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익 축구는 이상, 우익 축구는 승리지상…세계 최강팀은 양쪽을 섞어
  • 박찬용 칼럼니스트 (chunyg@sisajournal.com)
  • 승인 2021.07.18 13:00
  • 호수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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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적 비대면, 고독한 시대의 기쁨 ‘유로 2020’ 축구 드라마
스포츠엔 일류 인간만이 구현할 수 있는 아름다운 순간 있어

코로나19는 사람들의 호흡기뿐 아니라 정신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이 병에 걸리지 않으려면 감염원인 사람을 만나지 않아야 한다. 사람을 안 만나면 외로워지고, 외로우면 우울해진다. 이 고독과 우울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스포츠 시청은 어떨까. 스포츠는 늘 사람을 끌어들인다. 스포츠의 세계에는 전성기를 맞은 인류 최고의 재능이 있다. 모두가 좋아하는 예측 불허의 실시간 드라마가 있다. 승부라는 큰 드라마 속에는 개개인의 열정과 노력이 있다. 스포츠야말로 21세기 최고의 종합 콘텐츠다. 이를테면 최근 끝난 유로 2020 결승전만 해도 대단한 드라마였다. 이번 유로 2020도 이변이었다. 현재 세계 축구 최강팀 중 하나인 벨기에와 영원한 우승 후보인 독일이 탈락했다. 이름뿐인 축구 종가 잉글랜드와 늘 비슷한 축구 노포 이탈리아가 런던의 축구 성지 웸블리 구장에서 결승에 진출했다. 흥미로운 대조였다.

ⓒ시사저널 임준선

젊고 빠른 잉글랜드에 맞서 능글맞은 이탈리아가 우승

7월11일 열린 영국과 이탈리아의 축구는 두 나라의 이미지처럼 달랐다. 잉글랜드는 젊고 빨랐다. 이탈리아는 능글능글하고 끈적끈적했다. 경기는 1대1로 마무리돼 승부차기까지 갔다. 젊고 빠른 잉글랜드의 키커들은 실축을 연발했다. 이탈리아는 능글맞을 정도로 노련해 중요한 순간에 강했다. 잉글랜드의 마지막 키커는 2001년생 부카요 사카, 이탈리아 골키퍼는 1999년생 지안루이지 돈나룸마. 사카가 오른쪽으로 찬 공을 돈나룸마가 막았다. 유로 2020은 이탈리아의 우승으로 끝났다.

유로 2020의 결승전쯤 되는 대형 이벤트에는 여러 관전 요소가 있다. 예를 들어 양 팀의 감독은 어떤 옷을 입었는가? 그 옷이 뜻하는 바는 무엇인가? 어떤 감독은 트레이닝복을 입고 경기를 지휘하는데 어떤 감독은 타이까지 맨 정장으로 경기장에 선다. 이번 결승전의 감독들이 입고 나온 옷은 모두 나름의 재미와 상징 요소를 갖췄다.

이탈리아 감독 로베르토 만치니는 조르지오 아르마니가 디자인한 세퍼레이트 정장을 입었다. 셔츠는 호텔 컨시어지가 갓 빨아 다려서 갖다준 걸 바로 입었나 싶을 만큼 주름 하나 없었다. 만치니는 경기 내내 중년 모델처럼 이 정장을 입었다. ‘국가대표 축구팀 경기를 현장에서 지휘하는 입장에서도 입을 건 다 입고 부릴 멋은 다 부렸구나’ 싶어진다. 그 역시 이탈리아의 한 면모일 것이다. 잉글랜드의 감독 가레스 사우스게이트도 자신의 정장으로 응수했다. 그는 영국 막스 앤 스펜서 정장을 입었다. 같은 정장이라도 영국과 이탈리아의 정장은 몸을 감싸는 실루엣이나 어깨를 처리하는 방식이 다르고, 그걸 보는 것도 재미다.

둘의 정장은 영국과 이탈리아만큼 다른 동시에 국가 간 교류가 가속화되는 21세기의 한 단면을 보여주기도 한다. 만치니가 매고 있던 타이의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떨어지는 사선 줄무늬는 영국식 타이의 전통적인 무늬에서 왔다. 사우스게이트가 차고 있던 팔찌는 이탈리아 피렌체의 남성복 박람회인 피티 워모에서나 볼 수 있는 21세기 남성의 멋부리기 잔기술이다. 정장 하나로도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게 대규모 스포츠 이벤트의 재미다. 축구는 글로벌 시대에 돌입한 21세기의 상징물이라 해도 무방하기 때문이다.

그런 걸 떠나 왜 축구를 볼까. 하나는 원초적인 이유다. 축구는 구조적으로 약자가 강자를 이기는 게 가능한 몇 안 되는 스포츠 중 하나다. 개인 스포츠에서 약자가 강자를 이길 확률은 아주 낮다. 반면 팀 스포츠는 여러 가지로 변수가 늘고, 축구는 기본적으로 골이 잘 나지 않는 경기이기 때문에 한 골만 넣고 실점을 하지 않으면 이긴다. 이 경우가 극적으로 발현된 예가 극단적 수비 축구로 우승까지 했던 유로 2004의 그리스다. 유로 2020의 이탈리아도 결승까지의 7경기 중 5경기를 1점차 이내로 이겼다. 골까지의 긴장과 골이라는 해소, 그 과정이 축구의 원초적 쾌감을 만들어낸다.

골 직전까지의 긴장감과 순간의 타격감만으로 지적 쾌감을 느낄 수는 없다. 축구는 알고 보면 굉장히 지적인 스포츠다. 축구의 지적 요소는 전술을 통해 드러나고, 축구 전술은 최신 컴퓨터 소프트웨어처럼 계속 발전한다. 일본 축구 저술가 니시베 겐지는 《좌익 축구 우익 축구》에서 이 경향을 아주 잘 그렸다. ‘좌익 축구 우익 축구’라는 개념은 아르헨티나 감독 세자르 루이스 메노티의 1978년 발언이다. 실제 정치와는 관계없는 개념적 분류지만 확실히 수긍되는 바가 있다. 논지를 요약하면 좌익 축구는 이상주의, 우익 축구는 승리지상주의다. 실제로 세계 축구는 좌익 축구 전술과 우익 축구 전술이 장군 멍군 식으로 발전하고, 지금은 좌익 축구와 우익 축구의 장점을 두루 섞은 전술이 세계 최강팀에서 쓰인다. 복지를 강화한 시장주의 같은 거랄까. 축구에는 이렇게 지적인 토론 요소도 충분히 있다.

 

도쿄의 무관중 올림픽, ‘코로나 고독’의 탈출구 될 것

거기에 더해 축구를 비롯한 일류 스포츠는 아름답다. 적어도 스포츠의 세계에서는 일류 인간이라는 게 있으며, 세상에는 일류 인간만이 구현할 수 있는 아름다운 순간이 있다. 승리와 패배는 팀의 것이지만 아름다운 순간의 주인은 결국 뛰어난 개인의 찰나의 재능이다. 이번 유로 2020 4강전, 이탈리아 페데리코 키에사가 스페인전에서 기록한 골 장면은 한번 보면 잊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0.5초만 지체하면 수비수가 바짝 달라붙을 공간에서 키에사는 조금 멀다 싶은 인프런트 킥을 찼다. 골문 왼쪽에서 찬 슛은 골문 오른쪽을 향하다 왼쪽으로 회전하며 골키퍼의 수비를 넘어 골문 안으로 꽂혔다. 그 짧은 순간에 뇌와 중추신경계와 몸이 어떻게 반응했길래 그런 궤적을 그리는 슛을 한 걸까. 이런 경이로움을 보고 나면 중독된 것처럼 축구를 찾게 된다. 아름다우니까.

세상이 옛날에 비해 아주 많이 변한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인간의 수명이 비약적으로 늘었다. 인간의 그릇된 본능을 억제하는 여러 장치가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설치됐다. 그러나 아름다움에 열광하고 원초적 쾌락을 원하는 인간의 본능은 여전하다. 그러니 우리가 스포츠에 몰입하고, 좋은 경기를 보면 기분 좋게 잠들 수 있는 것 아닐까. 일류 인간들이 자웅을 겨루는 스포츠 이벤트는 코로나19 4차 대유행의 비대면 시대에도 계속된다. 마침 도쿄올림픽도 시작된다. 무관중 경기라도 스크린으로 올림픽을 즐기는 데는 문제가 없다. 스포츠 쾌감이 코로나 고독의 탈출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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