男 1300명 벌거벗긴 그의 “치밀한 시나리오”
  • 공성윤 기자 (niceball@sisajournal.com)
  • 승인 2021.06.21 10:00
  • 호수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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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몸 영상 제작·판매’ 김영준 피해자들이 밝힌 몸캠의 덫...
“협박하며 노예처럼 부렸다”

“실시간 거울로 상체랑 얼굴 봅니다. 사진빨 방지를 위해서. 인증은 저도 가능해요.”

한 유명 데이팅 앱. 누가 봐도 눈에 띌 만한 미모의 여성 사진 아래 이와 같은 글귀가 적혀 있다. ‘좋아요’를 누르고 채팅이 시작되는 순간, 남성들은 덫에 걸린다. 나긋한 여성의 목소리와 함께 음란 영상이 비친다. 그러다가 갑자기 날카롭게 쏘아붙이기도 한다. “치밀하게 설계된 시나리오 같았다.” 피해자의 말이다.

일명 ‘몸캠’이라 불리는 알몸 사진·영상을 8년에 걸쳐 만들고 유포·판매한 혐의를 받는 김영준(29)이 6월11일 검찰에 송치됐다. 그는 남성만을 타깃으로 범죄를 저질렀는데, 피해 남성은 1300여 명에 달한다. 이 중에는 미성년자도 있었다. 앞서 김영준은 아동청소년성보호법, 성폭력처벌법 등 위반 혐의로 6월3일 검거됐다. 범죄의 심각성을 인지한 경찰은 6월9일 그의 신상을 공개했다. n번방 사건 관련자 이후 디지털 성범죄로 신상이 공개된 건 이번이 두 번째다.

음란 영상 판매 피의자 김영준이 6월11일 오전검찰로 가기 위해 종로경찰서에서 나오고 있다.김씨는 여성 행세를 하며 영상통화로 촬영한남성들의 알몸 사진 등을 인터넷에 유포한 혐의다.ⓒ연합뉴스

김영준 쫓은 피해자들…“속을 수밖에 없었다”

김영준은 대체 어떤 수법으로 피해자들을 속인 걸까. 시사저널은 김영준 사건의 피해자 3명과 연락이 닿았다. 지난 4월 피해 신고가 접수되기 전부터 김영준을 쫓은 사람들이다. 이들은 다른 피해자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단체 카카오톡 대화방(단톡방)에 불러모았다. 여기서 범죄 증거를 공유하고 경찰 수사에 적극 협조했다. 시사저널이 접촉한 3명은 해당 단톡방의 방장과 부방장을 맡고 있는 주요 인물들이다.

그들의 말과 경찰 수사를 종합하면, 김영준은 익명 랜덤채팅 앱과 스카이프, 트위터 등을 범죄 통로로 이용해 왔다. 최근에는 세계 최대 데이팅 앱 ‘틴더’를 사용해 왔다. 틴더는 이용자들끼리 서로 ‘좋아요’를 누르면 앱 내에서 채팅을 할 수 있는 방식으로 구성돼 있다. 가입을 위해 별도로 신원을 밝힐 필요 없이 전화번호만 인증하면 된다.

김영준은 인플루언서나 BJ의 사진을 도용해 틴더에 위장 가입했다. 그가 도용한 사진 중에는 인스타그램 팔로워 34만여 명인 유명인도 있었다. 김영준은 여성 사진을 내세워 얘기를 하다가 “답답한데 카톡으로 얘기하자”며 카톡으로 피해자를 유인했다. 카톡의 영상통화 기능을 통해 음란 영상을 찍기 위해서였다.

피해자 단톡방의 부방장 A씨는 “일반인들은 이런 수법에 속아넘어간 남성들이 어리석게만 보일 것”이라며 “그럼에도 속아넘어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다”고 했다. 김영준은 영상통화에서 도용 사진 여성들의 얼굴을 띄운 뒤, 그들의 입모양과 비슷하게 말을 걸었다. 음성은 여성 목소리로 변조된 상태였다. 방장 B씨는 “딥페이크(영상 합성 기술)를 사용했다기보다는 여성의 수많은 영상을 모은 뒤 그럴듯해 보이는 대사를 짜맞췄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 때문인지 여성 얼굴은 10초 내로 짧게 비쳤다고 한다.

이후 김영준은 “화장실 갔다 올게” “불 좀 끌게” 등의 말을 했다. 자연스러운 화면 전환을 위한 핑계였다. 김영준은 곧이어 여성들의 몸만 나오는 음란 영상을 내보냈다. 그러면서 피해자들에게 음란 행위를 시켰다. 경찰에 따르면, 김영준은 불법 촬영물을 포함해 4만5000여 개의 음란 영상을 갖고 있던 것으로 조사됐다.

음란물 4만5000개로 현혹…“가스라이팅 심하게 당했다”

피해자들의 음란 행위는 그대로 녹화됐다. A씨는 “김영준이 영상통화 내내 가스라이팅을 심하게 했다”고 떠올렸다. 피해자들이 요구에 빨리 응하지 않으면 짜증을 내고 소리도 질렀다고 한다. A씨는 “주눅 든 피해자들을 협박하며 노예처럼 부린 셈”이라고 했다.

김영준은 피해자들을 직접 만나는 대범함을 보이기도 했다. 그는 도용한 여성의 입을 통해 피해자에게 “나를 직접 보고 싶으면 대리인을 만나 면접을 봐야 한다”고 말했다. ‘대리인’은 김영준 자신이었고, ‘면접’은 유사 성행위였다. 이와 관련해 경찰은 “김영준이 미성년자 7명을 모텔로 유인해 유사 성행위를 하게 하고 이를 촬영했다”고 발표했다. B씨는 “김영준을 만나 치욕을 당한 사람 중에는 성인도 있다”며 “돈을 벌려는 목적을 떠나 성(性)중독이 심각한 상태”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음란 영상을 얻어내고 현혹시키는 과정은 치밀하게 설계된 시나리오 같았다”고 표현했다.

음란 영상을 파는 과정도 치밀하게 이뤄졌다. 김영준은 영상 최초 구매자의 주민등록증을 캡처해 영상에 워터마크(흐릿한 바탕 무늬) 형식으로 삽입했다. 영상 재판매를 막기 위해서였다. B씨는 “n번방 사건 때 재판매가 일어난 것을 보고 우회 수법을 연구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이렇게 주민등록증을 제공한 구매자는 단숨에 ‘VIP’가 되어 꾸준히 불법 영상을 공급받았다. 대금은 주로 문화상품권으로 받았고, 때론 계좌이체로 받기도 했다.

김영준 또는 모방범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틴더에 올린 도용 사진과 프로필ⓒ피해자 제공
김영준 또는 모방범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틴더에 올린 도용 사진과 프로필ⓒ피해자 제공

김영준 사건, n번방보다 시기·규모 더 심각

일부 언론은 김영준 사건을 두고 ‘제2의 n번방’이라고 보도했다. 이에 B씨는 “n번방의 모방 범죄로 접근할 사안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우선 김영준이 범행을 저지른 건 지난 2013년 11월부터다. 2018년 하반기에 시작된 n번방보다 5년 먼저 시작됐다. 시기로만 보면 n번방이 ‘제2의 김영준 사건’인 셈이다.

피해 규모도 김영준 사건이 더 크다. 지난해 경찰이 최종 발표한 n번방 피해자는 1154명이었고, 김영준 사건 피해자는 지금까지 확인된 숫자만 1300여 명이다. 그 밖에 시민단체는 n번방 사건 당시 유사 성착취물 공유방의 참여자가 26만여 명이라고 밝혔다. B씨는 “김영준이 만든 영상의 조회 수는 평균 20만~30만이었고 50만까지 찍힌 것도 봤다”고 주장했다. 이어 “리트윗되고 해외 사이트에 퍼진 것까지 고려하면 우리가 확인한 조회 수는 최소치라고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사건의 피해자는 학생부터 군인, 직장인, 의사까지 다양한 직업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은 구속됐지만 이제부터 진짜 시작”이라며 “솜방망이 처벌로 끝나거나 영상이 계속 유출될 것을 우려해 단톡방을 계속 운영하며 대응하고 있다”고 전했다. B씨는 “피해자들 중에서 자신들이 잘못해 범죄에 휘말렸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다”며 “안타깝지만 더 이상 피하지 않고 적극 대응하려고 한다”고 했다. 피해자들은 민사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경찰은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자와 영상통화를 할 때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 “혼자 했다”는 김영준의 말은 진짜?…모방범 가능성 있어

“공범 있습니까?” “저 혼자 했습니다.” 6월11일 서울 종로경찰서 포토라인에 선 김영준은 취재진의 질문에 이와 같이 답했다. 하지만 적어도 모방범이 있다는 사실을 뒷받침할 정황은 짙어지고 있다.

틴더는 상대방의 접속 지점이 몇 km 떨어져 있는지 알려주는 기능을 제공한다. 그래서 상대방과 매칭이 되지 않더라도 그 위치는 대략적으로 가늠할 수 있다. 김영준 피해자 단톡방의 부방장 C씨는 틴더의 위치 추적 기능을 근거로 이렇게 말했다.

“지난 3월3일 오전 3시경에 인천 구월동 부근에서 피해가 있었다. 그런데 같은 날 오후 10시쯤 서울 홍제동에서 비슷한 피해가 또 나왔다. 둘 다 같은 영상과 같은 목소리에 당했다.” 즉 30km 넘게 떨어진 두 지역에서 하루 만에 유사 범죄가 발생한 것이다. C씨는 “김영준 혼자 저질렀다고 보기에는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되는 상황”이라고 했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카카오톡 대화록과 영상에는 당시 피해 상황이 담겨 있었다.

김영준이 검거된 6월3일 이후에도 유사 범죄가 속출하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 6월6일에는 익명의 인스타그램 이용자가 김영준 사건 피해자에게 협박성 메시지를 보낸 사실이 확인됐다. 피해자 단톡방 방장 B씨는 “6월14일에 피해를 당했다고 호소하는 분이 들어왔다”며 “이분 얘기를 들어보니 김영준의 범죄와 똑같은 수법에 넘어갔다”고 전했다. 모방범이 지금도 암약하고 있다는 취지다.

김영준의 영상에 대해 잘 아는 한 네티즌은 시사저널에 “김영준이 범행을 시작한 2013년 이전부터 활동한 사람(몸캠 제작자)이 있다”고 말했다. 사실이라면 김영준이 오히려 누군가의 모방범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 관계자는 “김영준의 수법은 워낙 널리 알려져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다른 몸캠 제작자도) 김영준과 같은 프로그램을 쓴다”며 “김영준의 영상 몇 개만 보더라도 화면을 유심히 보면 사용한 프로그램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단 공범 가능성에 대해선 “확인된 바 없다”고 했다.

특정 범죄에서 공범이 있다는 게 밝혀지면 ‘범죄단체조직죄’가 추가 적용될 수도 있다. 이 경우 단체를 만들어서 조직적으로 범죄를 저질렀고, 범행을 분담했다는 사실 등이 입증돼야 한다.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은 6월1일 항소심에서 범죄단체조직 혐의가 인정돼 징역 42년을 선고받았고, 공범에게는 13년형이 떨어졌다. 방정현 변호사는 “아직은 김영준이 조주빈처럼 범행을 분담했다고 확신할 수 없다”며 “다른 사람들이 김영준을 모방해서 각자 범죄를 벌였다면 공범 관계는 아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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