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모더나 구원등판’ 가능할까
  • 엄민우 시사저널e. 기자 (mw@sisajournal-e.com)
  • 승인 2021.09.13 10:00
  • 호수 16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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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경쟁력 등 고려하면 최고 협상력 평가…사면 아닌 가석방에 대한 한계 우려도

코로나 백신 확보를 위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역할론’이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삼성의 영향력을 감안할 때 대한민국에서 대외적으로 가장 큰 협상력을 가질 수 있는 인물로 평가받기 때문이다. 취업 제한이 변수다. 제대로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선 정부가 가석방이 아닌 사면을 했어야 하며, 지금이라도 활동범위를 둘러싼 논란이 정리돼야 한다는 지적도 삼성 안팎에서 제기되고 있다.

백신 확보와 관련해 이 부회장의 행보에 관심이 모이는 근본적 이유는 국내 코로나19 상황 때문이다. 확진자 숫자가 좀처럼 줄어들지 않으면서 안정적인 백신 확보 및 공급 필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결혼식장, 식당 등 인원 및 영업시간을 제한하는 현행 방식의 효과에 대한 의문이 나오고 국민적 피로도도 커지는 상황이다. 결국 어느 정도 일상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데, 그 기본 전제는 바로 백신 접종 완료자가 많아져야 한다는 것이다. 9월8일 기준 국내 백신 접종 완료율은 50%를 넘지 못하며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국 중에서 하위권에 머무르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9월2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회계부정·부당합병’ 관련 재판에 출석하고 있다.ⓒ시사저널 박정훈

국내 백신 접종 완료율, OECD 가입국 중 하위권

더 큰 문제는 코로나19 백신의 효능 기간을 감안할 때 지속적으로 백신을 구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백신이 충분한 미국에 대한 의존도가 높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막강한 대외 협상력을 갖고 안정적 공급망을 확보해야 하는데, 이 부회장이 그 역할을 해줄 것이란 기대감이 생겨나는 것이다. 재계 및 외교 부문 전문가들 역시 이 부분에 대해선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입을 모은다. 삼성이 국제사회에서 갖는 위상과 경쟁력 때문이다. 이미 삼성은 코로나19 초기 ‘마스크 대란’을 해결한 전력이 있다.

삼성의 백신 협상력은 구체적으로 두 가지 부분에서 기인한다. 우선 반도체 경쟁력이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반도체가 전략물자가 되고 있는 만큼 삼성전자의 대외 협상력은 더욱 강해지고 있다”며 “미국 현지에 반도체 관련 대규모 투자를 할 수 있다는 점까지 감안하면 삼성만큼 백신 협상에 적당한 기업이 없다. 삼성의 주요 결정권자로 해외에서 인식되고 있는 인물이 이재용 부회장이다”고 분석했다.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센터장도 “미국도 안정적 반도체 공급을 위해 TSMC에만 의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반도체 현지 투자 등 들려오는 여러 요소들을 감안할 때 삼성의 백신 협상력에 반도체가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코로나19 백신인 모더나를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직접 생산한다는 점도 삼성이 백신 확보와 관련해 우위를 가질 수 있는 부분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생산하는 모더나 백신은 수억 회분으로 알려져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하는 CMO(위탁생산) 사업은 쉽게 말하면 의약품 생산을 대행하는 것을 말한다. 얼핏 들으면 간단해 보이지만 외부 노출 및 오염 없이 완벽하게 생산돼야 하는 의약품 특성상 고도의 기술을 요한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영업이익률이 30%대 이상을 기록할 수 있는 것은 그만큼 완벽한 생산을 위해 들어가는 노력이 만만치 않음을 고객사들로부터 인정받고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반도체를 직접 설계하지 않고 생산만 대행하는 대만 TSMC의 국제적 위상이 높은 것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바이오 부문에서 생산능력의 중요성은 반도체 부문 못지않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모더나 백신을 DP(완제)로 만들어낸다. 쉽게 말해 병에 담아주는 것인데, 제조공정에서 사실상 유일하게 외부에 노출되는 순간이기 때문에 상당히 민감한 작업이다. 모더나 입장에서도 이 어려운 작업을 안정적으로 해내는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주요한 파트너임은 틀림없다. 삼성과 모더나는 이미 코로나19 백신 생산과 관련해 공생관계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중에서도 이 부회장의 역할이 강조되는 것은 이미 해외 기업들이 이 부회장을 주요 결정권자이자 실질적 삼성의 총수라고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외국계 통신사 관계자 등에 따르면 해외 현지에서는 이 부회장을 주 결정권자로 보고 그의 행보에 주목하고 있다. 다만 이 부회장의 협상력은 그가 자유로운 활동을 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이 부회장은 사면복권이 아닌 가석방을 받아 5년 취업제한에 걸려 있는 상태다. 이 때문에 출소한 후에도 적극적 외부활동을 하는 모습은 보기 힘들다. 단순히 서울 서초사옥을 찾거나 투자 및 고용 계획을 발표하는 것만으로도 시민단체 및 노동단체에 의해 고발당하는 형국이다. 국내에서 조금만 움직임이 보여도 이런 상황인데 해외에서 미국 정부 관계자나 바이오 및 반도체 업계 주요 인사들을 만나 협상에 나서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상황이다. 재계에서 이 부회장을 풀어준 것이 경제에 기여해 주길 바라는 목적이라면 가석방이 아닌 사면을 해야 한다고 강조해온 것은 이 같은 상황을 예상했기 때문이다.

9월6일 광주 북구의 한 병원에서 추석을 앞두고 공급된 모더나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진행되고 있다.ⓒ연합뉴스
9월6일 광주 북구의 한 병원에서 추석을 앞두고 공급된 모더나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진행되고 있다.ⓒ연합뉴스

기업들의 민간 외교력 적극 활용해야

결국 이 부회장이 삼성과 자신의 협상력을 바탕으로 백신 구원투수로 나서기 위해선 정부가 애매모호한 현재 상황을 더 확실하게 정리해줄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현재까지의 정부 입장 표명만으로는 이 부회장 활동을 둘러싼 논란을 정리할 수 없다. 지난 8월31일 공개된 파이낸셜타임스 인터뷰에서 김부겸 국무총리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이미 석방된 상황에서 활동을 금지하는 것은 적절한 방안이 아니다”고 밝히긴 했지만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취업제한 기준은 일괄적으로 해석할 수 없어 개인마다 상황이 달라지게 된다. 실제로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이나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동생 최재원 부회장도 가석방 후 취업제한 적용 대상이지만 법적 문제 없이 경영에서 역할을 하고 있다. 장 회장의 경우 연봉도 수령하지만 아무런 문제가 없다.

재계 일각에선 삼성이나 이 부회장뿐 아니라, 기업들을 백신 확보를 위한 민간외교 창구로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내놓는다. 김용춘 한국경제연구원 고용정책팀장은 “외교는 기본적으로 ‘필요’를 전제로 하는데 해외에 투자·고용 등을 해줄 수 있고 네트워크가 풍부한 집단은 결국 기업들”이라며 “기업들이 백신 구하기에 적극적으로 뛸 수 있도록 뒷받침해줄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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