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국민 남겨두고 완전 철군한 美…바이든의 ‘아프간 리스크’
  • 이혜영 기자 (zero@sisajournal.com)
  • 승인 2021.08.31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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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만에 끝난 아프간전…바이든, 여러 오점 남기며 최대 위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부인 질 여사,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이 8월29일(현지 시각) 델라웨어주 도버 미 공군기지에서 아프가니스탄 테러 전사자들의 관을 해병대원들이 옮기는 모습을 가슴에 손을 얹고 지켜보고 있다. 아프간 수도 카불 공항에서 지난 26일 자살폭탄테러로 숨진 미군 13명의 시신은 이날 고국 땅을 밟았다. ⓒ AP 연합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부인 질 여사,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이 8월29일(현지 시각) 델라웨어주 도버 미 공군기지에서 아프가니스탄 테러 전사자들의 관을 해병대원들이 옮기는 모습을 가슴에 손을 얹고 지켜보고 있다. 아프간 수도 카불 공항에서 지난 26일 자살폭탄테러로 숨진 미군 13명의 시신은 이날 고국 땅을 밟았다. ⓒ AP 연합

미국이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 철수를 완료했다. 이로써 9·11 테러로 촉발돼 20년간 이어진 미국과 탈레반의 전쟁은 공식적으로 막을 내리게 됐다. 그러나 미군 철수를 결정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남은 임기 내내 '포스트 아프간전'을 치뤄야 할 것으로 보인다.

당장 이번 철수 과정에서 테러 공격으로 미군이 큰 희생을 치른데다, 자국민 수백 명을 남겨둔 채 주둔군 철수를 감행하면서 비판 여론이 커지는 분위기다. 향후 탈레반과의 관계 설정과 이로 인해 파생될 국제 질서 및 중국 견제, 미국 내 여론 악화 등 풀어야 할 과제가 만만치 않을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바이든 대통령은 30일(현지 시각) 이날 아프간 철군 종료 직후 낸 성명에서 "지난 17일간 미군은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공수작전으로 12만 명 넘는 미국과 동맹의 시민을 대피시켰다"며 "아프간에서 20년 간의 우리 군대 주둔이 끝났다"고 밝혔다. 미국 국방부가 예정 시한 31일보다 하루 앞당겨 철군 종료를 발표한 직후, 군 통수권자가 이를 최종 확인한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당초 약속했던 자국민 100% 탈출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또 다른 오점을 남겼다. 바이든 대통령은 아프간을 떠나길 원하는 모든 미국인과 아프간 파트너, 외국 국적자들의 안전한 통행을 보장하도록 국제사회와 지속적인 조율에 나서겠다고 강조했다.

앞서 케네스 프랭크 매켄지 미국 중부사령관은 30일 밤 11시59분 국방부 브리핑에서 미군 C-17 수송기가 아프간 수도 카불의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에서 마지막으로 이륙했다고 밝혔다. 이륙 시간을 기준으로 미국이 그간 대피 시한으로 정한 31일에서 1분 차이로 하루 앞당겨진 것이다.

매켄지 사령관은 그러면서 "가슴 아픈 일이 많다. 우리가 빼내고 싶었던 모든 이들을 빼내지 못했다"며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철군 시한 내 아프간에 머무르는 미국인 모두를 대피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웠다는 얘기다. 미군은 공항 외곽에서 통행을 통제해 왔던 탈레반 측에도 정확한 철군 시점을 알리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은 아프간에 남아 있는 미국인 규모에 대해 "200명은 안 되고 100명에 가깝다"며 "탈출을 원하는 이들의 지원을 위해 끈질기게 노력하겠다"고 설명했다. 

아프간에 머무르고 있는 미국인 상당수가 이중국적자여서 미 정부에서도 정확한 규모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AFP통신은 소식통을 인용해 아프간에 남은 미국인은 250명 이하로 추정된다고 전했다.

미국 공군 항공기가 8월30일(현지 시각)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 국제공항에서 이륙하고 있다. 이날 아프간에서 미군 철수 및 민간인 대피 작전이 완료됨에 따라 20년간 이어진 미국의 최장기 전쟁인 아프간전은 종식됐다. ⓒ AFP 연합
미국 공군 항공기가 8월30일(현지 시각)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 국제공항에서 이륙하고 있다. 이날 아프간에서 미군 철수 및 민간인 대피 작전이 완료됨에 따라 20년간 이어진 미국의 최장기 전쟁인 아프간전은 종식됐다. ⓒ AFP 연합

미국에서는 이번 철수 작전으로 미군 13명이 희생된 데 이어 자국민을 완전히 대피시키지 못하면서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바이든 대통령이 철군 시한을 연장했어야 한다는 지적도 잇따랐다. 

미 정치전문 매체 더힐은 "바이든 대통령은 이달 초 철군 종료 시한을 연장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을 때 '모든 미국인을 대피시키겠다'고 약속했다"는 점을 언급하며 바이든 행정부가 무리한 철군에 따른 책임론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철군을 앞두고 미국이 예상한 속도보다 훨씬 빨리 탈레반이 수도 카불을 점령하고 정권을 재탈환 한 점도 바이든 대통령을 더욱 수세로 몰아넣고 있다. 정보 수집에서부터 판단까지 총제적인 문제점을 드러내면서 공화당 일각에서는 대통령 탄핵 목소리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뉴욕타임스는 "20년간 주둔을 끝내고 미군 비행기가 30일 밤 카불을 떠났다"며 "그러나 탈레반을 격퇴하는 데 실패했고 (대피를 원하는) 많은 아프간인을 뒤에 남겨뒀다"고 말했다. AP통신은 미국이 최장기 전쟁을 끝냈지만 이는 군 역사에서 혹독한 실패, 미완의 약속, 광란의 마지막 탈출로 기억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8월29일(현지 시각) 델라웨어주의 도버 공군기지에서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과 함께 아프가니스탄 폭탄테러로 사망한 니콜 지 해병대 병장의 운구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 AP 연합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8월29일(현지 시각) 델라웨어주의 도버 공군기지에서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과 함께 아프가니스탄 폭탄테러로 사망한 니콜 지 해병대 병장의 운구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 AP 연합

미국과 적대적 관계인 중국과 러시아가 탈레반에 비교적 우호적으로 접근하고 있는 점도 부담스런 부분이다. 미 주요 언론은 2001년 이후 20년 간 이어져 온 양측의 공식적인 전쟁은 끝이 나지만 '중동의 화약고'는 언제든 터질 수 있다고 분석한다. 미군 철수가 진행되는 와중에 카불공항에서 테러를 감행한 이슬람국가(IS) 등 미국과 서방을 겨냥한 대규모 테러도 잇따를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한편 미 국무부 등에 따르면, 지난 4월 기준 20년 간의 아프간 전쟁으로 희생된 사람은 모두 17만 명이다. 아프간 정부군(6만6000명)과 탈레반 반군(5만1000명), 아프간 민간인(4만7000명) 등 아프간 측 피해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미국과 동맹 역시 큰 희생을 치렀다. 아프간 전쟁으로 미군 2448명, 미국 정부와 계약한 요원 3846명,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등 동맹군 1144명이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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