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수사는 되고, 특검 수사는 안 된다는 이율배반 [유창선의 시시비비]
  • 유창선 시사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10.01 14:00
  • 호수 16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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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 100% 찬성”한다는 이재명, 특검 수사 받아들이는 모습 보이는 게 좋아

“이런 수익이 날 수 있도록 저도 회사 직원으로서 맡은 일에 최선을 다했다.” 화천대유로부터 50억원의 퇴직금을 받은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된 곽상도 의원의 아들 곽병채씨가 했던 말이다. 요즘같이 일자리도 귀한 시절에 회사 직원으로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야 헤아릴 수 없이 많을 텐데, 그렇다고 아무리 회사가 기대 이상의 수익을 올렸던들 그만한 퇴직금을 받았다는 사람의 얘기를 우리는 들은 적이 없다. 아들이 아니라 아버지를 보고 준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합리적 의심이다. 그것이 청탁에 따른 뇌물인지 보험의 성격인지는 수사를 통해 가려져야 할 일이지만, 돈벼락을 맞은 야당 국회의원 아들의 얘기는 취업조차 어려운 이 시대 청년들의 가슴에 이루 말할 수 없는 박탈감을 안겨주고 말았다. 야당 쪽이라고 의혹의 예외가 아님을 보여준 일이다.

그렇지 않아도 대장동 의혹을 토건 비리 세력과 결탁한 ‘국민의힘 게이트’라고 주장해 오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는 “국힘 정치인들이 화천대유에서 막대한 현금과 이권을 챙겼다”며 역공에 나섰다. “1원도 받은 일이 없다”면서 “아무런 문제가 없고, 오히려 행정의 모범사례일 뿐’이라는 것이 이 후보의 일관된 입장이었다. 물론 이 후보가 대장동 개발사업으로 1원이라도 받은 정황이 나타난 것은 아직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민간업자 몇 사람에게 4000억원대 배당금과 4000억원대 분양이익을 안겨준 터무니없는 민관 합작 사업에 대한 책임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시사저널 박은숙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경선 후보가 9월14일 국회 소통관에서 성남시 대장동 개발과 관련한 특혜 의혹에 관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시사저널 박은숙

박 장관-김 총장 지휘 검찰에서 제대로 된 수사 가능할지 의구심

더구나 그 사업은 그 자신이 말했던 대로 이 후보 스스로 설계한 것이었고, 그의 측근들에 의해 주도되었다. 최측근인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 정진상 전 경기도 정책실장이 대장동 개발사업 핵심 업무를 총괄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당시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김문기 성남도공 개발사업처장, 정민용 변호사 등도 이 후보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이 후보의 사람들이 민간업자들에게 돈벼락의 횡재를 안겨준 개발사업의 실상이 드러났는데도 ‘모범적 공익사업’이었다며 자신의 치적으로 내세우는 모습은 상식에 맞지 않는다. 이 후보는 지금까지 드러난 일들만 갖고도 국민에게 고개 숙이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옳다.

대장동 개발 의혹은 전방위적으로 커져가고 있지만, 경찰과 검찰의 수사는 더디기만 했다. 경찰은 화천대유 내부의 수상한 자금 흐름에 대한 수사를 벌이고 있다. 이미 5개월 전에 금융정보분석원(FIU)이 화천대유의 수상한 자금 흐름이 담긴 금융자료를 경찰에 통보했지만, 이를 묵혀두다가 이제야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다. 경찰은 이성문 화천대유 대표를 조사한 데 이어 대주주인 김만배씨를 조사했지만 형사 입건이 아닌 참고인 신분의 조사에 머무르고 있다. 그런가 하면 검찰도 수사전담팀을 구성해 뒤늦게나마 압수수색에 나섰지만, 과연 지금의 김오수 총장 체제에서 제대로 된 수사가 가능할지 의구심이 따르고 있다.

이 사건의 구조는 매우 복잡하고, 이재명 후보 주변 인맥들이 얽히고설켜 있다. 어떻게 이런 사업구조가 가능했는지에 대한 특혜 의혹 규명은 기본이고, 화천대유의 정·관계 로비 의혹도 파헤쳐야 할 중요한 대목이다. 이미 각계의 내로라하는 인물들이 등장했다. 한 언론인이 주도해 천문학적인 액수의 이익을 챙긴 이 사건에는 전직 대법관, 전직 검찰총장이자 현 야당 유력 대선후보, 전직 특별검사, 야당 국회의원의 아들 등이 등장했다. 이들도 자문료와 퇴직금, 혹은 자녀의 아파트 분양 등을 통해 상당한 경제적 이익을 나누어 가진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강제수사가 없는 지금 단계에서 언론보도를 통해서도 이 정도의 실체가 드러났는데, 제대로 된 수사가 진행된다면 어떤 인물, 어떤 연결망들이 드러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것이 여권이든 야권이든, 지위가 어떠하든, 모든 의혹은 규명되어야 하고 그에 맞는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러지 않고, 단지 대선을 앞두고 있는 시점이라는 이유만으로 의혹을 덮고 간다면 우리 사회에서 정의는 설 자리가 없게 될 것이다.

하지만 민주당 정치인인 박범계 법무부 장관 아래에 있는 김오수 검찰총장이 과연 여당 유력 대선후보 관련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불신은 클 수밖에 없다. 그래서 특임검사 임명, 특별수사본부 설치 등의 요구가 나왔지만, 김 총장은 기존의 수사팀을 통합하고 증원하는 전담수사팀을 만드는 선에서 서울중앙지검 수사에 힘을 실어주었다. 하지만 이는 서울중앙지검의 수사팀을 통합하는 수준일 뿐, 이정수 서울중앙지검장과 김 총장의 지휘를 받아야 하기에, 독립성을 갖는 수사팀이 되기 어렵다.

 

2007년 대선 직전 BBK 검찰 수사 ‘무혐의’도 13년 뒤 ‘유죄’

이런 상황에서 대장동 개발 의혹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특검 수사 이외에 다른 방법이 없어 보인다. 이 사건 수사는 대선 정국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민감하고 중대한 일이다. 여야 양쪽의 대선후보들이 관련되어 있는 의혹이니, 양쪽 모두를 성역 없이 공정하게 수사할 수 있는 정치적 중립성은 대전제가 된다. 그러나 지금의 검찰이나 경찰이 공정한 수사에 대한 신뢰를 얻기 어려운 현실을 감안하면, 수사 결과에 대한 논란이 두고두고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이명박 한나라당(국민의힘의 전신) 후보의 BBK 주가조작 및 횡령 등 연루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가 있었지만, 이 후보는 BBK 사건과 관련 없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이명박 후보의 당선 직후 정호영 특검팀이 다시 수사했지만 비슷한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이 사건은 퇴임 후 재수사가 이뤄졌고, 13년이 지난 뒤에야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됐다. 대선을 앞두고 유력 후보에 대한 수사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보여주는 일이다.

이러한 현실에서는 대장동 의혹에 대해 정치권은 물론이고 법조계 인맥들의 영향력까지도 의식하지 않고 엄정한 수사를 할 결기를 가진 특검이 요구된다. 수사에 “100% 동의한다”고 했던 이재명 후보지만 특검에 대해서는 “결단코 반대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검찰 수사는 좋고 특검 수사는 안 된다는 것은 이율배반이다. 이 후보가 자신의 공언대로 문제 될 것이 없다면, 특검 수사를 수용해 모든 것을 깨끗이 매듭짓고 내년 3월 대선을 치르는 것이 나을 것이다. 이 후보가 말한 ‘국민의힘 게이트’의 실상도 특검 수사를 통해 강도 높게 파헤치면 될 일이다. 이재명 후보가 결단하면 민주당도 수용하게 되어있다. 그의 결단을 기다린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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