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문화 인물] 《오징어 게임》, 2021년 지구촌을 홀렸다
  • 조유빈 기자 (you@sisajournal.com)
  • 승인 2021.12.28 11:00
  • 호수 16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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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문화적 흐름 주도한 《오징어 게임》
이정재·오영수, 나란히 골든글로브 후보 올라

시사저널이 선정한 2021 ‘올해의 인물’은 ‘MZ세대’였다. MZ세대는 1980~1994년에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와 1995~2000년대 초 사이 태어난 X세대를 통칭한 세대를 의미한다. 분야별 올해의 인물도 역시 MZ세대가 관통했다. 올해의 정치 인물에서는 이준석 대표가 압도적 지지를 받았고, 경제 인물에 선정된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역시 50대로 MZ세대는 아니지만 기존 재벌가 총수와는 전혀 다른 방식의 젊은 소통을 이어간다는 점에서 많은 점수를 받았다. IT·의과학 인물의 가상인간 로지(22세 여성), 연예 인물의 BTS, 스포츠 인물의 김연경 또한 MZ세대 문화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스타들이다. 이 밖에 사회 인물은 코로나 의료진, 문화 인물은 《오징어게임》, 국제 인물은 일론 머스크가 각각 선정됐다.

매년 송년호에서 발표되는 시사저널 올해의 인물은 세 번의 절차를 거쳐 최종 선정된다. 먼저 시사저널 편집국 기자들이 지난 한 해 각 분야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인물(또는 사건·현상 등)을 추천한다. 기자들의 추천을 바탕으로 후보군을 만든 후 시사저널 홈페이지를 방문한 독자들을 대상으로 온라인 투표를 진행한다. 해당 결과를 토대로 시사저널 편집국에서 다시 최종 선정 작업에 돌입한다.

그야말로 뜨거웠다. 전 세계가 하나의 한국 드라마를 주목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 넷플릭스 사상 최장 1위 기록을 세운 이 작품은, 넷플릭스가 시청자 집계를 하고 있는 83개국 모두에서 한 번씩 정상을 차지한 최초의 작품이기도 하다. “지난 몇 개월간 인터넷이 없는 외딴섬에 살지 않았다면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라는 영국 BBC의 설명처럼, 《오징어 게임》은 2021년 전 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콘텐츠였다. 전 세계 1억4200만 가구에서 시청한, 지금도 글로벌 톱10 자리를 지키며 장기 흥행을 이어가고 있는 《오징어 게임》이 그 온도를 입증하듯 올해의 문화 인물에 선정됐다.

왼쪽부터 이정재, 정호연, 박해수ⓒAFP 연합

정호연·박해수도 글로벌 스타로 부상

이전에도 세계적으로 작품성을 인정받은 작품들은 있었지만, 대중적인 측면에서는 일부의 전유물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이번에는 달랐다. 《오징어 게임》은 전 세계 대중에게 먹혔다. 한국의 옛날 놀이를 전 세계를 무대 삼아 복기시켰고, 일종의 문화 현상까지 만들어내며 K콘텐츠를 주류의 반열에 올려놨다. 전 세계 핼러윈데이는 《오징어 게임》 코스튬으로 물들었고, 뉴욕 타임스스퀘어 한복판에서는 딱지치기와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게임이 진행되기도 했다. 주연배우인 이정재는 뉴욕타임스의 ‘문화계 샛별’로 선정됐다. 지난 10월 리드 헤이스팅스 넷플릭스 공동 최고경영자는 2021년 3분기 실적을 발표하는 영상에 초록색 체육복을 입고 등장하면서 《오징어 게임》의 영향력과 성과를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기록은 성적뿐 아니라 수상으로도 입증된다. OTT 콘텐츠 특성상 영화와 드라마의 구분이 모호하지만, 《오징어 게임》에 러브콜을 보내는 곳들에 그 형식은 중요하지 않았다. 영화 분야에서도, 드라마 분야에서도 수상이 이어지고 있다. 《오징어 게임》은 미국의 독립영화 시상식인 고섬어워즈에서 최우수 장편 시리즈상에 해당하는 ‘획기적인 시리즈-40분 이상 장편’ 부문에서 상을 받았고, 미국영화연구소(AFI)가 선정한 TV 프로그램 부문 특별상도 받았다. 최근에는 아카데미 시상식과 함께 미국의 양대 영화 시상식으로 꼽히는 골든글로브에 한국 드라마 최초로 TV 드라마 작품상, 남우주연상, 남우조연상 3개 부문에 작품과 배우의 이름을 올렸다. 주인공 기훈을 연기한 이정재가 주연상, 극에서 묵직한 존재감을 드러낸 ‘깐부 할아버지’ 일남 역의 오영수가 조연상 후보다.

오영수ⓒ뉴스1

등장인물들의 인기도 치솟고 있다. 주연배우 이정재뿐 아니라 박해수, 위하준, 정호연 등 《오징어 게임》 속 빛나는 조연으로 전 세계에 얼굴을 알린 이들은 미국 NBC의 지미 팰런쇼에도 출연해 미국 시청자들의 열광적인 호응을 받기도 했다. 극 중 새벽을 연기한 모델 출신 배우 정호연은 《오징어 게임》을 통해 부각된 대표적인 스타다. 정호연은 40만이었던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가 2300만 이상으로 급증하며 세계적인 인플루언서 반열에 올랐다. 최근 인스타그램 계정을 개설한 이정재와 박해수의 팔로워도 수백만 명을 넘어섰다.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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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막의 장벽’ 넘어선 《오징어 게임》의 성과

‘자막’이라는 장벽을 넘어섰다는 것도 《오징어 게임》의 성과다. 그동안 비영어권 국가에서 만든, 영어가 아닌 언어로 제작된 콘텐츠는 자막에 익숙하지 않은 영어권 국가의 시청자들에게 외면을 받아왔다. 2020년 77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기생충》으로 외국어영화상을 받은 봉준호 감독은 “자막의 장벽, 그 1인치의 장벽을 뛰어넘으면 훨씬 더 많은 영화를 즐길 수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이제는 충분히 경쟁력을 갖춘 콘텐츠가 존재하고, OTT라는 접근성 높은 플랫폼을 통해 대중에게 도달한다. 비영어권 작품을 감상하는 해외 넷플릭스 구독자가 늘어나는 등 시청의 생태계가 변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오징어 게임》은 전 세계의 대중이 ‘자막의 장벽’을 뛰어넘을 수 있게 쏘아 올려진 신호탄 같은 존재가 되었음은 분명하다. 콘텐츠의 퀄리티만 담보된다면 언어의 장벽이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 시대가 되었음을 《오징어 게임》은 보여줬다.

이처럼 비영어권 국가가 만든 비영어 콘텐츠가 전 세계를 휩쓴 전례 없는 성공에 세계 언론들도 주목하고 있다. BBC는 “서구 TV 문화의 역사가 《오징어 게임》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이라고 단언했고, 미국 블룸버그는 “《오징어 게임》을 통해 한국 창작자들은 미국 중심의 할리우드와 경쟁할 수 있는 콘텐츠 제작 능력을 입증했다”고 했다. 《오징어 게임》의 성공을 기점으로, 비영어권 콘텐츠를 영미 문화의 맥락으로 재해석해 영어판으로 리메이크하는 관행도 막을 내릴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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