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정의선 국회 출석 무산…한성숙·김범수는 증인 채택 
  • 오종탁 기자 (amos@sisajournal.com)
  • 승인 2021.10.05 10:00
  • 호수 16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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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감의 총수 소환, 정당한 질의인가 국회 갑질인가…네이버 등 플랫폼 기업들은 여전히 ‘벌벌’

국회가 10월1일부터 3주간의 국정감사에 돌입했다. 문재인 정부 마지막 국감이다. 대선 5개월여 전 열리는 국감이니만큼 정치권은 고발 사주 의혹이나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 등 정국 향방을 가를 첨예한 현안을 두고 맞부딪치고 있다. 여야 의원들이 숨을 고르며 의기투합하는 시간도 있다. 바로 기업인들을 증인으로 호출해 질의하는 때다. 하지만 그 긴장감은 예년만 못하다. 

시사저널이 정치권과 재계를 취재한 결과 여야는 재벌 총수 등 대기업 관계자들을 대거 국감장에 세워 강도 높게 압박하려 했다가 여론 동향을 고려해 수위를 대폭 낮췄다. 

환경노동위의 경우 당초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최정우 포스코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허태수 GS그룹 회장,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 이해진 네이버 글로벌투자책임자(GIO), 조양래 한국앤컴퍼니 회장, 이순형 세아그룹 회장,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 등을 국감 증인으로 채택할 예정이었다. 국내 10대 그룹(삼성, 현대차, SK, LG, 롯데, 포스코, 한화, GS, 현대중공업, 농협) 총수 중 6명이 증인 신청 명단에 포함돼 화제를 모았다. 환노위는 총수들에게 정부의 ‘2030 온실가스감축목표(NDC)’ 이행 계획과 환경법규 준수 여부, 고용 인원 감소 이유 등과 관련해 질의한다는 계획이었다. 

ⓒ연합뉴스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이 2020년 10월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회 정무위의 국무조정실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연합뉴스

환노위, 대기업 총수 가장 많이 호출 

환노위가 강한 의지를 내비쳤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총수들의 출석은 모두 불발됐다. 환노위는 9월27일 전체회의를 열어 이들을 부르지 않기로 했다. 이에 갑론을박이 뒤따랐다. 

대외적으로 밝혀지는 것을 꺼려 익명을 요구한 한 대기업 임원은 “환노위의 증인 신청 소식을 들었을 때 실질적인 질문을 하려고 총수를 명단에 올렸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며 “거론된 기업들이 사회에 해악을 끼쳤거나 경영상 잘못을 저지른 게 없을뿐더러, 환경·고용 등 제기된 현안도 구체적이지 않아 ‘마구잡이로 다 불러놓고 보려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정당한 명분 없이 기업인들을 오라 가라 하는 것은 ‘행정부를 감시하고 비판한다’는 국감 본연의 기능과는 거리가 먼 행태”라고 지적했다. 

반면 오세형 경제정의실천연합 경제정책국 팀장은 “국감은 국민의 질문을 대변하는 유일한 장”이라며 “총수 1인의 영향력이 지대한 우리나라 기업 풍토에서 개별 기업의 입장을 제대로 들으려면 총수를 부르는 게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오 팀장은 “현재의 여당이 야당이었을 땐 총수 호출이 불발되면 강하게 반발하곤 했었는데, 올해처럼 증인 채택이 대거 무산되고도 별말 없는 상황은 분명 문제가 있다”고 했다. 

환노위가 총수들을 증인으로 채택하지 않은 이유와 관련해 국회 안팎에선 ‘코로나19 방역지침과 총수별 개인 일정을 감안했다’는 표면적인 이유보다 ‘비판 여론을 의식한 조처’란 분석에 힘이 실리고 있다. 환노위가 총수들에 대한 증인 신청이 가장 많은 상임위로 주목받은 뒤 ‘보여주기식’이란 목소리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박용만 “총수 ‘불러내기’ 제발 없어졌으면” 

비판 여론은 지난 국감 때도 없지 않았으나, 올해 유독 거세다. 코로나19로 인한 경기침체와 무관치 않다는 풀이다. 한창 내년도 경영계획을 수립하며 위기 대응에 매진하고 있는 기업들에 부담만 안겨준다는 것이다. 과거 일부 기업인이 국감장에 불려 나갔다가 의원들로부터 모욕이나 무시를 당한 장면도 속속 소환됐다. 

결국 환노위는 각 분야 대표 기업의 임원들만 증인으로 채택했다. 박현 포스코 전무(탄소배출), 권순호 현대산업개발 대표(사업장 내 안전관리), 김규덕 삼성물산 전무(산재사망사고 다발사업장), 조민수 코스트코코리아 대표(사업장 내 폐기물 및 재활용폐기물 무단방류) 등이 대표적이다.  

환노위원장인 박대출 국민의힘 의원은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여야 의원들이 전체회의에서 각자 신청한 증인이 채택되지 않은 부분 등에 대해 논의했는데, 큰 반발이나 갈등 없이 (증인 채택에 관한) 합의를 도출했다”고 전했다. 박 위원장은 이어 “심도 있는 국감이 되기 위해 필요한 증인이나 참고인은 채택해야 한다. 다만 국회가 이른바 ‘갑질’ 논란으로 국민에게 오해를 살 수 있는 데 대해선 신중해야 한다”며 “두 가치가 충돌하지 않도록 여야가 숙의해 결정했다”고 말했다.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도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대기업의 중고차 매매시장 진출)과 최태원 SK그룹 회장(수소경제) 등 총수들을 증인으로 신청한 후 논란에 휩싸였다. 특히 국감장에서 최 회장에게 문재인 정부의 주력 정책인 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에 관해 언급하도록 하는 것이 적절한지를 놓고 시끄러워졌다. 

박용만 두산경영연구원 회장 겸 대한상의 명예회장은 최 회장의 산자위 국감 증인 채택 가능성을 다룬 기사를 SNS에 링크하면서 “액면 그대로 ‘질문하기 위한 목적’이라 이해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듯하다”며 “의회도 당연히 그런 점을 모르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알면서도 ‘불러내기’가 목적임이 분명하다”고 비판했다. 박 회장은 “불러내기는 제발 없어지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산자위도 정 회장과 최 회장을 증인으로 채택하지 않기로 했다. 10대 그룹 총수 중에선 포스코 최정우 회장만 가격정책 등 상생안 이슈로 증인 명단에 올랐다. 이 밖에 박지원 두산중공업 대표(납품대금 부당행위), 노태문 삼성전자 사장(국민지원금 정책취지 훼손), 최일규 SK텔레콤 부사장(중소기업 특허탈취 및 영업방해), 김동전 맘스터치 대표(대리점 갑질) 등이 증인으로 채택됐다. 

ⓒ시사저널 박은숙
2020년 10월8일 강신봉 딜리버리히어로코리아 대표, 김범준 우아한형제들 대표, 김성민 한국마트협회장, 이종민 삼성전자 상무, 김동욱 현대자동차 전무(왼쪽부터) 등 기업인들이 국회 산자위 국정감사에서 증인선서를 하고 있다.ⓒ시사저널 박은숙

한성숙 네이버 대표, 상임위 4곳에 증인으로 

전통적인 재벌 그룹들은 한시름 덜었지만, 네이버·카카오 등 인터넷 플랫폼 기업들은 벌벌 떨고 있다. 여전히 ‘한 방’이 필요한 의원들은 첨예한 이슈에 맞닥뜨린 해당 기업들에 화력을 집중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한성숙 네이버 대표는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 보건복지위, 산자위, 환노위 등 상임위 4곳에 증인으로 불려가게 됐다. 농해수위에는 동물용 의약품의 온라인 불법 거래, 복지위에는 국민연금 모바일 전자고지 위탁 서비스, 산자위에는 온라인 플랫폼의 독점 구조와 골목상권 침해, 환노위엔 직장 내 괴롭힘 등 조직문화와 관련해 출석한다.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산자위, 정무위), 류긍선 카카오모빌리티 대표(국토교통위, 산자위),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의 김범준 대표(과방위, 산자위), 김경훈 구글코리아 사장(과방위, 복지위), 강한승 쿠팡 대표(국토위, 정무위) 등은 2개 상임위에서 증인으로 동시에 채택됐다. 아울러 당근마켓, 야놀자, 넷플릭스서비시스코리아 관계자도 과방위 증인으로 출석할 예정이다. 

20대 국회의원을 지낸 임재훈 국민의힘 안양 동안갑 당협위원장은 “이번 국감에 인터넷 플랫폼 기업이나 혁신 스타트업 대표들을 무분별하게 증인으로 소환한 것 역시 보여주기 내지 망신주기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서 “이들 기업은 코로나로 경제가 어려움을 겪는 와중에 그나마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 사회적으로 잘못한 부분이 있다면 법제화, 즉 제도화를 통해 개선해야지, 대표자를 마구잡이로 국감장에 세우는 건 비경제적인 처사”라고 꼬집었다.  

 

■ 기업인 국감 호출, 52명(17대)에서 159명(20대)으로 늘어 
과거 서경배·신동빈·조양호 등 증인 출석 

국정감사에 출석한 기업인 수는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17대 국회 국감(2004~07년) 때 연평균 52명이던 것이 18대(2008~11년) 77명, 19대(2012~15년) 124명으로 증가하더니, 20대(2016~19년)에는 159명이 됐다. 경제·산업 이슈가 복잡다단해지면서 상임위를 가리지 않고 기업인 호출이 이뤄진 영향이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대기업의 관계자, 그것도 최고경영자(CEO)나 총수가 국감에 참여하면 전 국민적인 관심이 쏠린다. 각 상임위 소속 의원들이 기업인들을 증인으로 채택하려는 이유다. 초대형 현안이 있으면 각 상임위별로 중복 출석해 달라는 요구도 빗발친다. 

그러나 재벌 총수가 국감에 증인으로 출석한 사례는 흔치 않다. 최근 국감장에 얼굴을 내비친 총수는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이다. 지난해 정무위 국감에 증인으로 참석해 로드숍 가맹점주와의 갈등을 원만하게 해결하겠다고 밝혔다. 서 회장은 2013년 국감 때 손영철 당시 사장을 대신 출석시킨 데 이어 7년 만에 가맹본부 불공정 거래행위 관련 증인으로 호출됐으나, 건강상 이유로 불출석 의사를 전했다. 이를 두고 논란이 커지자 결국 종합국감에 모습을 드러냈다. 

앞서 2016년에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한진해운 사태)이, 2015년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롯데 특혜와 상장차익 사회환원 여부)이, 2013년엔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동양 사태)이 정무위 국감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일부 총수는 국감 시즌이 오면 ‘도피성’ 해외출장을 나가면서 눈총을 받았다. 무단 불참으로 검찰에 고발되기도 했다.  

올해 상황도 다르지 않다. 국감에서 증인으로 채택된 플랫폼 기업 총수들이 실제로 국감장에 나갈지는 미지수다. 채택된 증인 중 일부는 현재 해외에 머무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전에도 김범수 카카오 의장, 이해진 네이버 GIO 등이 해외출장을 이유로 국감 출석을 거부한 바 있어 실제 출석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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