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 일본은 없었다…‘올림픽 리스크’에 위신 추락
  • 이혜영 기자 (zero@sisajournal.com)
  • 승인 2021.07.22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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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막 코 앞에 두고 잡음만 계속…여론 악화 속 조롱까지 받으며 국격 ‘위기’
도쿄올림픽 개막식이 임박한 가운데 7월21일 오후 일본 도쿄도(東京都)의 한 고층 건물 전망대에서 경비원이 근무 중이다. 뒤쪽으로 도쿄올림픽의 메인 스타디움으로 사용될 일본 국립경기장이 보인다. ⓒ 연합뉴스
도쿄올림픽 개막식이 임박한 가운데 7월21일 오후 일본 도쿄도(東京都)의 한 고층 건물 전망대에서 경비원이 근무 중이다. 뒤쪽으로 도쿄올림픽의 메인 스타디움으로 사용될 일본 국립경기장이 보인다. ⓒ 연합뉴스

도쿄올림픽이 일본의 새로운 리스크로 떠올랐다. 코로나19 대확산 우려 속에 자국 여론은 물론 국제사회도 이번 올림픽을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후원사로 이름을 올렸던 일본 기업들도 앞다퉈 개회식 불참 및 광고 철회를 선언하며 등을 돌리고 있다. 주요국 정상 불참 속에 아베 신조 전 총리마저 "참석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내비치면서 국민적 분노도 정점을 치닫고 있다.  

여기에 선수촌 시설과 운영 등 곳곳에서 문제가 터져나오며 '도쿄체전'이라는 국제적인 조롱을 받는 처지에 놓였다. 당초 일본 정부는 올림픽을 계기로 동일본 대지진을 딛고 일어선 '재부흥' 이미지를 각인하려 했지만, 엉성한 준비와 대응으로 위신 추락 위기에 직면했다.

도쿄올림픽·패럴림픽 조직위원회가 7월18일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을 초청해 환영 행사를 연 일본 도쿄 모토아카사카 영빈관 주변에서 올림픽 취소 등을 주장하는 시민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연합뉴스
도쿄올림픽·패럴림픽 조직위원회가 7월18일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을 초청해 환영 행사를 연 일본 도쿄 모토아카사카 영빈관 주변에서 올림픽 취소 등을 주장하는 시민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연합뉴스

개막 직전까지 출구 못 찾고 '대혼선'

도쿄올림픽은 개최가 확정된 직후부터 각종 논란에 휩싸였다. 2013년 올림픽 유치가 결정된 이후 국제사회에서는 후쿠시마 원전 문제를 지적하며 대회 진행에 대한 큰 우려를 표했다. 이후 2015년 올림픽 공식 로고가 발표됐는데, 벨기에의 한 극장 로고를 표절했다는 논란이 일었다. 결국 위원회 측은 공식 엠블럼을 교체하며 망신을 당했다. 

경제 부흥을 기치로 올림픽에 매진하던 일본 정부는 2019년에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들에 대한 '뇌물 살포' 의혹에 휩싸였다. 개최를 목전에 두고선 코로나19 사태가 전 세계를 강타했다. 이 때만 해도 국제 사회에서는 유례없는 팬데믹 속에 올림픽 개최지의 부담을 떠안은 일본 정부에 대한 안타까움이 있었다. 

분위기가 반전한 것은 도쿄올림픽 조직위원회의 헛발질이 반복되면서다. 중심에는 모리 요시로 전 도쿄올림픽·패럴림픽 위원장이 있었다. 83세의 고령인 모리 전 위원장은 지난 3월 "여성이 많으면 회의가 길어진다"는 등 여성 비하 발언을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뭇매를 맞았다. IOC까지 사태 심각성을 지적하고 나오자 모리 전 위원장은 결국 사퇴했다. 도쿄올림픽 개최를 불과 6개월 앞두고 터진 대형 악재였다. 

일본 정치권도 모리 전 위원장의 발언 직후 '감싸기' 발언을 했다가 역풍을 맞는 등 대혼선을 연출했다. 그리고 이 혼선은 올림픽이 임박해지면서 강도가 더 세졌다. 

2월13일 존 코츠 IOC 조정위원장(왼쪽)과 모리 요시로 도쿄올림픽 조직위원회 회장이 도쿄에서 올림픽 준비 상황을 점검하는 회의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2월13일 존 코츠 IOC 조정위원장과 모리 요시로(오른쪽) 당시 도쿄올림픽 조직위원장이 도쿄에서 올림픽 준비 상황을 점검하는 회의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개막을 하루 앞둔 22일 도쿄올림픽 조직위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태인 학살을 희화화하는 과거 동영상으로 논란이 된 개막식 연출 담당자 고바야시 겐타로(48)를 해임했다고 발표했다. 이보다 사흘 전에는 개회식 음악감독이 학창 시절 장애인을 괴롭혔다는 폭로가 불거지며 사퇴했다. 때문에 '도쿄올림픽 조직위가 시작도 전에 공중분해 되는 것 아니냐'는 소리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코로나19 재확산이다. 일본 내 코로나19 확산세가 빨라지면서 '지금이라도 올림픽을 멈춰세워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현재 일본의 일일 신규확진자 규모는 5000명에 육박한다. 도쿄 지역만 2000명에 달하고 있으며, 이 수치는 올림픽이 진행되는 동안 더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갖은 우려에도 일본 정부는 '안전 올림픽' 개최를 자신했지만, 이 약속이 지켜지기 힘들 것이란 관측은 점차 현실이 되고 있다. 조직위는 이날 선수촌 4명을 포함해 대회 관계자 등 전날 하루에만 총 12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로써 이번 대회 참가자의 누적 코로나19 감염자는 87명이 됐다. 일본 시민들의 감염 위기감이 한층 커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현재까지의 일본 정부나 조직위의 소극적 대응으로 볼 때 감염 확산을 제대로 막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구심도 점차 커지는 양상이다. 

7월14일 일본 도쿄에 설치된 대형 올림픽 메달 모형 앞을 전통 복장을 한 여성들이 걸어가고 있다. ⓒ 로이터 연합
7월14일 일본 도쿄에 설치된 대형 올림픽 메달 모형 앞을 전통 복장을 한 여성들이 걸어가고 있다. ⓒ 로이터 연합

발 빼는 아베 전 총리, 기업도 '손절' 릴레이

NHK방송 등에 따르면, 도쿄올림픽이 자칫 코로나19 감염의 온상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에 주요 광고주와 후원사들도 발을 빼고 있다. 도쿄올림픽 최고위 스폰서인 도요타자동차가 개회식 불참과 일본 내 TV 광고를 보류한다고 밝힌데 이어 파나소닉 등 기업도 잇달아 경영진의 개막식 참석을 보류하거나 불참을 확정했다고 발표했다. 

표면적으로는 무관중 개최에 대한 부담이 있다고 하지만, 개회식에 참석하거나 대대적인 올림픽 광고를 하는 기업에 대한 불매운동을 고려한 조치라는 것이 교도통신 등 일본 주요 언론의 분석이다. 

여기에 도쿄올림픽 개최의 최대 공신으로 자처해 온 아베 신조 전 총리마저 불참이 확실시 되면서 여론이 들끓고 있다. 아베 전 총리는 당초 23일로 예정된 도쿄올림픽 개회식에 참석할 예정이었지만, 최근 조직위에 사실상 불참을 통보했다고 NHK 등이 보도했다. 

2016년 8월22일 브라질 리우 마라카낭 주경기장에서 열린 2016 리우데자이네루 올림픽 폐막식에서 다음 개최지인 일본의 아베 신조 당시 총리가 인기 게임 캐릭터 슈퍼마리오 모자를 쓰고 나타나 관중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2016년 8월22일 브라질 리우 마라카낭 주경기장에서 열린 2016 리우데자이네루 올림픽 폐막식에서 다음 개최지인 일본의 아베 신조 당시 총리가 인기 게임 캐릭터 슈퍼마리오 모자를 쓰고 나타나 관중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아베 전 총리는 총리 재임 시절인 2013년 9월 IOC 총회에서 직접 올림픽 개최를 위한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등 개최 주역으로 꼽혀왔다. 그 스스로도 올림픽 개최를 가장 큰 업적으로 꼽아 왔다. 그러나 도쿄올림픽의 상징적 인물이자 코로나19 대확산 우려에도 개최 강행에 함께 힘을 보탰던 아베 전 총리가 이제와서 발을 빼려는 듯한 모습을 보이면서 일본 국민들의 분노도 함께 치솟고 있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의 '정상 외교'도 불가능해졌다. 대회를 계기로 일본을 방문하는 각국 정상급 인사는 다음 개최지인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을 포함해 20명 미만에 그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미국을 비롯해 주요국 정상은 대부분 불참하며, 문재인 대통령도 소마 히로히사 주한일본대사관 총괄공사의 막말 등 영향으로 방일이 불발됐다. 결국 개회식 참석 인원은 당초 1만 명 수준에서 950명 수준으로 대폭 축소됐다.  

도쿄올림픽 관계자가 7월20일 도쿄 하루미 지역 올림픽선수촌 한국 숙소동 주변에서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 연합뉴스
도쿄올림픽 관계자가 7월20일 도쿄 하루미 지역 올림픽선수촌 한국 숙소동 주변에서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 연합뉴스

골판지 침대, TV·냉장고는 유상 대여…조롱거리 전락한 선수촌

'산 넘어 산'인 도쿄올림픽은 출전 선수들이 속속 선수촌에 입촌하면서 '도쿄체전'이라는 웃지 못할 조롱과 비유까지 받게 됐다. 

조직위는 친환경 등을 이유로 선수촌 내 침대를 '골판지'로 제작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조직위 측은 '골판지 침대'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자 약 200㎏의 하중을 견딜 수 있다고 반박했지만, 선수들은 경기 시적 전부터 구겨져버린 침대 사진을 SNS에 올리며 황당하다는 반응을 쏟아내고 있다. 설령 하중을 견딘다 하더라도 신체 컨디션이 가장 중요한 운동선수들에게 이같은 침대를 제공한 것은 부적절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뉴질랜드 대표팀 공식 SNS 계정에 올라온 영상에는 조정 선수 숀 커크햄이 침대 모서리에 앉자 골판지로 된 프레임이 찌그러지는 장면이 담겼다. 커크햄과 그의 동료는 이 상황이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터트렸고 네티즌들은 이를 조롱하며 '누가 올림픽에 장난감 침대를 가져다 뒀는가' 등의 질타가 이어졌다. 

앞서 미국 육상 국가대표인 폴 첼리모는 자신의 트위터에 "누군가 내 침대에 소변을 본다면 박스가 젖어서 침대에서 떨어질 것이다. 결승전을 앞둔 밤이면 최악이 될 수도 있다"며 "내 침대가 무너지는 상황을 대비해 바닥에서 자는 연습을 해야겠다"고 비꼬기도 했다. 

도쿄올림픽 선수촌에 설치된 골판지 침대 ⓒ AFP 연합
도쿄올림픽 선수촌에 설치된 골판지 침대 ⓒ AFP 연합

러시아 펜싱대표팀 감독은 선수촌의 좁은 방과 시설에 대한 불편함을 호소하며 "중세시대 같다"고 직격했다. 4~5명이 함께 쓰는 방에 화장실이 1개 밖에 없는 점도 선수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란 반발이 쏟아졌다. 

이 밖에도 장신 선수들을 고려하지 않은 화장실 및 샤워 시설, 무더운 날씨와 코로나19로 외부 활동이 차단된 선수들에게 TV와 냉장고를 '유상'으로 대여해 주고 있는 점, 선수 식단에 사용되는 후쿠시마산 식재료 등도 논란을 빚었다. 특히 메달권 진입이 유력한 주요 종목의 일본 국가대표 선수들은 선수촌이 아닌 경기장에서 가까운 외부 호텔 등을 활용토록 해 형평성 논란을 자초했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총리가 5월5일 일본 총리공관 앞에서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긴급사태 발효와 관련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총리가 5월5일 일본 총리공관 앞에서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긴급사태 발효와 관련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악화 일로인 상황에서도 스가 총리는 여전히 올림픽 성공 개최를 자신하고 있다. 스가 총리는 최근 관저에서 미 월스트리트저널과 인터뷰를 갖고 올림픽에 대한 회의적인 시선에 대해 "경기가 시작돼 국민들이 TV로 관전하면 생각이 바뀔 것"이라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코로나19 재확산 우려에 대해서도 "(일본의) 감염자 수 등을 해외와 비교해 보면 한 자릿수 이상이라고 말해도 좋을 정도로 적다"며 심각한 상황이 초래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취소하는 것이 제일 쉽고, 편한 일"이라며 "도전하는 것이 정부 역할"이라며 올림픽에 강행 배경을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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