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쩍 않는 美, 멀어지는 남북정상회담
  • 조경환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10.02 14:00
  • 호수 16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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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종전선언 제안에 대한 김여정 담화의 허와 실, 그리고 문 대통령에게 남은 시간

문재인 대통령이 임기 말에 유엔에서 쏘아올린 종전선언 제안은 4일 뒤인 9월25일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의 담화와 맞닿았다. 종전선언을 넘어 남북연락사무소 재설치와 남북정상회담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김정은 위원장은 29일 “10월초 남북통신선 복원” 시정연설로 화답했다. 2018년 ‘한반도의 봄’의 불씨를 살려낼 모멘텀이다. 평화프로세스를 복원해 내겠다는 대통령의 절박감이다. 적어도 다음 정부로 연속시키려 한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남북에 데칼코마니의 고민이 엿보인다. 조급함이다. 미국 설득이 여의치 않은 데 따른 좌절이 느껴진다. 중국으로 우회해 돌파하려 한다. “우리한테는 시간이 제일 중요한데…”, 2019년 2월28일 하노이에서 “속도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트럼프 미 대통령과 마주 앉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회담의 시작과 끝에 반복했던 말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9월2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 총회장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EPA 연합
문재인 대통령이 9월2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 총회장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EPA 연합

종전선언에 대한 美 입장, 文 정부와 다른 결

그 말은 속내다. 생존의 문제다. 김 위원장은 하노이의 굴욕을 딛고 2020년 신년사부터 자력갱생을 내세웠다. 실적은 신통찮다. 2016년 5월 7차 당대회에서 내놓은 ‘경제발전 5개년 전략’은 “모든 부분에서 엄청나게 미달되었다”는 자인으로 결말이 났다. 올해 1월 8차 대회에서 ‘국가경제발전 5개년 계획’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곧 1년의 실적이 나온다. 코로나19로 인한 국경봉쇄는 임계점을 향해 간다. 북한 노동신문은 9월27일 사설에서 “코로나 위기는 전쟁 못지않은 시련의 고비, 한계 도달”을 다뤘다.

김 위원장의 ‘미국 바라보기’는 대북제재 해제와 체제 보장의 현실 인식에 바탕을 둔다. 트럼프 대통령과의 두 차례 회담과 한 차례 만남, 28건 이상의 친서가 명징한다. 그런데 바이든 대통령에서 막혔다. 지난해 10월 미 대선 TV토론에서 “핵 능력 감소 없이는 김정은을 안 만나겠다”던 그다. 그리고는 “조건 없는 대화” 입장에서 8개월째 요지부동이다.

김 위원장에게 중국은 미국을 압박할 방편이다. 2018~19년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 중간중간에 시진핑 주석은 김 위원장과 다섯 번 회담했다. 대미 협상의 승산을 키워줬다. 미국의 대중(對中) 포위가 노골화되는 지금, 북한의 전략적 가치는 높고 한국은 약한 고리로 인식된다. 내년 2월 베이징동계올림픽은 시 주석의 3번째 임기에서 중요한 관건이다. 9월15일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서울을 찾기 전에 베이징올림픽 때 남북정상회담과 관련해 북한과 사전 교감이 있었을 것이라는 진단이 있다.

그러나 지금껏 중국이 한반도 문제를 진정으로 풀어보려고 한 적은 별로 없다. 현상 유지를 원했다. 북한을 이용했다. 김 위원장은 그것을 잘 알고 있다. 선대인 김일성 주석도, 김정일 위원장도 알고 있었다. 더욱이 베이징올림픽은 중국의 인권침해 논란으로 해외 정상들이 모일 가능성이 낮다. 미국은 고위 관리 불참의 ‘외교적 보이콧’을 논의 중이다. EU와 영국·캐나다 의회는 보이콧 결의안을 냈다. IOC는 도쿄올림픽 불참을 이유로 9월9일 북한의 올림픽 출전자격을 내년 말까지 정지시켰다.

김정은과 김여정의 “불변의 요구”로서 예의 선결 조건이 눈길을 끈다. ①이중 잣대와 ②대북 적대시정책 철폐 ③서로 존중과 적대적 언동 금지가 그것이다.

첫째, ‘이중 잣대’는 북한의 군사행동도 남한의 그것처럼 자위적이므로 ‘도발’로 규정해서는 안 됨을 의미한다. 유엔 안보리가 핵미사일 ‘도발’을 이유로 부과한 제재의 해제와 연결된다. 둘째, ‘적대시정책 철폐’는 김 위원장이 지난해 신년사에서 대화의 전제조건으로 천명했다. 북한의 김성 유엔대사는 9월27일 “한반도와 주변에서의 합동군사연습과 전략무기 투입 영구 중지가 ‘적대정책’ 포기의 첫걸음”이라고 했다. 셋째, ‘적대적 언동’ 금지는 한·미의 언행 변화 요구다.

현상 타개를 가로막는 난관들이다. 대내외 위기를 모면하고 ‘핵무력’ 합리화를 위한 위장평화의 기만도 읽힌다. 유화적 담화 사흘 뒤인 28일 ‘극초음속 미사일’ 첫 시험 발사로 도발하더니 다음 날 남북관계 조속 회복의 메시지를 내는 북한이기에 더 그렇다.

“종전선언에 앞서 미국 및 동맹국의 안보 평가가 선행돼야 한다.”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3월10일 미 하원에서 내놓은 증언이다. 종전선언 자체로도 상징성은 있지만, 실질이 방점이다. “비핵화 협상의 입구”로 보는 문재인 정부와는 다른 결이다. 북한이 대화 재개에 조건을 다는 것도 안 받아들이려 한다. ‘적대정책’은 개념이 모호하다고 본다. ‘램버트’ 미 국무부 한·일 담당 부차관보는 9월24일 “북한 스스로 정의하라”고 했다. 결과적으로 북한 자신의 행위는 정당화하고 남한과 미국의 태도 변화만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한국공동사진기자단
2018년 4월27일 군사분계선에서 만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악수를 하고 있다.ⓒ한국공동사진기자단

남북관계, 정권 치적 아닌 초월적 공공재여야

문 대통령에게 남은 6개월. 어쩌면 우리는 민족사의 대전환점을 지나가고 있는지 모른다. 지금을 호기로 판단한다면 단지 소모하고 말아서는 안 된다. 원칙과 강약, 밀고 당기기와 상호주의를 작동해야 한다. 실효적 레버리지를 축적해야 한다.

첫째, 김 위원장은 그의 진단대로 “남북관계 악화의 원인을 더는 외면하고 방치”해서는 안 된다. 그 “불변의 요구”를 논의하자면 대화다. 남북연락사무소 폭파 유감쯤은 표명하는 것이 상식이다. ‘도발’은 유엔 안보리의 정의에 따라야 한다.

둘째, 주한미군에 대해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 때 김정일 위원장은 “적대적 군대가 아니라면 환영한다”고 했다. 한·미 연합훈련도 김정은 위원장이 2018년 3월초 정의용·서훈 특사 면담 때나 3월말 폼페이오 CIA 부장에게 “용인한다”고 했다. 언약은 지키라고 있다.

셋째, 남북관계 발전은 정권의 치적이 아니다. 초월적 공공재여야 마땅하다. 야당과 협의하고, 국회 절차를 밟아야 느리더라도 멀리 간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여야와 진보·보수가 협력하는 거버넌스를 만들어 1년간 노력한 끝에 1989년 9월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을 탄생시켰다.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와 1992년 한반도비핵화선언을 일궈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한·미 동맹에 도전하지 않고 이용했다. 동맹과 대북 포용을 동시에 가져가는 창의와 용기, 실행력을 보여주었다. 종전선언이나 제재 완화, ‘적대정책’ 철폐는 미국과 병목에서 만나게 돼 있다. 미국이 발 벗고 나서야 가능하다.

남북정상회담은 베이징에서 이루어지든, 화상으로든 내년 3월 대선에의 영향을 조금이라도 염두에 두면 국민이 바로 알아차린다. 노무현 정부의 2007년 10·4선언은 공존공영의 사업들을 담아냈다. 그러나 대선을 두 달 보름 앞두고 정상회담을 서두르는 바람에 국민적 합의 도출 절차를 생략했다. 정권교체의 역풍을 맞아 여태 빛을 보지 못하는 게 반면교사다.

 

※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조경환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위원
조경환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위원

필자 조경환은 누구

외교부 샌프란시스코 부총영사와 국가정보원 고위 공무원을 지냈다. 행정학 박사다. 세종연구소 객원연구위원을 거쳐 통일연구원 초빙연구위원, 경기도 안보정책자문관,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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