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홍수 대참사가 남의 일 같지 않은 프랑스
  • 김중회 프랑스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7.25 13:00
  • 호수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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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홍수 사태 터지자 부랴부랴 탄소 중립 전환 법안 마련
환경 전문가 “핵심 빠진 ‘누더기 입법’” 비판

독일과 벨기에 등 서유럽을 휩쓴 이례적 폭우와 홍수로 수백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가운데 인접한 프랑스 역시 계속되는 이상기후에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프랑스는 피레네산맥을 낀 보르도 지방을 제외하곤 일반적으로 6월 이후 하절기에는 고온건조한 기후를 유지해 왔다. 그러나 올여름에는 전국 각지에서 7월 내내, 우리나라의 ‘장마’를 연상케 하는 비가 끊이지 않고 있다. 7월16일에는 독일 등과 마찬가지로 프랑스 북부 일부 지역에 ‘홍수주의보’가 내려지기도 했다. 지난 2016년 봄 기록적인 폭우로 센강이 범람하며 충격을 안긴 이후 프랑스에선 홍수 등 이상기후가 점차 잦아지고 있다.

프랑스 환경 전문가들은 당장 이상기후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경고한다. 그러나 전망은 비관적이다. 현재 프랑스 상황에선 이상기후에 대한 ‘진전된 해결책 마련 가능성’이 희박하다. 기후 관련 전문가인 환경과학 연구자 로베르 보타르는 7월16일 공영방송 프랑스 텔레비전과의 인터뷰에서 “전문가들이 아무리 현재의 위기 상황에 대해 연구 결과를 발표하고 예견된 재난을 경고해도 사회와 정치권은 개선책을 내놓으려 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미 프랑스의 수많은 환경 전문가가 탄소 배출 문제와 이상기후 예방책을 촉구했지만, 대책 마련에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정치권과 여전히 위기를 실감하지 못하는 시민들의 안일함에 대한 비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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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에서 5월9일(현지시간) 환경보호 활동가 들이 주축이 된 시위대가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 대응책 강화를 촉구하며 거리 행진을 벌이고 있다. (오른쪽)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기후위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다는 비난에 직면해 있다. 사진은 2020년 9월1일 레바논을 방문해서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EPA 연합

시민들의 표심에 부화뇌동하는 정치권

센강 범람 이후 환경문제에 대한 경각심이 짙어졌던 2017년, ‘환경규제 철폐’와 ‘원전 확대’ 등 반(反)환경적 주장을 했던 극우 성향의 마린 르펜 후보를 꺾고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당선됐다. 자연스레 기후 위기 해결에 대한 국민의 기대감 역시 커졌다. 마크롱 대통령은 “기후 위기에 적극 대응하고 파리기후협약 등 세계 정상 간 약속을 준수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약속과는 반대로 가는 정책을 추진해 큰 논란이 일었다. 탄소 배출의 주요 원인인 항공교통 감축을 주문한 유럽연합(EU) 내 합의에도 노트르담 데 랑드에 서부권 신공항 건설을 강행했다. 해당 부지는 한국의 그린벨트와 같은 ZAD에 속하는 곳이었기에 논란은 더 컸다.

이와 더불어 마크롱 정부는 임기 내내 환경 파괴 주범으로 언급된 대기업을 규제하는 대신, 경기 활성화를 명분으로 대기업들의 세금 감축이나 산업 규제 완화를 추구했다. 2019년 프랑스 정부가 기후 문제에 대한 사회적 대화를 위해 설립한 시민의회인 ‘기후를 위한 시민 협약’ 측에서는 올해 3월1일 발표한 마크롱 대통령의 환경정책에 대한 평가로 10점 만점에 3.3점을, 신뢰도엔 2점을 부여하면서 ‘정치인들의 인기 영합 앞에 무색해진 환경 파괴에 대한 대책 마련의 시급성’을 강하게 주장했다.

이와 같은 현상의 원인은 환경문제를 둘러싼 시민들 사이의 온도차와 이해관계 문제라는 지적이 있다. 2016년 이후 봄마다 기록적인 폭우로 프랑스 수도권 일부 지역이 수몰되는 등 기후변화에 따른 피해가 증가하고 있지만 ‘특정 지역’과 ‘특정 계층’에 한정돼 전반적인 시민들의 공감대를 얻지 못하는 상황이다. 저지대 지역, 인프라가 열악한 ‘저소득층 시민’들에게 피해가 집중되고 있는데, 정작 다른 시민들은 이해관계가 없어 문제 개선에 대한 사회 전반의 해결 촉구 과정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분석이 나온다. 기후 위기에 대한 공감은 전반적으로 존재하지만, 실제 문제 해결을 위한 ‘고통 분담’에는 모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등 국론이 분열되고 있어 제도적인 예방과 탄소 배출 감소를 위한 개혁에는 어려움이 따르는 것으로 보인다.

2018년 마크롱 정부의 유류세 인상으로 촉발된 ‘노란조끼 운동’은 ‘부자 감세’와 ‘서민 증세’라는 조세 형평성의 불균형 현상 때문에 일어난 것도 있지만, ‘탄소 배출 저감’ 책임을 왜 운전자들이 떠맡아야 하는가에 대한 불만에서 기인한 측면이 있다. 이는 환경에 대한 고통 분담과 석유 연료 감축 노력 주장에 대한 자영업자, 물류업자, 농촌 및 외곽 주민들의 극렬한 저항이었다. 2018년 11월6일부터 2019년 11월13일까지 발표된 ‘노란조끼 운동’ 관련 여러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주로 농촌 및 2만 명 이하 소도시 주민들, 블루칼라 노동자 및 농민들이 파리 수도권 및 대도시 주민이나 전문직 계층 등에 비해 10~20%가량 더 지지하는 경향을 보였다.

파리의 경우, 여러 규제 정책과 인프라 확충으로 자동차 대비 대중교통 이용량이 90%에 달하는 등 실질적으로 부담할 비용은 적어 유류세 인상에 대해 동의하는 비율이 다른 지역에 비해 높았으나, 유류세 인상에 직접적인 타격을 입는 운전자들이 많은 지방 및 농촌의 경우 반대 비율이 높았다. 더욱이 2016년 봄에 일어난 센강 범람 이후 매년 수도권 저지대 지역의 피해가 속출하거나 이재민이 발생하는 등 피해가 집중됐지만, 그 외 지방의 경우 수도권의 ‘이상기후’ 피해에 대해 ‘왜 우리가 책임을 져야 하냐’는 문제에 봉착하는 게 현실이다.

‘노란조끼 운동’ 외에도 환경 이슈 관련 정책에 대해서는 ‘생계 위협과 고통 분담’을 둘러싸고 끝없는 갈등이 발생하고 있어 정작 ‘제도적 입안’은 미진한 상황이다. 올 상반기에는 육류 생산과 소비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 감축을 위해 사회당·녹색당 출신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추진한 ‘고기 없는 급식 및 채식 장려’ 정책이 지역 목축업자들의 반발을 사며 ‘채식 논쟁’에 돌입하는 문제가 발생했다.

 

프랑스 조여오는 기후 위기 카운트다운

로베르 보타르는 “지구적으로 유례없는 재난은 앞으로도 빈번하게 발생할 것이고 놀라운 일도 아닐 것”이라는 비관적 진단을 내린 바 있다. 이 진단에 맞춰 정치권의 ‘기후위기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 마련의 필요성’ 역시 강조되고 있다.

이번 서유럽발 홍수 사태가 일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지난 7월20일, 프랑스 국회에서는 경각심을 가지고 환경부 장관 주도로 환경 규제 및 탄소 중립 전환에 대한 정책 기조를 담은 ‘환경법’을 233대 35로 가결했다. 그러나 환경 관련 시민단체들은 여전히 탄소 배출이 많은 상품의 소비에 대해 탄소세를 추가하는 것을 보류하는 등 핵심이 빠진 “임기 말에 부랴부랴 나온 누더기 입법”이라는 비판의 목소리를 내놓았다. 이렇듯 관련 재난 소식이 터지고 나서 제도 입안 속도는 가속화되고 있지만, 여전히 속도와 수준이 낮아 공론화 수준은 아직 미진하다는 것이 관련 전문가들의 평이다. 당장의 ‘생계에 대한 고통 분담’과 ‘미래의 대재난 예방’ 사이의 갈등 앞에 프랑스 시민들은 중재를 바라지만 동시에 불안해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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