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 살해 당한 제주 중학생…수차례 SOS에도 경찰은 없었다
  • 이혜영 기자 (zero@sisajournal.com)
  • 승인 2021.07.28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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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중학생 사망, 피해자 보호부터 가해자 신병확보까지 ‘총체적 부실’
과거 동거녀의 중학생 아들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된 백광석이 7월27일 제주동부경찰서에서 검찰로 이송되고 있다. ⓒ 연합뉴스
과거 동거녀의 중학생 아들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된 백광석이 7월27일 제주동부경찰서에서 검찰로 이송되고 있다. ⓒ 연합뉴스

모친의 전 동거남에게 살해 당한 제주 중학생의 사망 사건에서 경찰의 안이한 대응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청장까지 나서 뒤늦게 관련 규정을 보완하겠다고 했지만, 유족이 처참한 현장을 직접 공개하는 등 역풍을 맞고 나서야 각종 제도 개선을 약속했다. 피해자 가족에 대한 신변보호부터 가해자 신병확보, 이후 수사 과정에서 확인된 부실 대응까지 '뒷북 비난'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28일 검찰과 경찰 등에 따르면, 과거 동거녀의 중학생 아들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된 주범 백광석(48)과 공범 김시남(46)은 전날 검찰에 송치돼 수사를 받고 있다. 신상이 공개된 이들은 전날 제주동부경찰서 유치장을 나와 검찰로 이동하면서 마스크와 모자로 얼굴을 가린 채 등장했고, 이를 지켜보던 시민들은 울분을 쏟아냈다. 

제주경찰청이 7월26일 전 동거녀의 중학생 아들을 살해한 혐의(살인)로 구속된 주범 백광석(왼쪽)과 공범 김시남의 신상을 공개했다. ⓒ 제주경찰청 제공
제주경찰청이 7월26일 전 동거녀의 중학생 아들을 살해한 혐의(살인)로 구속된 주범 백광석(왼쪽)과 공범 김시남의 신상을 공개했다. ⓒ 제주경찰청 제공

공포 속 처참히 사망했는데도…경찰 "잔인성 충족 안해"

당초 경찰은 피의자들에 대한 신상공개를 하지 않기로 했다가 비판이 커지자 비공개 결정을 철회했다. 이 사건을 수사한 제주 경찰은 지난 21일 피의자 신상공개 불허 결정을 내리며 "특정강력범죄 처벌 특례법과 경찰청 신상 공개 지침을 면밀히 검토한 결과 범행 수법의 잔인성과 공공의 이익 등 신상정보 공개 4개 요건 중 2개를 충족하지 못해 심의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했다"며 신상공개 심의위원회를 열지 않겠다고 했다. 

강력 사건 피의자에 대한 신상공개 여부는 외부위원이 참석하는 위원회에서 결정되는데 요건 불충족으로 소집 자체를 하지 않겠다고 판단한 것이다. 

경찰에 따르면, 백광석과 공범은 지난 18일 오후 제주시 조천읍의 A(16)과 A군 모친이 사는 주택에 침입해 혼자 있던 A군의 손과 발을 청테이프로 묶은 뒤 살해했다. 1차 부검 결과에서는 A군이 목이 졸려 질식사 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은 사전에 청테이프 등을 구매해 범행을 계획했고, 범행 이후 3시간 동안 집에 머물며 식용유를 곳곳에 발라놓기도 했다.

성인 2명이 피해자를 묶어 잔혹하게 살해한 뒤 불을 지르려 한 정황까지 나왔지만, 경찰은 신상공개를 할 정도의 '잔인성'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본 것이다.

7월18일 모친의 전 동거남으로부터 살해 당한 중학생이 발견된 제주시 조천읍 사건 현장에 폴리스라인이 설치돼 있다. ⓒ 연합뉴스
7월18일 모친의 전 동거남으로부터 살해 당한 중학생이 발견된 제주시 조천읍 사건 현장에 폴리스라인이 설치돼 있다. ⓒ 연합뉴스

이에 피해자 유족들은 경찰 결정을 이해할 수 없다며 직접 사건 현장을 공개하기도 했다. 유족이 공개한 A군의 집 바닥에는 사건 당시 두 피의자들로부터 공격 당한 A군이 방어를 위해 몸부림치는 과정에서 생긴 뜯기고 찢긴 장판 등 잔혹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유족들은 반복적인 폭행과 협박을 일삼던 가해자가 결국 중학생을 상대로 무자비한 살인까지 저질렀는데도, 신상공개 요건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경찰 결정을 수긍하기 어렵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이후 비판 여론이 들끓었고, 경찰은 심의위 미소집 결정을 번복했다. 결국 지난 26일 오전 열린 심의위에서 위원들은 피의자들의 계획 범행이 확인되고, 범죄 잔혹성과 이를 뒷받침할 증거도 충분하며, 재범방지와 공공의 이익에도 부합하는 등 신상공개에 대한 모든 요건을 충족한다고 결론냈다.

 

동종 전과 있는데도 '신병확보' 안한 경찰

이번 사건이 안타까움을 더하는 것은 A군과 모친이 여러차례 경찰에 적극적인 도움을 요청했기 때문이다. 특히 백광석이 동종 범죄로 전과 이력이 있었는데도 신병 확보에 나서지 않은 것에 대한 경찰의 감사가 필요하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백광석은 A군의 모친과 동거하던 중 수차례 피해자들에 대한 폭력과 협박을 일삼은 것으로 조사됐다. A군 모친 B씨가 이별을 요구하자 이에 격분해 A군을 무차별 폭행하고 집안 집기를 부수는 등 위협의 강도는 더 세졌다.

A군 사망 보름여 전인 지난 2일 새벽에도 백광석은 모자의 집을 침입해 B씨 목을 조르고 도주했다. B씨는 백광석을 경찰에 신고하며 신변보호를 요청했고, 이로부터 사흘 뒤에도 백광석의 계속되는 살해 위협을 경찰에 알렸다. 

만일 경찰이 이 때라도 신병확보에 나섰다면 A군 사망은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경찰은 백광석에 출석요구서만 두 차례 발송했을 뿐 체포영장 신청 등 적극적인 신병확보 조치는 하지 않았다. 전과 10범인 백광석이 과거 또 다른 여성들을 상대로 유사 범죄를 저질렀고, 집행유예 기간에 동종 범죄를 저질러 수감된 이력까지 있는데도 체포하지 않았다.

김창룡 경찰청장이 9월25일 서울 서대문 경찰청에서 열린 전국 경찰 지휘부 화상회의에서 개천절 불법 집회 강경 대응 방침을 밝혔다. ⓒ연합뉴스
김창룡 경찰청장 ⓒ연합뉴스

범죄 징후 뚜렷했지만…스마트워치 지급 없이 '황당 변명'만

신변보호가 절실했던 이들 모자에 취해진 조치는 현관문 바깥쪽에 폐쇄회로(CC)TV 설치와 경찰의 간헐적 순찰이 전부였던 셈이다.

A군 사망 후 공개된 감시용 CCTV에는 범행 당일 피의자들이 장갑을 끼고 담을 넘어 집 안으로 들어가는 장면이 고스란히 찍혔다. 그러나 이들이 집 안으로 침입해 A군을 살해하고 상당 시간 집 내부에 머무르는 동안에도 경찰은 출동하지 않았다. CCTV는 모니터링이 아닌 사실상 기록용으로 설치해 둔 것이어서 실시간 대응으로 이어지지 못한 것이다. 

A군 모자에게는 스마트워치도 지급되지 않았다. 신변보호 대상자에게 지급되는 스마트워치는 버튼을 누르면 즉시 112 신고가 되고, 자동 위치추적을 통해 신속한 현장 출동이 가능하다. 유족들은 사건 당일 A군이 스마트워치를 차고 있었더라면 최악의 상황은 막았을 수 있다며 경찰 대응을 질타했다. 

이에 대해 경찰은 "스마트워치 재고가 부족해 지급하지 못했다"고 했지만 이마저 여유 수량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나면서 뭇매를 맞았다. 경찰은 당시 여유수량이 확보돼 있었다는 점이 밝혀지자 그제서야 "착오가 있었다"는 황당한 해명으로 유족을 두번 울렸다. 

제주에서 중학생을 살해한 혐의를 받는 백광석이 7월21일 오후 구속 전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제주동부경찰서에서 제주지법으로 이송되고 있다. ⓒ 연합뉴스
제주에서 중학생을 살해한 혐의로 체포된 백광석이 7월21일 오후 구속 전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제주동부경찰서에서 제주지법으로 이송되고 있다. ⓒ 연합뉴스

결국 김창룡 경찰청장은 이번 사건에서 확인된 경찰의 부실대응과 관련해 제도를 개선하겠다며 일선 경찰청에 '뒷북 지시'를 내렸다. 경찰은 전국 스마트워치 보급 대수를 늘리고 범죄 가해자의 얼굴을 인식할 수 있는 인공지능형 CCTV 도입을 검토하겠다며 부라부랴 논란 진화에 나섰다. 또 이번 사건에서 드러난 안이한 대응을 보완하기 위해 신변보호 필요성에 대한 판단 기준도 조정하겠다고 했다. 

이와 함께 보복범죄가 우려될 경우에는 조사가 이뤄질 때까지 유치장에 입감시키고, 현행범으로 체포한 피의자에 대한 석방 결정을 할 때는 반드시 보복 및 재범 가능성을 검토하도록 했다.

경찰의 신변보호 건수는 2016년 4912건, 2017년 6675건, 2018년 9442건, 2019년 1만3686건, 작년 1만4773건으로 해마다 크게 늘고 있는 추세다. 올 들어서는 6월까지 1만148건을 기록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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