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이 저 모양이란 걸 잘 봐두어라 [최보기의 책보기]
  •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9.14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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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에 이르지 않기 위하여》ㅣ염무웅 지음ㅣ창비 펴냄ㅣ396쪽ㅣ16,000원

‘노인들이 저 모양이란 걸 잘 봐두어라’는 2014년 1월 4일 한겨레신문 이진순의 고 채현국 어르신 인터뷰 기사 제목이다. 어르신께서는 이때 “아비들도 처음부터 썩지는 않았다. 봐주지 마라. 노인들이 저 모양이라는 걸 잘 봐두어라. 너희들이 저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 까딱하면 모두 저 꼴 되니 봐주면 안 된다.”고 일갈하셨다. 이 인터뷰로 그 동안 무림에 숨어계시던 선생의 존함이 전 국민들에게 알려졌다.

《지옥에 이르지 않기 위하여》는 창작과비평사 대표,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을 지낸 문학평론가 염무웅 선생의 팔순 기념 산문집이다. 연세 팔십이면 여러 조건 상 새로운 말을 만들기가 쉽지 않게 된다. 조건이 되더라도 새로운 말을 만들어 뒤따르는 후배들의 삶을 경계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본인이 살았던 세상과 후배들이 살고 있는 세상이 많이 다르기 때문이고, 4차 산업혁명이 휩쓰는 변화무쌍의 세계는 아침에 뽕밭이던 곳이 저녁에 바다로 바뀌는 터라 더욱 그러하다.

염무웅 선생은 새로운 말을 만들지 않았다. 대신 선생이 살았던 세상을 돌아보았다. 팔순 노인이 살았던 세상의 말들은 후배들이 살고 있는, 살아야 할 세상에서도 여전히 자양분이 될 인륜의 보편성을 지녔다. 조삼모사 조변석개(朝三暮四 朝變夕改) 기술에 묻혀 실종돼버린 홍익인간 인내천(弘益人間 人乃天,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하라. 사람이 곧 하늘이다.) 사상이 담겼다.

‘지옥에 이르지 않기 위하여’는 독일 음유시인이자 공산주의자 볼프 비어만이 한국 기자에게 했던 말이다. 한쪽 눈을 감은 사람이 낙원을 건설하려 하면 필시 지옥으로 가는 지름길을 만들게 될 것이므로 두 눈을 반듯이 뜨고 세상을 보라는 뜻이다. 1부는 1970년대 박정희 시대 창비 사무실과 인사동에 모여들었던 문학인들과의 추억담이다.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문학운동’을 펼쳤던 사람들인데 ‘조태일, 천이두, 이호철, 김규동, 김용태, 권정생, 김재순’을 비롯해 이성부, 신경림, 한남철, 이문구, 황석영, 백낙청, 송기숙, 문순태, 이오덕, 임재경, 이종구, 이종익, 박윤배, 신동문 등 문학인과 문화부 기자 등이 섞여있다. 이들 뒤에는 흥국탄광, 효암학원 등의 사업가 채현국이 숨어있어 든든한 금융 뒷배가 돼주었다.

2부~4부는 문학평론가이자 사회비평가로서 민주주의와 통일을 염원했던 저자 염무웅 선생이 겪었던 세상에 관한 말들이다. 그가 하는 말의 요지는 “촛불집회와 같은 시위를 한다고 해서 나라가 순식간에 바뀌진 않지만 우리 자신 스스로는 변한다. 사회변혁을 위한 시민적 참여와 인간내면의 감성적 변화는 진정한 혁명의 두 날개와 같다.”는 것이다. 당연히 누구를 막 가르치려는 말들이 아니라 지역, 계급, 문화 갈등을 원만하게 극복해 이 세기 안에 자주평화통일을 이룩하는 소망을 담은 말들이다.

21세기 대한민국을 사는 후배들 모두를 따뜻한 두 눈으로 바라보고, 두 손으로 감싸며 걱정하는 팔순 어르신을 뵙자니 부족한 필자에게 백 년은 아무 의미가 없고, 팔십 년이면 충분하겠다. 맥락 유지상 칼럼 제목은 고 채현국 어르신의 ‘노인들’을 ‘노인’으로 단수화했다.

▲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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