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물의’ 기업 CEO 사임 관행화된 까닭은
  • 송응철 기자 (sec@sisajournal.com)
  • 승인 2021.06.07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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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세대에 ‘나쁜 기업’ 낙인 찍히면 생존에 위협
홍원식 전 남양유업 회장이 지난 5월4일 서울 강남구 남양유업 본사에서 '불가리스 셀프발표' 논란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하는 모습 ⓒ연합뉴스
홍원식 전 남양유업 회장이 지난 5월4일 서울 강남구 남양유업 본사에서 ‘불가리스 셀프발표’ 논란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하는 모습 ⓒ연합뉴스

사회적 논란을 일으킨 기업 대표들이 연이어 자리에서 물러나고 있다. 논란이 잠잠해질 때까지 버티거나 ‘자숙’ 명목으로 경영에서 일시적으로 물러나 있다 은근슬쩍 복귀하던 과거와 달라진 풍경이다. 이는 ‘소비권력’으로 부상한 MZ세대(밀레니얼세대+Z세대)의 착한 기업 선호 경향을 고려한 결정으로 해석된다. 이들의 눈밖에 날 경우 영업활동에 차질을 넘어 생존에 타격을 입을 수 있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조윤성 GS리테일 사장의 경질이 대표적인 사례다. GS25는 지난 1일 소셜미디어(SNS)에 게재한 캠핑 이벤트 포스터와 관련해 제기된 남성 혐오(남혐) 논란이 계기였다. 이 일로 조 사장은 플랫폼 BU(사업부문)장과 함께 겸직하던 편의점 사업부장 직책에서 물러났다. 그뿐만 아니라 문제의 포스터를 디자인한 디자이너는 징계를 받았고, 마케팅 팀장도 보직 해임됐다.

국내 1위 온라인 패션 플랫폼 무신사의 창업자인 조만호 대표도 최근 이벤트 포스터가 남성 차별과 혐오 논란에 휘말리자 사의를 표했다. 앞서 지난 4월에는 장경훈 전 하나카드 사장이 회의석상에서 “카드를 고르는 건 애인이 아니라 와이프를 고르는 일” 등 ‘여성 비하’ 발언을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홍원식 전 남양유업 회장은 사퇴에 그치지 않고 회사를 매각하기까지 했다. ‘불가리스’가 코로나19 억제 효과가 있다는 허위‧과장 연구결과를 발표한 게 결정타였다. 구본성 아워홈 부회장이 지난 4일 주주총회에서 대표이사직에서 밀려난 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해석된다. 그가 지난 3일 보복운전 등의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은 것이 주총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다.

불과 1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CEO가 경질되는 일은 드물었다. 자리에서 물러나더라도 자숙 기간을 갖고 다시 경영 일선에 돌아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소비 권력으로 부상한 MZ세대가 착한 소비를 지향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실제 MZ세대를 중심으로 착한 기업 제품을 구매하는 이른바 ‘돈쭐(돈으로 혼쭐을 내주겠다)’은 착한 소비를 대표하는 단어가 됐다.

반면, MZ세대는 나쁜 기업에는 가차 없는 모습을 보인다. 한번 나쁜 기업으로 낙인 찍히면 영업활동에 차질은 물론 생존마저 흔들릴 수 있다. 남양유업은 사례는 MZ세대의 이런 소비성향을 잘 보여준다. 남양유업은 2013년 대리점 갑질 사태로 불거진 불매운동으로 최근까지 줄곧 경영상 어려움을 겪어오다 결국 매각이 결정됐다. 또 수년 전 총수의 ‘경비원 폭행’ ‘탈퇴 가맹점에 대한 보복 조치’ 등 논란이 이후 힘겹게 버텨오던 미스터피자도 결국 지난해 매각됐다.

게다가 시간이 문제를 해결해 주기를 기대하기도 어려워진 상황이다. 기업에서 논란이 발생할 경우 이를 캡처해 사진 파일 형태로 저장하는 ‘박제’가 유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대체재가 있는 기업의 경우 MZ세대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최근 물의를 일으킨 기업들이 CEO 경질이라는 초강수를 둔 것도 이들의 눈밖에 나지 않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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