野 세대교체 돌풍, 정치권 쓰나미 될까 [유창선의 시시비비]
  • 유창선 시사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6.06 10:00
  • 호수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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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투쟁 훈장 삼아 정치적 장기 집권해 온 ‘586’도 도전 직면할 듯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불어닥친 ‘이준석 돌풍’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일반 여론조사에서 2위를 달리는 나경원 전 원내대표와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고, 당원들 여론조사에서까지 팽팽한 접전 양상이다. 변화에 가장 둔감해 보이던 정당이었는데, 민심이 당심(黨心)을 끌고 가는 상황이 되고 있다. 여론조사에서 아무리 앞선들, 70%의 당심은 나경원이나 주호영의 손을 들어줄 것이라던 예상과 달리, 이러다가 정말 이준석이 될 것 같다는 전망에 힘이 실리고 있다. 이제 이준석이 당 대표가 되지 못하면, 당심이 민심을 거부했다는 소리를 듣게 되었으니 말이다.

이준석 현상을 바라보는 국민의힘 안팎의 시선은 엇갈린다. ‘국회의원 0선의 30대 청년 이준석’이 당 대표가 되는 상황에 대해 우려를 표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우선은 보수정당에서 몇 차례씩 국회의원을 하면서 중진의 위치에 있는 장·노년층 정치인들이다. 이준석이 당 대표가 되면 자신들은 ‘정치적 고려장’을 당할지 모른다는 위기의식을 갖는 이들에게서는 심지어 나경원-주호영 후보 단일화 같은 궁색한 얘기까지 나온다. 중진들과는 다른 맥락이지만, 이준석이 대표가 되면 국민의힘이 쪼개지고 정권교체도 실패할 위험이 크다는 우려 또한 당 주변에 있다. 검증되지 않은 이준석 리더십에 대한 불안감인 것이다. 

국민의힘 이준석 당 대표 후보(가운데)가 5월31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신사옥에서 열린 《100분 토론》 생방송에 참석해 있다. 좌우는 주호영·나경원 후보ⓒ시사저널 박은숙
국민의힘 이준석 당 대표 후보(가운데)가 5월31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신사옥에서 열린 《100분 토론》 생방송에 참석해 있다. 좌우는 주호영·나경원 후보ⓒ시사저널 박은숙

‘윤석열 후보-이준석 대표’ 조합 확장성 키워

실제로 그는 전당대회를 앞두고 ‘남성들이 당하는 역차별’ 문제를 제기하며 여성할당제 폐지를 내걸었다. 그래서 이남자(20대 남자)들의 지지를 얻기는 했지만, 남녀 사이의 갈등을 조장하고 편승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가 말하는 ‘공정한 경쟁’은 ‘승자에게는 자신감을, 패자에게는 절망감을 안겨주는 능력주의의 다른 표현일 뿐’이라는 비판도 있다. ‘남자 청년’이 아닌 ‘당 대표 이준석’이 과연 우리 사회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껴안고 조정하는 리더십을 보여줄 수 있을지, 전혀 검증되지 않은 영역의 것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에는 원래 불안감이 따른다. 그 길로 가면 막다른 길이 나오지는 않을지, 혹 낭떠러지라도 만나게 되지는 않을지 걱정하는 게 사람들의 마음이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낡아빠진 길로만 다닐 수는 없는 법, 위험을 감수하면서라도 새로운 길을 개척해야 더 나은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 그래서 이준석 비토론은 나무만 보고 숲은 보지 못하는 경우다. 지금 중요한 것은 개인 이준석이 ‘깜’이 되느냐 아니냐에 있지 않다. 이준석이라는 개인에 대한 평가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낡은 정치질서를 일단 무너뜨리는 일이다. 

특정 이념과 지역에 기대어 국회의원 선수(選數)만 늘려온 장년과 노년의 정치인들이 주도해 온 보수정당의 역사를 다시 쓰는 일은 정치사적 의미를 갖는 일대 사건이 되기에 충분하다. 만에 하나 중진들의 정치적 불복으로 당이 분열되더라도, 정권교체를 원하는 지지층의 요구는 야권 표의 분열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윤석열이 국민의힘에 들어오는 상황을 예상한다 해도, ‘윤석열 후보-이준석 대표’ 조합은 확장성을 키우는 데 상당히 긍정적인 작용을 할 수 있다. 그러니 국민의힘이라는 당 차원에서 ‘이준석 대표’를 불안해할 이유는 막상 없어 보인다.

물론 이준석이 세대교체의 적임자가 될 수 있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이준석에 대한 여러 비판과 우려를 감안한다 해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그렇게라도 하는 것이 야당으로서는 백배 천배 나은 일이다. 언제나 그들만의 리그로 치러졌던 보수정당의 전당대회가 이렇게 국민적 관심사가 되었던 적이 언제 있었던가. 이미 이준석 효과는 십분 발휘되고 있는 셈이다. 보수정치 하면 홍준표의 막말과 황교안의 태극기 연대, 그리고 나경원의 우향우 정치를 떠올리던 많은 중도층에 그런 정치인들의 퇴장을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면, 그것만으로도 ‘이준석 대표’의 등장은 의미 있는 사건이 된다.

 

대결·증오의 진영 정치 넘어 공존의 정치로

더 중요한 것은, 이준석 대표 선출이 가져올 파장이 국민의힘에 머무르지 않고 우리 정치 전체를 흔들 수 있다는 사실이다. 사실 세대교체의 과제가 어디 야당만의 문제이던가. 이념과 지역을 기반으로 장수해 온 국민의힘 정치인들이 있다면, 민주화투쟁을 훈장 삼아 정치적 장기 집권을 해 온 더불어민주당의 586 정치인들이 또한 자리하고 있다. 보수정치와 진보정치에서 따로 존재하는 듯한 이들은 서로가 대척점에 서 있는 것 같지만, 어느덧 우리 정치의 고인 물이 되어 ‘기득권’ 소리를 듣고 있다는 점에서는 매한가지다. 당장 국민의힘에서 30대 당 대표가 등장한다면 민주당 또한 ‘너희들은 뭐 하냐”는 질문을 피하기 어렵게 될 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야당을 이끌던 20년 전, 정치 개혁을 외치며 정치에 뛰어들었던 ‘젊은 피’들은 문재인 정부 들어 명실공히 정권의 중심 세력이 되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더 이상 변화를 말하지 않는다. 조국을 엄호하고 대통령을 지키기 위해 ‘한 술 더 뜨는’ 586 정치인들의 모습은 이런 탄식을 낳는다. “그간 ‘왜 말을 저렇게 싸가지 없게 하지?’와 같은 의문을 불러일으키는 독설이나 실언을 한 주인공들은 대부분 586 의원이었다.”(강준만, 《싸가지 없는 정치》)

야당에서 세대교체의 사건이 일어난다면, 그런 여당으로서도 강 건너 불구경만 할 수는 없게 될 것이다. ‘청년 정치’를 내세우던 민주당의 2030 의원들은 함께 약속이라도 한 듯이, ‘친문 586’ 선배들의 길을 따르기로 작심한 모습들이다. 청년 정치인들부터 ‘독립’이 아닌 ‘예속’의 길을 가고 있으니 세대교체가 가능할 리 없다. 이준석이 당 대표가 되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가 단지 야당만의 일이 아닌 이유다.

1970년대 초 김영삼과 김대중이 경쟁을 벌였을 때 나이가 각기 44세와 45세였다. 당시 양김이 내걸고 나온 ‘40대 기수론’은 야당의 세대교체와 체질 개선을 이루는 계기가 되었다. 그 젊은 나이에 1971년 대통령선거에서 박정희와 한판 승부를 벌인 김대중이 탄생했고, 야당의 반독재 투쟁을 이끈 김영삼이 탄생했다. 그로부터 반세기의 세월이 지난 오늘날 한국 정치의 세대교체는 멈춰버렸다. 

여당에서는 이제 어느덧 ‘기득권’ 소리를 듣는 586 정치인들이 물러설 줄 모르고 장기집권을 구가하고 있다. 야당에서는 ‘꼰대’ 소리를 듣는 고령의 정치인들이 끈질기게 건재하다. 우리 정치가 다시 시작되어야 한다면 이 낡은 질서를 무너뜨리는 일이 출발점이 될 것이다. 정치에서 세대가 교체된다는 것은 정치를 지배하는 가치가 바뀜을 의미한다. 모든 세대는 자신들의 역사적 경험에 따라 가치를 만들어간다. 오늘 한국 정치의 질곡이 되어 버린 극단적 진영 정치도 그 산물이다. 상대를 적으로 간주하지 않는 개방성을 갖고 성장한 다음 세대가 정치를 주도할 때 지긋지긋한 대결과 증오의 진영 정치를 넘어, 톨레랑스와 공존의 정치로 갈 수 있을 것이다. 그 흐름의 한복판에 이준석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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