 현장에서 매장됐다는 내용도 처음으로 확인됐다. 또 광주봉쇄작전 중 사라진 시신이 최소 55구에 달한다는 정부 공식 발표가 나왔고, 계엄군이 '사체처리반'을 운용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조사위는 "광주봉쇄작전 중 사망한 이들의 시신 중 광주교도소 일원 최소 41구, 주남마을 일원 최소 6구가 확인되지 않았고, 송암동 일원 최소 8구의 시신도 확인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조사위는 현재까지 1980년 당시 광주에 투입된 2만353명의 계엄군 중 200여 명의 증언을 확보한 상태로, 향후 2000명 이상의 진술을 추가 확보할 방침이다.

송선태 위원장은 "저격수로 배치돼 시위대를 조준 사격한 병사가 피해자 유가족을 만나 진실을 고백하고 사죄하겠다는 뜻을 전해오는 사례가 늘고 있다"며 "가해자와 피해자, 사회공동체가 반목과 갈등, 폄훼와 왜곡을 극복하고 대화합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될 수 있도록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의 모습 ⓒ 5·18민주화운동 기록관 홈페이지 캡처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의 모습 ⓒ 5·18민주화운동 기록관 홈페이지 캡처
1980년 5월 5·18 민주화운동 당시 광주 시민들이 금남로 전일빌딩 앞에서 계엄군과 대치하고 있다. ⓒ광주시
1980년 5월 5·18 민주화운동 당시 광주 시민들이 금남로 전일빌딩 앞에서 계엄군과 대치하고 있다. ⓒ광주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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