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성의 시대가 끝나간다 [김상철의 경제 톺아보기]
  • 김상철 경제 칼럼니스트(전 MBC 논설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9.08 12:00
  • 호수 16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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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테이퍼링 마무리되면 금리 인상 본격화 전망…자산 가격 급락에 따른 대비 불가피

사상 유례없던 저금리 시대가 이제 막을 내린다. 한국은행은 지난 8월26일 금융통화위원회를 열고 역대 최저 수준인 연 0.5%의 기준금리를 0.75%로 전격 인상했다. 이로써 코로나19에 따른 초저금리 시대가 15개월 만에 끝났고, 우리나라는 코로나19 이후 아시아 주요국 중 처음으로 기준금리를 올린 나라가 됐다.

기준금리 상향에 따라 시중은행도 여·수신 금리를 줄줄이 인상할 전망이다. 10월 신규 주택담보대출부터 본격적으로 대출금리가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8월19일 기준 4대 시중은행의 코픽스 연동 주택담보대출 변동금리는 연 2.62에서 최고 4.13%였는데, 앞으로는 최저금리가 3%대로 오를 것으로 보인다. 신용대출도 조만간 2%대 금리는 자취를 감출 것이다.

ⓒ연합뉴스
한국은행이 8월26일 기준금리를 현행 0.5% 에서 0.75%로 인상하면서 자산시장에 ‘빨간 등’이 켜졌다. 사진은 미국 금리 관련 뉴스를 보 고 있는 한 시중은행 직원 모습ⓒ연합뉴스

시중은행, 여·수신 금리 줄줄이 인상

한은은 금리 인상 배경으로 수출 호조에 따른 경제 회복세, 물가 상승 압력과 더불어 가계부채 급증에 따른 금융 불균형을 제시했다. 실제로 지난 4월부터 7월까지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대 중반으로 4개월 연속 한은의 물가 안정 목표인 2%를 크게 웃돌았다. 기대인플레이션도 지난해 7월 조사에서는 1.7% 수준에 그쳤으나 올해 7월 조사에서는 2.3%를 기록했다. 이 수치는 지난 2월 이후 6개월째 2%대를 이어가고 있다. 기준금리에서 물가 상승률을 뺀 실질 기준금리는 7월에 마이너스 2.1%였다. 반면 델타 변이 바이러스 확산에도 한은은 올해 GDP(국내총생산) 성장률 전망치를 4%로,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도 3%로 변함없이 유지했다.

금통위 결정 직전까지 시장에서는 기준금리 인상과 동결 전망이 맞섰다. 금리 인상이 필요한 이유 못지않게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있기 때문이었다. 코로나19 재확산이 문제다. 우리나라의 경제 상황은 미국과는 다르다. 미국은 델타 변이로 인한 추가적 불확실성에도 백신을 통한 경제 정상화를 목전에 두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수출 부문은 크게 개선되고 있다고 하지만, 내수 부문은 여전히 어렵다. 특히 금리가 오르면 그렇지 않아도 힘든 취약계층,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은 직격탄을 맞는다. 가계부채 급증에도 지금까지 무려 1800조원에 이르는 가계부채 문제가 경제에 큰 충격을 주지 않았던 것도 사실은 낮은 금리 때문이다. 인플레이션도 근원물가 상승률을 따져보면 2021년 6월 기준 1.5%로 아직 우려할 수준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7월 소비자 심리지수도 하락했다.

하지만 금리 인상에는 금통위원 6명 중 5명이 찬성했다. 내놓고 말은 하지 않았지만, 기준금리 인상을 결정한 가장 큰 이유는 역시 비정상적인 집값 상승세 때문일 것이다. 금리 결정에 앞서 청와대와 정부는 노골적으로 기준금리 인상을 바라는 모습을 보였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금리가 오르면 주택 가격도 조정될 가능성이 크다”고 했고, 노형욱 국토교통부 장관도 “통화정책이 추진되면 집값 안정에 상당 부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경기를 살리기 위해 확대재정을 추진하는 정부가 오히려 금리 인상을 바라는 것은 모순이다. 그만큼 부동산 시장이 어렵다는 얘기다.

정부는 최근 강력한 가계대출 규제를 시행하고 있다. 금융 당국이 가계대출의 고삐를 죄면서 많은 은행이 대출 한도를 낮추기 시작했고, 아예 대출 중단을 선언하는 곳도 나왔다. 저축은행, 카드, 보험 등까지 잇달아 대출 한도를 축소하고 있다. 신규 대출자들은 이미 금리 상승분을 적용받고 있다. 대출 규제까지 강화됐지만, 집값은 여전히 오름세다. 7월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은 사상 처음 11억원을 돌파했다. 올해 들어 7월까지 기록한 수도권 아파트값 11.1% 상승률은 통계가 작성된 2003년 이래 최고치다. 8월 넷째 주까지도 수도권 아파트 가격은 6주 연속 역대 최고 상승률이 이어졌다.

 

기준금리 추가 인상 가능성 있어

주택시장 과열이 저금리에 따른 과잉 유동성에 기인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2%대 물가 상승률과 4% 성장률을 고려하면 기준금리 연 0.75%는 아직도 완화적이다. 15개월 만의 기준금리 인상 발표가 이뤄진 날에도 금융시장의 반응은 담담했다. 지금의 금리 수준은 아직 물가 상승률보다 낮아 시장에 영향을 미치기 어렵다. 정말 집값 하락을 유도하려면 앞으로 금리 인상에 대한 확실한 신호가 있어야 한다. 금리가 지속적으로 오를 것이란 기대가 형성돼야 한다는 말이다. 금통위는 이미 ‘점진적’으로 기준금리를 추가 인상하겠다는 방침을 내놨다.

추가 금리 인상의 관건은 속도와 규모다. 올해 남은 금통위는 10월과 11월 두 차례다. 시장에선 한은이 10월 기준금리를 동결하고 이번 금리 인상의 영향을 점검한 뒤 11월 0.25%포인트 추가 인상을 단행할 가능성에 무게를 둔다. 금융권에선 한국은행이 내년 상반기까지 누적으로 최소 0.5%포인트 더 인상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투자은행 JP모건은 내년 말까지 금리 인상이 세 차례 추가 단행될 것으로 전망한다. 전망대로라면 내년 말의 기준금리는 1.5%다.

물론 시장이 정말 주목하는 것은 따로 있다. 바로 미국 연준의 테이퍼링(tapering), 즉 자산매입 축소 시기와 수준이다. 2013년 5월 당시 연준의 자산매입 축소 예고에 미국 달러와 채권 금리가 급등하고 신흥국에 몰렸던 자본이 대거 빠져나갔다. 정작 유동성 회수를 시작한 건 예고하고 일곱 달 뒤인 2014년 1월부터였는데도 충격이 컸다. 마침 미국에서는 긴축 시점을 앞당길 수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미국 연준은 곧 매월 1200억 달러씩 사주던 채권매입 축소 계획을 공식화할 것으로 보인다.

테이퍼링이 마무리되고 미국의 금리 인상이 본격화되면 긴축이 시작된다. 미국은 0%대 기준금리를 1년6개월째 유지해 오고 있다. 과거 연준은 금리를 올릴 때도 반대로 내릴 때도 일반의 예상보다 빨랐다. 문제는 금융긴축의 적절한 시기를 잡는 일은 항상 어렵고, 연준도 실패의 경험이 많다는 점이다. 유동성 공급이 축소되면 어떻든 자산시장은 재편된다. 세계적으로 금리 상승의 실질적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하고 자칫 후폭풍이 분다면, 대출 연체 확산에 따른 은행 부실화와 주택 가격 급락, 성장률 둔화 가능성도 제기된다.

한국은행이 우려하는 ‘금융 불균형’은 결국 ‘자산 가격 거품’의 다른 표현이다. 금리가 지나치게 낮아 부채가 급증하면서 위험자산 가격이 과도하게 상승하는 현상을 말한다. 한은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금리가 1%포인트 오르면 가계의 이자 부담은 연간 11조8000억원 늘어난다. 따라서 이번 기준금리 인상으로 가계의 이자 부담은 3조원가량 증가하고 한 차례 더 오르면 6조원, 두 차례 더 오르면 9조원까지 늘어날 것이다. 가계의 이자 부담뿐만 아니라 주식과 부동산 등 자산 가격 급락 가능성에 대한 대비도 불가피하다. 저금리로 만들어진 유동성의 시대가 무한정 계속될 수는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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