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단계 방역 왜 안 먹히나
  • 노진섭 의학전문기자 (no@sisajournal.com)
  • 승인 2021.07.31 10:00
  • 호수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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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타 변이 50% 육박한 상황에서 30~40대 백신 미접종자 이동량 급증

코로나19 하루 감염자가 7월7일 1000명대로 진입한 후 20여 일째 네 자릿수를 이어간다. 방역 당국은 수도권 방역을 최고 수준인 4단계로 올렸지만 7월22일 1800명대까지 급증하는 등 감염자 수는 오히려 증가하는 추세다. 문재인 대통령은 7월25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휴가지 중심으로 이동량이 많아지며 비수도권 확진자 비중이 35%를 넘어서는 등 전국으로 확산하고 있는 양상이 뚜렷하다”고 강조했다. 

4단계 방역이 먹히지 않는 이유가 인구 이동량 때문이라는 진단이다. 특히 여름 휴가철을 맞아 비수도권으로의 이동량이 늘어나는 만큼 7월27일부터 8월8일까지 비수도권 거리 두기 수준을 2단계에서 3단계로 높였다. 정부는 방역 단계 상향 조정으로 이동량이 줄어들 것으로 본다. 

최근 일주일(7월12~18일) 전국적인 인구 이동량은 2억2418만 건으로 집계됐다. 실제로는 이 수치보다 많을 것으로 보인다. 보건복지부 중앙사고수습본부는 최근 통계청이 제공한 휴대전화 이동량 자료를 기초로 이동량 변동을 분석했는데, 이동량 자료는 S이동통신사 이용자가 실제 거주하는 시·군·구 외에 다른 행정구역을 방문해 30분 이상 체류한 경우를 이동 건수로 집계했다. 다른 이동통신사 자료까지 더하면 인구 이동량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또 이전에 포함했던 신용카드 사용량이나 대중교통 이용량을 이번 이동량 집계에서는 제외했다. 

고속도로와 공항 이용량만 봐도 인구 이동량이 지난해보다 늘어났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한국도로공사에 따르면 7월24일 토요일 하루 동안 전국 고속도로를 통해 휴가를 떠난 차량은 480만 대가량이다. 지난해 7월 토요일(449만 대)보다 30만 대 많고, 최근 4주 동안 토요일 이동량(471만 대)과 비교해도 10만 대 늘어났다. 국토교통부는 7월15일 올해 상반기 국내선 여객이 지난해 상반기보다 약 46% 증가한 1548만 명이라고 밝혔다. 이는 코로나19 유행 전인 2019년 상반기와 비교해도 3.2% 증가한 수치다. 최근 일주일(7월18~24일)간 김포공항을 이용한 승객만 약 43만 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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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22일 김포공항이 여행 인파로 붐비고 있다.ⓒ시사저널 이종현

“수도권 이동량 감소세” 발표에 숨은 꼼수

수도권 이동량은 최근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 방역 당국의 설명이다. 최근 일주일(7월11~17일) 수도권 이동량은 1억1190만 건인데 그 전주(7월4~10일) 1억2166만 건에서 약 8% 감소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비수도권 이동량은 같은 기간 4.2%(1억778만 건에서 1억1228만 건으로) 증가했다. 종합하면 전국적으로 이동량은 2.3% 감소하는 데 그쳤다. 

2.3%라는 감소 폭은 역대 최하위 수준이다. 지난해 2월 코로나19 1차 유행 당시 정부가 감염병 위기 경보를 ‘심각(최고)’ 단계로 올리자 그 후 1주일 동안 인구 이동량은 전주보다 16.2% 감소했다. 지난해 8월23일 2차 유행으로 전국 거리 두기를 2단계로 올린 후 인구 이동량 감소 폭은 10.8%였고, 11월24일 3차 유행으로 수도권 2단계 상향 조정 후에는 감소 폭이 6.6%였다. 방역 조치를 반복할수록 그 효과가 떨어지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이동량 2.3% 감소로는 1~2주 단기간에 감염자 수를 큰 폭으로 떨어뜨리기 어렵다는 것을 방역 당국도 인지한다. 정부는 4차 유행을 꺾으려면 전국 이동량이 현재보다 26.2%(수도권은 18% 추가 감소) 추가로 감소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휴가를 최대한 연기하거나 장거리 여행과 이동을 제한할 것을 당부했다. 김부겸 국무총리는 7월26일 KBS라디오에 출연해 “(국민 이동량을) 제어하지 못하고 지금 상태로 가면 8월말에는 (하루 감염자 수가) 약 2000명에서 3000명 사이까지 갈 것이라는 아주 부정적인 전망이 나오고 있다. 지금보다 조금 더 고생해서 국민 이동량을 20% 정도까지 줄이면 이달 말쯤 어느 정도 정점을 찍고 1000명대 수준에서 관리될 것 같다고 한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여름 휴가철인 데다 방역 단계가 비교적 낮은 비수도권으로 이동하는 수도권 인구가 늘어나는 이른바 ‘풍선효과’ 때문에 인구 이동량은 크게 줄어들지 않을 전망이다. 김우주 고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정부의 여러 자료를 보면 방역보다 경제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의료체계가 무너지기 전까지는 현 상황을 개선할 의지가 없어 보인다. 그동안 누누이 경고했는데 실제로 변이 바이러스가 최근 득세하고 있다. 정부는 그때마다 국민에게 상황만 전달하면서 제대로 된 방역을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백신 미접종자 이동량이 가장 많아

방역 당국에 따르면 델타 변이 바이러스 검출률은 6월26일 3.3%에 불과했으나 약 1개월 만인 현재 48%로 급등했다. 사실상 델타 변이 바이러스가 국내에서도 우세종으로 자리를 굳혔다. 그런 데다 아직 백신을 접종하지 않은 세대의 이동량이 가장 많은 것이 새로운 복병으로 떠올랐다. 방역 당국이 집계한 수도권 이동량 자료를 보면, 30~40대의 이동량이 가장 많다. 최근 일주일(7월12~18일)간 수도권 이동량은 1억1148만 건인데, 이 가운데 40대가 2408만 건으로 가장 많았고 그다음이 2324만 건인 30대로 집계됐다. 

델타 변이 바이러스 확산과 백신 미접종자의 이동량 증가가 결합하면 더 많은 감염자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이는 미국 사례에서 이미 확인됐다. 미국에서 신규 감염자의 80% 이상이 델타 변이 바이러스에 의한 감염이고, 6월 코로나19로 사망한 사람의 99%는 백신 미접종자다. 앤서니 파우치 미국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NIAID) 소장은 7월25일 백신을 접종하지 않은 미국인들 사이에서 코로나19 감염 사례가 계속 늘어나고 있는 것과 관련해 “미국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미국 뉴욕시와 캘리포니아주는 공무원과 의료진에 대해 백신 접종 의무화를 명령했다. 

델타 변이 바이러스는 전염력이 강하고 전파 속도가 빨라 역학 대응으로만 통제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백신 접종 속도를 높여야 한다. 그러나 이마저도 힘든 상황이다. 한국에 코로나19 백신 4000만 회분을 공급하기로 한 미국 제약사 모더나가 백신 공급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고 통보했기 때문이다. 박진영 중앙사고수습본부 백신도입지원팀장은 7월26일 브리핑에서 모더나 백신의 7~8월 공급 일정과 관련해 “모더나 측에서 생산 관련 이슈가 있다고 통보해 왔다”고 밝혔다.

남은 카드는 국민이 사람 간 접촉을 최대한 줄이는 것뿐이다. 인구의 70%가 1차 백신 접종을 마치고, 50%가 접종 완료에 도달하는 시기까지는 인구 이동량이 줄고 사람 간 접촉도 뜸해져야 4차 유행을 누그러뜨릴 수 있다. 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이동량이 많아도 사람 간 접촉을 줄이면 바이러스 확산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다. 3차 유행 때도 그랬다. 따라서 휴가지에 가더라도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을 피하고 모임을 적게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하소연도 못 하는 백신 ‘보릿고개’

7월27일 국내 코로나19 백신 접종률은 34.1%로 7월1일 29.9%에서 4.2%포인트 증가하는 데 그쳤다. 6월 증가 폭인 18.5%포인트와 비교하면 4분의 1 수준이다. 2차 접종률 증가 폭도 6월 5.4%포인트에서 7월 3.7%포인트로 주저앉았다. 여름 휴가철을 맞아 인구 이동량이 많고 델타 변이 바이러스까지 확산하는 상황에서 백신 접종 속도가 더딘 이유는 백신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당초 50대 전체에게 모더나 백신을 접종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으나 며칠 뒤 화이자 백신도 맞을 수 있다는 애매한 수정 계획을 내놨다. 모더나 백신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국 제약사 모더나는 최근 생산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다며 7월분 백신 공급에 차질이 생겼다고 우리 측에 통보했다. 7월분 백신 물량을 8월에 주겠다는 얘기다. 지난 4월에도 미국이 자국민에게 우선 접종하기 위해 모더나 백신의 수출을 중단하면서 국내 도입 물량과 시기가 불투명해진 바 있다. 

이에 따라 이후 접종 계획에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이번에는 50대가 접종할 백신이 화이자 백신으로 변경됐다. 그런데도 정부는 모더나에 문제를 제기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정부는 지난해 2000만 명분(4000만 회분)의 모더나 백신 선구매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도입 물량을 분기별로 정하고 도입 시기는 그때마다 협의해 들여오는 방식인 것으로 알려졌다. 모더나가 7월에 공급할 물량을 8월로 미루더라도 3분기 물량만 맞춰 공급하면 계약 위반이 아니다. 

비판 여론이 일자 정부는 모더나와 긴급회의를 가졌다. 김부겸 국무총리는 7월28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최근 불거진 모더나 백신의 국내 공급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어젯밤 정부가 모더나 측과 고위급 영상회의를 개최했다. 모더나 측이 백신 공급을 다음 주부터 재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한국이 모더나와 계약한 백신 물량 2000만 명분 가운데 지금까지 국내에 도입 완료된 물량은 55만 명분(110만 회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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