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판 뒤흔드는 ‘젠더 리스크’…비상 걸린 정치권
  • 이혜영 기자 (zero@sisajournal.com)
  • 승인 2021.08.02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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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대변인 발언에 스텝 꼬여…민주, ‘쥴리 벽화’ 미온 대응하다 역풍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왼쪽)가 7월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신임 대변인단 임명장 수여식에서 양준우 대변인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 연합뉴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왼쪽)가 7월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신임 대변인단 임명장 수여식에서 양준우 대변인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 연합뉴스

대선 국면에 접어든 정치권이 '젠더 이슈'를 맞닥뜨렸다. 올림픽과 '쥴리 벽화'를 기점으로 불 붙은 '남혐·여혐' 논쟁은 갈등 수위를 점점 높이면서 결국 정치권 전체를 휘감았다. 일정 부분 거리두기를 하던 정치권은 국민의힘 대변인이 해당 논란을 재점화하면서 다시 소용돌이에 휘말리는 모양새다.

여야는 2030 세대에 민감한 성차별 이슈인데다 언급 자체만으로 혐오 논란을 부추길 수 있어 추가 대응에 신중한 분위기다. 4·7 재보선에 이어 대선에서도 동일한 갈래의 이슈가 돌출하면서 선거를 앞둔 정치권의 '젠더 전략'도 한층 복잡해질 전망이다. 

 

안산 선수에 논란 책임 떠넘긴 국민의힘

도쿄올림픽 응원 열기가 뜨겁던 때 국내에서는 전혀 다른 논란이 불거지며 갑론을박이 오갔다. 이번 올림픽 양궁 3관왕에 오른 안산 선수를 둘러싼 페미니즘 논란이 일면서다.  

짧은 머리를 한 안산 선수를 향해 일부 커뮤니티에서 '페미니스트 공세'를 펼쳤고, 이는 정치권 공방으로도 이어졌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안 선수 논란이 커지자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를 향해 공개적인 입장 표명을 요구했다. 

이 대표는 해당 사안에 줄곧 '침묵' 기조를 유지해왔지만, 양준우 국민의힘 대변인이 나서면서 또 다른 국면을 맞았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 ⓒ 연합뉴스
장혜영 정의당 의원 ⓒ 연합뉴스

양 대변인은 1일 자신의 SNS에 "이 논란의 핵심은 (안산 선수의) 남혐 용어 사용에 있고, 래디컬 페미니즘(급진적 여성주의)에 있다"고 주장했다. 장 의원이 "사건의 핵심은 여성 올림픽 메달리스트에게 가해진 페미니즘을 빌미 삼은 온라인 폭력"이라고 한 부분을 반박하며 안 선수가 논란의 빌미를 제공한 측면이 있다는 입장을 편 것이다. 

이 대표와 당이 공식 입장을 자제하는 상황에서 이같은 발언이 나오면서 그야말로 기름을 끼얹은 모양새가 됐다. 결국 이 대표까지 직접 반박에 가담하며 판은 더 커졌다. 정의당은 양 대변인에 대한 징계까지 요구하며 이 대표를 압박했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도 양 대변인의 발언에 대해 "여성 혐오를 정치적 자양분 삼는 자들은 공적 영역에서 퇴출돼야 한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진 전 교수는 "공당의 대변인이 여성혐오 폭력을 저지른 이들을 옹호하고 변명하고 나선 황당한 사태"라며 "뉴욕타임스에서 그런 남성들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정치인이 있다고 분석했는데 굳이 누구라고 말하지 않겠다"며 이 대표도 함께 조준했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직설청취, 2022 대선과 정의당' 행사에서 초청 강연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7월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직설청취, 2022 대선과 정의당' 행사에서 초청 강연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대표는 불쾌감을 드러내며 "적당히 좀 하라"며 진 전 교수 게시글에 댓글을 달았다. 또 양 대변인의 글은 자신 또는 당의 공식적 입장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이 대표는 이날 MBC라디오에 출연해 "안산 선수에 대해 어떤 공격이 가해진다고 하더라도 저는 거기에 동조할 생각도 없다"며 "(정의당이) 프레임 잡는 것 자체가 지금 젠더 갈등을 오히려 심화시키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양 대변인이 만약 여성혐오라는 개념을 조금이라도 썼거나 부적절한 인식을 하고 있다면 징계하겠지만, 여성 혐오적 관점에서 이야기한 적이 전혀 없다"며 "정의당은 큰 실수를 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여권은 대변인이 공개적인 발언을 낸 만큼 국민의힘 차원의 해명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더불어민주당 대권 주자인 이재명 경기도지사 측 권지웅 부대변인은 논평을 내고 "(양 대변인의 발언은) 안산 선수에 대한 온라인 폭력에 힘을 실어주는 내용으로 읽힐만한 부분(이 있다)"면서 국민의힘과 이 대표가 더 이상 침묵으로 일관해서는 안 된다고 요구했다. 

이낙연 전 대표는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안 선수에 대한 국민의힘 논평이 엉뚱한 과녁을 향했다"며 "선수를 향한 성차별적 공격과 터무니없는 괴롭힘을 비판해야 할 공당이 피해자에게 원인을 돌렸다"고 비판했다.

정세균 전 총리 측 장경태 대변인도 "국민의힘이 젠더갈등 중독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 같다"며 "이 대표는 논란 시작부터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데 정당의 뿌리를 혐오로 새 정체성을 구축하고 싶은 건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꼬집었다. 

서울 종로구의 한 서점 외벽에 그려진 대권주자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부인 김건희씨를 비방하는 내용의 벽화가 논란이 된 가운데 7월30일 오전 건물 관계자들이 벽화의 글자를 지웠다. 사진은 전과 후 ⓒ 연합뉴스
서울 종로구의 한 서점 외벽에 그려진 대권주자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부인 김건희씨를 비방하는 내용의 벽화가 논란이 된 가운데 7월30일 오전 건물 관계자들이 벽화의 글자를 지웠다. 사진은 전과 후 ⓒ 연합뉴스

'쥴리 벽화' 관망하던 여당도 불똥

혐오 논란은 여당에도 위기감을 불어넣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부인 김건희씨 관련 의혹을 담은 '쥴리 벽화' 논란이 확산할수록, 비판의 화살은 민주당을 향했다. 민주당이 이 사안에 관망 태도를 취하면서 '진영 논리에 따라 여성 혐오를 방관한다'는 비판이 터져나왔다. 

결국 민주당에서도 "금도를 넘었다"며 자제를 촉구하는 입장이 잇달아 나왔다. 민주당이 이번 사안을 엄중히 바라보는 것은 지난 재보선에서 젠더 이슈가 급부상하면서 '이대남' 표심을 뺏긴 것이 결정적 패착 중 하나였다는 분석이 나왔기 때문이다. 

MZ세대로 불리는 2030 연령은 특정 사안에 따라 지지정당을 바꾸는 특성이 있는 만큼, 대선을 앞두고 자칫 젠더 이슈에 발목잡힐 수 있다는 위기감이 여권 내에서도 작동한 것으로 보인다. 

'젠더 뇌관'을 바라보는 정치권의 고민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의 양상으로 볼 때 정치권 밖에서 불거진 논쟁도 결국 여야의 갈등 구도로 전개되는 데다, 상대당에 불리할 걸로 예측했던 사안이 되려 역풍을 불러오기도 하면서 셈법이 한층 복잡해졌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 정세균(왼쪽부터), 이재명, 이낙연 대선경선 후보가 28일 MBN과 연합뉴스TV 공동주관으로 열린 본경선 1차 TV토론회에 앞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정세균(왼쪽부터), 이재명, 이낙연 대선경선 후보가 28일 MBN과 연합뉴스TV 공동주관으로 열린 본경선 1차 TV토론회에 앞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여론조사를 통해 드러난 수치도 정치권이 젠더 이슈에 감수성을 더 키워야 한다는 분석에 힘을 싣는다. 

리얼미터가 지난달 26∼30일 전국 18세 이상 2525명에게 조사해 2일 발표한 결과, 국민의힘 지지도는 1.5%포인트 오른 35.2%를 기록한 반면 민주당은 1.5% 내린 33.6%였다.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2.0%포인트) 국민의힘 지지율이 6주 만에 상승반전하며, 민주당을 3주만에 오차범위 내에서 제쳤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20대 여성의 민주당 지지율이 4.6%나 하락했다는 점이다. 반면, 국민의힘은 3.5% 상승하며 민주당에 등돌린 여성 표심을 흡수했다. 

지난 재보선에서 '이대녀'인 20대 여성의 높은 지지를 받은 것과 비교하면 불과 석달 새 입지가 확연히 줄어든 것이다. '쥴리 벽화' 논란이 민주당 표심 이탈에 상당부분 영향을 끼친 것으로 분석된다. 

위 여론조사와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리얼미터나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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