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진실, 너는 허위라는 탈레반식 정의 독점법
  • 채진원 경희대 교수 (ccw7370@hanmail.net)
  • 승인 2021.09.25 11:00
  • 호수 16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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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7 국회 상정 ‘언론중재법’ 비판 특별기고
‘화성 연쇄살인’ 보도, 30년 지나 진실 드러나…허위 판단 그만큼 어려워

추석이 지나면 여야가 합의한 대로 9월27일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본회의에 상정하게 된다. 이 법안은 논란이 큰 쟁점법안이니만큼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그때까지 숙의 시간을 갖고 관련 쟁점에 대해 상대방 입장과 처지에서 공감하고 역지사지해 이견을 좁히는 데 힘써야 할 것이다.

ⓒ시사저널 이종현
언론중재법 개정안 여야 협의체 4차 회의가 9월13일 국회 제5회의장에서 열리고 있다.ⓒ시사저널 이종현

‘허위·조작 보도’라는 개념 설정의 올가미

언론중재법 논란에 대해서는 이재진 한양대 교수의 의견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그는 “가짜뉴스를 말하려면 허위·조작 ‘정보’라고 해야 하는데 개정안은 이를 허위·조작 ‘보도’로 표현했다”며 “이러면 기성 언론사도 가짜뉴스를 만드는 집단으로 보는 것인데, 저널리즘이라는 큰 틀에서 움직이는 매체에서 일부의 허위가 있을 수는 있어도 조작까지 하는 경우는 없다고 봐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서 그는 “내가 진실이라고 믿지 않는 뉴스를 다 가짜뉴스라고 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고 하면서 “내 것은 진실이고, 네 것은 가짜라는 프레임”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명했다.

언론중재법의 법조항에서 논란이 큰 부분은 ‘제30조의2’(명백한 고의 또는 중과실로 인한 허위·조작 보도에 따라 재산상 손해 등이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에 손해액의 5배를 넘지 않는 범위에서 손해배상액을 정할 수 있다)이다. 이번 기회에 ‘허위·조작 보도’라는 개념 설정이 갖는 자의성에 따른 위험성과 위헌성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특히, ‘허위’라는 개념을 설정하고, 이를 규제해 진실보도에 도달하겠다는 목표가 얼마나 현실을 무시한 순진한 발상인지, 이런 발상이 의도치 않게 언론의 자유를 억압하고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부메랑이 되는 것인지에 대해 역지사지할 필요가 있다. 그런 측면에서 ‘사실(fact)보도’와 ‘진실(truth)보도’의 차이, 그리고 ‘언론의 자유’에 대한 개념 정립을 통해 허위 개념 설정의 위헌성을 숙고해 봐야 한다.

많은 사람이 ‘사실보도’와 ‘진실보도’는 같은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양자는 분명 다르고 구분될 필요가 있다. 하나의 사실이 진실이라고 하더라도 이것은 여러 개의 사실로 묶여 있는 전체적인 사건의 진실과 충돌할 수 있고 이럴 때, 양자의 차이는 확실히 구분된다. 미국이 낳은 세계적인 정치평론가인 월터 리프먼도 저서인 《Public Opinion》에서 ‘사실보도’와 ‘진실보도’를 구분하고 있다.

 

사실 다루는 기자에게 진실 다루는 판사 기대

이것을 구분하기 위해 한 가지 예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이란 영화의 소재가 되었던 화성 연쇄살인 사건이 있다. 이 살인 사건으로 누명을 쓴 윤성여씨가 30여 년 전 붙잡혔을 때 기자들은 그가 범인이라는 수사기관(정부)의 발표에 따라 ‘사실보도’를 했다. 그 보도는 30년간 사실의 범주에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진실과는 거리가 먼 보도가 되었다. 허위보도라고 밝혀지기까지 30년이 걸린 것이다.

이 사례는 모두 허위보도에 반대해 진실보도를 구두선처럼 외치지만 그것에 도달하기가 얼마나 힘든 것인가를 웅변한다. 이처럼, 언론중재법의 문제는 어려운 것을 어렵게 다루지 않고, 만병통치약 같은 허위 개념의 설정을 통해 ‘사실보도’를 ‘진실보도’로 무리하게 대체하려는 데 독(毒)과 올가미가 있다. 허위라는 개념은 사전적으로 “진실이 아닌 것을 진실인 것처럼 꾸민 것”이라는 뜻으로 이미 조작의 의미까지 들어있는 말이다.

이 허위 개념이 설정되면 ‘사실’을 다루는 기자의 영역이 ‘진실’을 다루는 판사나 철학자의 영역으로 확장된다. 결국 법 논리에 따라 ‘사실보도’를 넘어서 ‘진실보도’를 하지 않는 언론에 책임을 묻고 처벌하는 일이 발생한다. 그럼 이때 곧바로 진실은 무엇이고, 누가 진실을 판단할 수 있나, 진실이라고 판단된 진실은 진짜 진실이 맞을까 하는 ‘진리 논쟁’과 ‘진실게임의 늪’에 빠지게 된다는 점이다.

언론이 보도의 사실 여부가 아닌 진실 여부를 따지기 시작하면 그것은 끝이 없는 악무한적인 갈등으로 모두가 희생양이 되는 일이 불거질 수밖에 없다. 수사기관의 발표에 따라 윤성여씨가 범인이라고 사실보도를 했던 기자들은 결국 허위보도로 드러난 만큼, 언론중재법에 따라 모두 입건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불가능한 목표를 세워놓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허위보도 척결’을 명분으로 진실보도를 하지 않는 언론을 정의의 이름으로 처단하려는 것은 전형적인 ‘탈레반식 접근’이다. 탈레반은 “나는 진실=정의, 너는 거짓=부정의”라는 선악의 이분법으로 반대자를 처단하는 ‘진리의 독재정’을 세운 것으로 유명하다. 이럴 경우 공동체는 이견과 다양성이 없는 전체주의와 폭력 사회로 갈 것이 뻔하다.

‘진리의 독재정’이 판옵티콘(원형 감옥)으로 등장하는 순간, 감시와 처벌의 상징권력 앞에서 민주주의의 최후 보루인 언론의 자유는 억압되고 시민들의 다양한 의견표출을 통해 열리는 공론장은 파괴된다. 기자들은 허위보도 위법에 걸리지 않기 위해 자기 생각을 검열하는 덫에 빠지게 된다. 그들은 관변 진실만 보도하거나 성인군자급 철학자나 판사의 판결같이 반박 불가능한 불변의 진실만을 써야 한다.

ⓒ연합뉴스
2019년 11월1일 경찰이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피의자 이춘재가 살해한 것으로 확인된 ‘화성 실종 초등학생’의 유골을 수색하고 있다.ⓒ연합뉴스

언론의 자유는 진리 아닌 의견을 표출할 자유

그런 감시와 처벌의 올가미를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민주주의 선진국인 미국이 어떻게 언론의 자유를 보장했는가를 교훈으로 삼으면 좋을 것이다. 미국 3대 대통령이었던 토머스 제퍼슨은 1787년 자신이 쓴 한 편지에서 자유로운 언론의 중요성에 주목하면서, “우리가 신문이 없는 정부를 가져야 할지 아니면 정부 없는 신문을 가져야 할지가 자신의 결정에 맡겨진다면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후자를 선호할 것이다”라는 유명한 언급을 남겼다.

미국도 1791년 채택된 미국 수정헌법 제1조가 종교, 표현, 언론의 자유와 함께 결사와 청원에 대한 권리를 보장한 이래, 미국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헌법적 가치 중 하나로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더구나 미국은 언론의 자유에 특별한 헌법적 지위를 부여했다. 이미 1938년 미국 연방대법원은 언론의 자유를 제한하려고 시도하는 법률은 다른 대부분 유형의 법률보다 더 엄격한 법적 검토를 받아야 한다고 판단했다.

연방대법원은 “공직자가 언론에 명예훼손 책임을 물으려면 언론의 ‘악의’를 입증해야 한다”고 했다. 징벌적 손해배상의 경우에도 ‘우월한 증거’가 아니라 ‘명백하고 확실한 증거’를 언론이 아닌 ‘피해자’가 제시하도록 했다. 이것의 의미는 결과적으로 허위보도라 하더라도 ‘분명한 악의’가 구체적으로 입증되지 않으면 명예훼손 책임을 언론에 물을 수 없다고 보았다.

미국에서 언론 자유는 오늘날 각 매체들이 자신들이 보는 세상 또는 현실에 대한 편견(bias)을 자유로이 표출할 수 있는 자유를 의미한다. 원칙적으로 미국 언론매체들은 국가권력으로부터의 자유 또는 자율성을 제도적으로 보장받는다.

미국인들은 ‘언론의 자유’란 개념을 진리를 말하거나 진실을 보도할 자유가 아니라 자유롭게 편견과 편향성을 동원해 말할 ‘의견표출의 자유’라고 보고 있다. 편견표출의 자유로 특징지어질 수 있는 미국의 언론 자유하에서 언론들은 필연적으로 벌어지는 프레임 싸움, 말싸움 또는 언어투쟁에 더 자유롭고 편리하게 참여할 수 있다. 이런 다양성과 경쟁은 권력을 감시하고 관련 사건의 진실을 들춰내는 데 용이했다.

그들은 진실을 입증하거나 말하기가 어렵고, 진실을 독점하려는 태도가 자칫 상대에 대한 극단적인 차별과 배제 및 적대감에 따른 폭력과 갈등을 가져온다는 것에 주목해, 진리나 진실이란 말을 극도로 자제하면서 진실과 편견(의견)을 구분하는 데 진력했다. 그들은 상대를 거짓과 악으로, 나를 진실과 선으로 표현하지 않는다는 규칙과 규범 아래서 자유로운 편견(의견)을 표출하거나 동원해서 말하는 방법을 서로 인정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한국은 이번 언론중재법의 논란처럼, ‘진실보도’라는 대의명분 아래 진리를 독점하면서 상대방을 거짓과 허위로 몰아가려고 해서 우려스럽다. 한국도 ‘진실보도’라는 이상적인 목표와 규범을 다소 포기하는 대신 ‘사실보도’에 기초해 편견과 편향성을 동원하는 ‘의견표출의 자유’를 강화하는 데 진력해야 한다. 꾸준한 ‘사실보도’에 기초한 의견표출의 자유는 다양성과 동시에 견제라는 공론장 회복을 통해 더 빨리 진실보도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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