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감찬함, 가혹행위 은폐했나…폭력 피해자를 ‘관심병사’로
  • 서지민 디지털팀 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9.17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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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혹행위에 정신과 치료받던 정 일병 ‘관심병사’로 보고
정 일병, 군 곳곳에 SOS 쳤지만 도움 못 받아
8월13일 오전 부산 남구 해군작전기지에서 출항을 앞둔 청해부대 30진 강감찬함이 정박해 있다. ⓒ 연합뉴스
강감찬함 모습 ⓒ 연합뉴스

해군 3함대 소속 강감찬함 함장이 선임병들의 가혹행위에 시달리다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정아무개 일병을 ‘관심병사’로 상부에 보고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 일병은 함장과 군 내 상담소에 꾸준히 피해사실을 알리고 도움을 요청했지만 사실상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17일 강대식 국민의힘 의원이 해군본부 군사경찰대로부터 받은 보고서에 따르면, 함장은 정 일병이 가혹행위에 의해 정신과 치료를 받게 되자 해당 사안을 ‘병영 부조리’가 아닌 ‘관심병사’ 발생으로 상부에 보고했다.

정 일병은 함장에게 세 차례나 도움을 청했지만, 함장은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 정 일병은 지난 3월16일 함장에게 피해사실을 알리고, 가해자 전출과 비밀유지 등을 요청했다. 그러나 함장은 오히려 정 일병의 보직을 어학병에서 조리병으로 변경하고 침실만 바꿔줬을 뿐, 가해자 전출은 이뤄지지 않았다.

정 일병은 3월26일 자해를 시도하는 과정에서 다시 함장에게 연락을 취했으나, 함장은 정 일병과 가해자 3명의 대화를 주선하는 등 오히려 정 일병이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했다. 이는 가해자-피해자 분리를 명시한 국방부 부대관리훈령에도 반하는 조치다.  

이틀 뒤인 28일에도 정 일병은 함장에게 어려움을 호소하고, 정신과 치료와 육상 전출을 요청했다. 그러나 전출은 이뤄지지 않았고, 4월5일에서야 국군대전병원과 민간병원 위탁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함장은 정 일병의 가해자 3명의 실명도 알고 있었지만, 가해자 3명을 정식 징계 절차가 아닌, 군기지도위원회에 회부하는 자체 규율에 회부하는 등 ‘솜방망이’ 대처에 그쳤다.

정 일병은 함장에 세 차례 도움을 요청한 것과 별개로 군 내 국방헬프콜에서도 다섯 차례 상담을 받았다. 그러나 이곳에서도 이렇다 할 도움을 받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후 정 일병은 6월18일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사건을 수차례 막을 수 있었지만, 수사는 정 일병이 극단적 선택을 한 뒤에야 시작됐다. 그리고 현재까지 입건된 선임은 1명뿐이다. 강감찬함이 코로나19 집단감염 사태로 조기귀국한 청해부대를 대신해 아프리카로 긴급 파견돼 수사가 사실상 중단됐기 때문이다.

유가족은 정 일병에 대해 왕따와 집단따돌림, 생활반 내 추가 폭행 의혹 등을 제기하며 추가 수사를 촉구하고 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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