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극우의 몰락…포퓰리즘의 한계 드러나
  • 김중회 프랑스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7.14 11:00
  • 호수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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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선거에서 참패한 르펜의 국민연합…‘중도’ 마크롱의 여당도 동반 참패

지난 6월27일(현지시간) 프랑스 전역에서 실시된 지방선거는 공화당과 사회당이 의석을 양분하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이는 지난 2017년 대선 당시 ‘중도’를 표방했던 마크롱 대 ‘극우’ 성향인 르펜의 양자 대결구도로 새롭게 개편됐던 정치지형이 다시 그 이전의 ‘중도좌파’(사회당) 대 ‘중도우파’(공화당)로 원상복귀되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2016년 에마뉘엘 마크롱은 좌파와 우파로 갈리는 기성정치를 심판하겠다며 중도 성향의 ‘전진하는 공화국’(이하 전진당)을 창당해 돌풍을 일으키며 대통령에 당선됐다. 하지만 집권여당인 전진당은 사실상의 집권 마지막 해에 ‘전패’라는 참담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일부 지역에서 주의원과 데파르트망(중역) 의원을 비례대표로 당선시킨 것 외에는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내년 4월 있을 마크롱 대통령의 재선 도전에도 ‘적신호’가 켜진 셈이다.

지난 대선에서 마크롱 대통령의 가장 강력한 경쟁 상대였던 마린 르펜이 이끄는 극우 성향 정당 ‘국민연합’에는 더 충격적인 성적표가 날아들었다. 국민연합은 지난 2015년 지방선거 1차 선거에서 대다수 지역에서 압도적 1위를 석권하며, 유럽의 ‘극우 포퓰리즘 광풍’을 일으켰다. 그러나 6년이 지난 이번 선거에서는 12개 본토 지역구 중 한 곳도 의석을 얻지 못했다. 전통적인 지지 세력이 있는 동북권·동남권의 일부 데파르트망에서 다수당 자리를 지켜낸 것에 만족해야 했다. 프랑스 동남권인 ‘프로방스 알프-코트 다 쥐르’ 지역을 제외한 전 지역에서 1차 투표 기준 15%, 2차 투표 기준 10% 수준의 선택을 받았다. 무엇보다 수도권인 ‘일 드 프랑스’주를 비롯한 대다수 지역에서 주요 정당 중 ‘최하위’ 득표를 했다.

프랑스 주요 언론은 이번 선거 결과에 대해 중도와 극우 열풍으로부터 비롯된 ‘정치실험’이 결국 막을 내리기 시작했다고 평한다. ‘경직된 복지국가에 대한 파격적 구조조정’을 주장했던 전진당과 ‘애국심을 중심으로 국가의 주권을 회복하고 유럽연합과 세계화에서 벗어나 자국의 질서를 관철’할 것을 외쳤던 국민연합의 파격성이 한때 프랑스 시민들을 사로잡기도 했으나, 코로나19라는 커다란 변수가 작동한 것이다. 그것으로 촉발된 ‘극심한 경제사회 전반의 불안정’은 시민들로 하여금 다른 선택을 하게 했다. 그 결과로 그간 프랑스의 현대사를 꾸준히 이끌어왔고, ‘공화적 가치’와 ‘복지국가’를 중심으로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온 기성 양당이 다시 정치 전면에 복귀했다는 것이다.

국민연합의 대표인 마린 르펜이 6월27일 파리 근교 낭테르 당사에서 지방선거 패배에 대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EPA 연합
국민연합의 대표인 마린 르펜이 6월27일 파리 근교 낭테르 당사에서 지방선거 패배에 대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EPA 연합

‘적극 지지층’ 없는 구조적 문제 봉착

프랑스 내 여러 기관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프랑스 국민 4명 중 1명은 선거 이후에도 여전히 극우 정당인 국민연합을 지지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하지만 지방선거 결과는 달랐다. 이유가 뭘까. 이와 관련해 이번 지방선거의 낮은 투표율이 주목된다. 이번 지방선거 투표율은 34%로 역대 지방선거 중 가장 낮았다.

이를 두고 실제 선거를 움직이는 것은 결국 ‘적극 지지층’과 ‘정치 참여도가 높은 계층’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전문 여론조사기관인 입소스(Ipsos)와 프랑스TV(France TV), 라디오 프랑스(Radio France) 등이 공동으로 실시한 3000명 대상 여론조사 결과, 73%의 국민연합 지지자는 이번 지방선거에 참여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주요 언론들은 “시민들의 정치 혐오를 지지 기반으로 삼은 정당들이 실제 선거에선 조직된 유권자를 동원할 수 없는 구조적 문제가 이번 선거를 통해 증명됐다”고 평한다. ‘정치 혐오’와 ‘포퓰리즘’을 중심으로 모인 유권자들은 정치에 참여하는 적극성을 띠지 못하기에 실제 ‘권력 창출’을 이뤄내기 힘들다는 것이다. 정치에 대한 반감으로 형성된 정치 혐오가 한 정당에 대한 희망을 중심으로 형성되는 ‘정치 참여’로 전환되지 않는다는 구체적인 분석이다.

이 문제는 ‘탈이념적 극중(極中)주의’와 ‘실용주의’ 등을 표방했던 여당(전진당)에도 동일하게 적용됐다. 여당은 마크롱 대통령의 재선을 앞두고 현 정부의 내각 각료들을 전략공천하는 등 심혈을 기울였음에도 참패했다. 이로 인해 전진당은 ‘이벤트 정당’이라는 굴욕적 별명까지 얻었다. 정치평론가들은 현 정부가 추진했던 연금 개혁, 노동법 개혁, 대학 평준화 폐지, 복지 삭감 등 중심 의제와 가치가 분명하지 못한 ‘중도 정당의 딜레마’가 지지층의 소극성을 불러왔다고 평한다.

프랑스 지방선거가 치러진 6월27일 서부 도시 렌 거리에 붙은 선거 포스터 앞을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AP 연합
프랑스 지방선거가 치러진 6월27일 서부 도시 렌 거리에 붙은 선거 포스터 앞을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AP 연합

극우·극좌 양극단 정치의 한계도 뚜렷

이번 선거로 극단 정치의 한계가 드러났다는 분석도 나온다. 극우의 국민연합뿐만 아니라 극좌 정당인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 역시 이번 지방선거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얻지 못했다.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는 한때 사회당을 대신해 프랑스 대표 좌파 정당으로 떠오르기도 했다. 사실 사회가 불안정해질수록, 정치 극단화 현상은 심해지기 마련이다. 선거와 별개로 극우 정당의 지지도가 여전하다는 점이 이를 증명한다. 그러나 체감되지 않는 극단의 정치에 대한 기대효과는 점점 떨어지고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포퓰리즘의 한계라는 지적이다.

아울러 국민연합은 최근 내홍 조짐까지 보인다. 마크롱을 위협할 수 있는 유력 대권주자였던 르펜이 인종차별 등의 이슈와 관련해 극우 색채를 약화시키는 행보를 보이자 당 내부로부터 거센 비난에 직면한 것이다. 한마디로 내우외환의 위기다.

이번 지방선거 결과만으로 기성정치의 대안을 찾고자 하는 정치실험이 끝났다고 보기 어렵다는 전망도 있다. 프랑스는 내년에 대선을 치른다. 국민연합의 당수 르펜은 여전히 강력한 지지를 받는 후보다. 그럼에도 이번 지방선거 결과를 외면하기 어렵다. 이번 선거 결과의 원인이 된 시민들의 불안감과 적극 지지층의 부족은 극단 정치의 치명적 약점이다. 국민들은 어떻게 보고 있으며 또 어떤 선택을 할까. 실험의 최종 결과를 확인하기까지는 10개월도 채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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