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반 만에 문 여는 브로드웨이의 실험 성공할까
  • 조용신 뮤지컬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9.14 10:00
  • 호수 16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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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팬데믹 극복하고 재개장 위한 전열 정비…공연계는 이미 ‘위드 코로나’ 실천 중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이 20년 넘게 장기 공연됐던 뉴욕 브로드웨이 ‘마제스틱 시어터(Majestic Theatre)’에서 최근 공연 대신 특별한 영화 시사회가 열렸다. 《오페라의 유령》은 2020년 3월 코로나19 팬데믹 확산으로 브로드웨이 극장가 전체가 폐쇄되면서 기약 없이 공연을 중단했다가 18개월이 지난 8월9일 시사회를 위해 다시 극장 문을 연 것이다. 현지 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시사회는 전 좌석이 매진됐을 정도로 성황을 이뤘다. 브로드웨이 대표 배우들 역시 대거 행사에 참석했다.

《더 쇼 머스트 고온(THE SHOW MUST GO ON)》은 한국 제작사 작품으로, 코로나 팬데믹으로 전 세계 주요 공연이 취소되는 상황 속에서도 이른바 ‘K방역’을 유지하며 공연을 지속했고, 극장 내 접촉 감염자가 한 명도 발생하지 않은 다큐멘터리 영화다. 2020년 서울과 대구에서 연달아 이루어진 《오페라의 유령》이나 《캣츠》 내한 공연의 프로듀서, 스태프, 배우들의 심층적인 인터뷰와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공연 제작 상황을 담았다.

ⓒ연합뉴스·EPA연합·AP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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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데스타운》을 시작으로 유명 뮤지컬 재개막

공연은 지속돼야 한다는 의미의 ‘쇼 머스트 고온’은 공연계에서 흔히 쓰이는 표현이다. 21세기 들어 9·11 테러나 뉴욕시 정전 사태, 노조 파업 등으로 브로드웨이가 공연을 중단한 사례는 여러 번 있었다. 하지만 이번 코로나19 사태처럼 1년 반 이상 폐쇄된 적은 없었다. 따라서 K뮤지컬의 공연 소식은 서구에서도 희망적인 예언으로 받아들여졌다. 실제로 영국은 정부의 적극적 지원으로 한국의 공연장 방역 시스템을 도입해 극장가를 재개했는데, 이 과정도 영화에 담겨 있다.

웨스트엔드의 부분적인 공연 재개와 함께 전 세계 공연인들의 이목이 쏠려 있던 브로드웨이 공연 재개 소식도 들려오고 있다. 팬데믹 이전 마지막 토니상 작품상 수상작이었던 《하데스타운》이 가장 먼저 관객 곁으로 돌아왔다. 이 작품은 그리스 신화의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현대적인 음악과 무대 연출로 재해석한 뮤지컬이다. 2016년 오프-브로드웨이, 2018년 런던을 거쳐 2019년 브로드웨이에서 정식 개막해 토니상 작품상을 비롯해 8개 부문을 수상했고, 그래미어워즈에서 최고 뮤지컬 앨범상도 수상했다. 뉴욕에서는 9월2일 공연이 재개됐는데, 마침 한국 《오페라의 유령》 제작사가 발 빠르게 이 작품을 라이선스로 제작해 9일7일 엘지아트센터에서 개막한 바 있다. 동시대 최고의 화제작이 뉴욕과 서울에서 동시 공연되는 기록을 세운 셈이다.

9월14일부터는 우리나라에서도 인기가 많은 《시카고》 《라이온 킹》 《위키드》 《해밀턴》 등도 브로드웨이에서 모두 다시 볼 수 있게 됐다. 9·11 테러 당시 캐나다에 불시착한 항공기 승객들을 헌신적으로 돌봐준 현지 주민들의 실제 이야기를 담은 《컴 프롬 어웨이》와 디즈니의 인기작 《알라딘》도 각각 9월21일과 28일 재개관할 예정이다.

매년 6월 열리는 토니상이 코로나19 사태로 2년 연속 취소되면서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한 불운의 작품들도 숨을 고르고 있다. 한국 라이선스 공연도 앞두고 있는 《물랑루즈》를 비롯해 《식스》 《티나 터너》 《에인트 투 프라우드》 《재그드 리틀 필》 등은 10월에 문을 연다. 《물랑루즈》는 동명의 주크박스 뮤지컬 영화를 화려한 쇼뮤지컬로 각색한 작품으로 러닝타임 전체가 화려한 대중음악의 향연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티나 터너》는 유명 가수 티나 터너의 이야기를 담았고, 《에인트 투 프라우드》는 고전 팝그룹인 템테이션스의 노래를, 《재그드 리틀 필》은 솔로 가수인 엘라니스 모리셋의 동명 데뷔 앨범 이야기로, 각각 대중음악으로 풀어낸 작품들이다. 이들 작품이 새로이 개막하면 2021~22 시즌의 경향은 ‘팝 뮤지컬’이라고 소개될 법하다. 여기에 영국에서 온 뮤지컬 《식스》도 오픈을 준비 중이다. 《식스》는 헨리 8세의 부인 여섯 명의 이야기를 팝음악 기반으로 만든 작품이다. 이 작품까지 가세한다면 관련 장르가 팬데믹 전후의 신작 뮤지컬의 주류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2020년 3월 브로드웨이 극장가 셧다운 직전에 개막한 작품들도 있다. 오랜 준비 기간에도 막을 올리자마자 기나긴 동면에 빠져야만 했던 얄궂은 운명을 가진 작품들이다. 로빈 윌리엄스 주연의 동명의 히트 영화를 각색한 《미세스 다웃파이어》, 영국 다이내나 왕세자비의 이야기를 다룬 《다이애나》, 서구 뮤지컬의 거장 스티븐 손드하임의 명작이자 1970년 초연 이래 처음으로 주인공을 남자에서 여자로 바꾼 《컴퍼니》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각각 10월21일, 11월2일, 11월15일 연달아 제2의 개막을 갖는다.

 

공연 미뤄진 대작들도 줄줄이 개막 대기

2020~21 시즌에 개막될 예정이었으나 개막 자체가 오랫동안 미뤄진 화제작들도 드디어 공개된다. 이 중에서도 무대와 스크린을 종횡무진하며 전 세계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배우 휴 잭맨이 오랜만에 뮤지컬 무대로 돌아오는 《뮤직맨》과 전설의 팝스타 마이클 잭슨의 노래로 이뤄진 주크박스 뮤지컬 《엠제이》가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뮤직맨》은 2020년 5월 개막 예정으로 티켓도 판매해 최고의 수입을 올렸으나 공연이 미뤄지면서 팬들은 기약 없이 기다려야만 했다. 《엠제이》는 생전에 브로드웨이와는 거리가 멀었던 마이클 잭슨의 곡을 뮤지컬 형식의 드라마와 함께 들을 수 있어 이미 많은 관객이 기다리고 있다. 두 작품은 각각 12월20일과 16일 드디어 초연을 갖게 된다.

한국에서는 지금도 이미 많은 공연이 성황리에 이뤄지고 있다. 대극장만 해도 《하데스타운》 《빌리 엘리어트》 《엑스칼리버》 《마리 앙트와네트》 《헤드윅》이 공연 중이다. 《지킬 앤 하이드》 《젠틀맨스 가이드》 《프랑켄슈타인》 《노트르담 드 파리》 《젠틀맨스 가이드》 등의 인기작들 역시 순차적으로 문을 열고 연말 시즌을 장식할 예정이다.

최근 방역 당국이 ‘위드 코로나’로의 정책 전환을 신중히 고려한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공연계에서는 이미 위드 코로나를 실천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코로나19로부터 육체적인 건강을 지키면서도 동시에 안전한 문화생활을 영위하며 정신적 건강도 지키는 일상이 지구촌 전체에 퍼져 나가기를 기대해 본다. 마치 뮤지컬 《애니》에서 모든 출연진이 행복한 내일을 꿈꾸는 ‘투모로’를 부르는 장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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