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지옥’을 보았다
  • 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7.13 15:00
  • 호수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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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기도, 브레이크도 없이 달리는 영화 《랑종》

무엇을 어떻게 예상하든 모두 빗나갈 것이다. 확실한 건 단 하나. 금기도, 브레이크도, 급기야 아무런 희망도 없는 지옥의 풍경을 마주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7월14일 개봉하는 《랑종》 얘기다. 《곡성》(2016) 나홍진 감독이 제작을 맡고, 아시아 공포영화의 판도를 단박에 뒤바꾼 데뷔작 《셔터》(2004)의 태국 감독 반종 피산다나쿤이 연출을 맡아 의기투합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화제였다. 숲과 땅, 집과 작은 사물에도 모두 신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 태국 북동부 이산 지역. 극 중 배경인 이 공간의 기후만큼이나 영화는 끈적하고 음습한 기운으로 가득하다. 가히 문제작의 탄생이다.

영화 《랑종》의 한 장면ⓒ㈜쇼박스 제공
영화 《랑종》의 한 장면ⓒ㈜쇼박스 제공

업보와 대물림이라는 공포

‘랑종’의 뜻은 영매, 즉 무당이다. 신 혹은 정령, 혹은 유령. 그 무엇이라 불러도 좋을 존재들 역시 이 세상의 일부라는 세계관. 무당은 그 안에서 그들과 우리를 잇는 매개다. 나홍진 감독은 《곡성》의 등장인물 일광(황정민)을 통해 샤머니즘(초자연적 존재와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자를 중심으로 하는 주술 및 종교)의 세계를 그려낸 바 있다. 만약 일광에게 전사(前史)가 있다면 어떤 내용일까. 기왕이면 다른 장소에서 다른 캐릭터로 그 이야기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나홍진 감독은 이 같은 질문을 바탕으로 《랑종》의 원안을 썼다. 하지만 애초에 나홍진 감독이 분명하게 선을 그었듯, 두 영화는 엄연히 다른 작품이다. 《곡성》이 악령의 존재가 갖는 모호성으로 관객을 끈질기게 현혹한다면, 《랑종》의 방향은 좀 더 분명하다. 인간이 아닌 존재와 인간. 그 사이에서 문이 되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면 이는 그들의 믿음에 대한 질문이 된다.

《랑종》은 파운드 푸티지(found footage) 형식을 취한다. 페이크 다큐멘터리의 일종으로, 촬영자의 행방불명 이후 사라졌다가 발견된 영상이 공개됐다는 설정을 바탕으로 하는 하위 장르다. 장르영화 안에서는 《블레어 윗치》(1999)의 성공 이후 흔하게 쓰는 기법이다. 영화 속 모든 이야기는 이산 지역의 유명한 무당 님(싸와니 우툼마)을 취재하는 가상의 제작진, 정확하게는 그들이 촬영한 영상을 통해 펼쳐진다. 대를 이어 가문의 조상신 ‘바야신’을 모신 님과 그의 가족들을 취재하던 제작진은 어느 날부터 이상 증세를 보이는 님의 조카 밍(나릴야 군몽콘겟)을 주목하기 시작한다. 녹화 영상에는 기이하다는 말로도 부족할 밍의 모습들이 포착된다.

영화의 호흡이 가빠지는 건 님과 밍을 둘러싼 가족들의 사연이 서서히 드러나면서부터다. 님은 혹독한 신병을 앓고서도 신내림을 거부한 언니 노이(씨라니 얀키띠칸)를 대신해 바야신을 모셔야만 했다. 님은 밍의 상태를 심상치 않게 여기지만, 노이는 “내 딸을 무당으로 만들 수 없다”며 필사적으로 밍을 님으로부터 떨어뜨린다. 님의 집안 여자들에게 대를 이어 무당의 운명이 전해 내려온다면, 님의 형부이자 조카 밍의 아버지 집안 사람들은 과거 이 지역의 대규모 학살과 깊은 연관이 있다. 게다가 이 가문은 지금도 가축을 살생하는 것을 업으로 삼고 있으며, 남자들은 이미 다 죽고 없다. 영화는 밍에게 일어나는 끔찍한 일들을 일종의 업보와 대물림의 차원에서 이야기한다.

영화 《랑종》의 한 장면ⓒ㈜쇼박스 제공
영화 《랑종》의 한 장면ⓒ㈜쇼박스 제공

금기 없는 묘사 끝에 영화가 던지는 질문

동남아시아의 샤머니즘 세계관과 끈적하고 습한 여름 기후, 대를 잇는 저주와 한의 결합은 무시무시하다. 밍의 증세가 신병이 아니라 악령의 소행 탓이라는 게 밝혀지는 순간부터 《랑종》은 거의 폭주기관차처럼 내달린다. 과거 나홍진 감독은 “《곡성》은 코미디”라는 의아한 표현을 쓴 바 있는데, 《랑종》을 보면 뒤늦게 이해되는 발언이다.

이 영화에 금기라곤 존재하지 않는다. 자세히 묘사하지 않더라도 근친상간, 영아 살해, 식인, 성애 묘사와 동물 학대에 이르기까지 거침없다. 촬영 현장은 안전한 환경이었다고 해도, 보기에 따라서는 가학적으로 느껴질 정도의 수위다. 파운드 푸티지 형식의 영상이기에 화면의 질감은 고르지 않고, 연결은 툭툭 끊기는 편이다. 때때로 심하게 요동치는 화면은 현기증을 동반한다. 멱살이 아니라 머리채를 쥐어잡힌 채 어딘가로 끌려가는 듯한 체험이다. 도덕성을 시험받는 듯한 이 모든 설정이 호러라는 장르성 안에서 용인될 수 있는 것인지는 생각해볼 문제다. 이에 대해 반종 감독은 “꼭 필요한 장면 외에는 자극과 선정성을 절대 이용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부인할 수 없는 건 《랑종》이 뿜어내는 폭발적인 힘이다. 이 영화는 어떤 방식으로든 여운을 남긴다. 음습하고 찝찝한, 개운하지 않은 그 무엇이 몸과 마음에 들러붙는다. 이를 영화적 재미로 허용할 것인가, 아니면 거부할 것인가. 이에 따라 《랑종》에 대한 개별적 평가는 판이하게 달라질 것이다. 밍의 퇴마의식 며칠 전부터 당일까지 휘몰아치는 지옥의 풍경이 지나간 뒤, 영화는 의외의 장면을 라스트신으로 스크린에 띄워놓는다. 이는 끝까지 어떻게든 영화의 흐름을 따라온 관객에게 또 다른 차원의 공포를 선사한다. 나는, 우리는, 지금까지 무엇을 본 것인가. 인간의 믿음은 얼마나 확고한가. 그 믿음이라는 것이 무엇인가에 현혹된 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스스로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가. 그 서늘한 질문이야말로 《랑종》의 진짜 얼굴일 것이다.

영화 《랑종》의 한 장면ⓒ㈜쇼박스 제공
영화 《랑종》의 한 장면ⓒ㈜쇼박스 제공

 

다시 공포의 여름

한동안 주춤했던 ‘여름=공포물’이라는 공식이 올해만큼은 유효하다. 6월 중순 《여고괴담 여섯번째 이야기: 모교》의 개봉을 신호탄으로 공포영화 시즌의 막이 본격적으로 올랐다. 7월14일 개봉하는 《랑종》 외에도 28일 《방법: 재차의》가 찾아온다. 되살아난 시체를 뜻하는 재차의(在此矣)를 소재로 한 영화다. 앞서 12부작 드라마 《방법》을 만들었던 연상호 감독이 각본을 썼다. 주인공은 둘 다 진희(엄지원)로, 동일한 세계관의 이야기다. 넷플릭스는 7월초 오리지널 영화 《제8일의 밤》을 공개했다. 봉인에서 풀려난 ‘붉은 눈’을 저지하기 위해 분투를 벌이는 인물들의 이야기다. 불교 경전인 ‘금강경’의 32장을 모티브로 삼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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