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더맨과는 너무 다른 《매트릭스》의 ‘추억 소환법’
  • 정시우 영화 저널리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1.01 15:00
  • 호수 16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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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트릭스: 리저렉션》의 부활을 지지하지 못하는 이유

1999년, 세기 말에 등장한 《매트릭스》가 영화계에 던진 충격파는 대단한 것이었다. 검은 가죽 의상을 입은 트리니티(캐리 앤 모스)가 공중 360도 발차기를 하는 모습은 대중문화 곳곳에 파고들어 패러디됐고, 일본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와 홍콩 누아르 대부 오우삼의 액션을 오마주한 장면들은 그 자체로 스타일리시해 또 하나의 ‘오리지널’이 됐다.

무엇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가상현실일 뿐이며 기계가 인류를 에너지원으로 사육하고 있다’는 상상은 여러 철학적 논의를 촉발했는데, 《매트릭스로 철학하기》라는 책까지 나왔으니 말 다 했다. SF 블록버스터 영화를 두고 신약성서부터 보드리야르, 푸코, 플라톤, 들뢰즈, 장자의 호접몽 등이 호출되는 풍경이라니!

그러니까 블록버스터 팬부터 상아탑 철학자까지 다양한 팬층을 포섭한 《매트릭스》는 하나의 현상이었고, 시간은 《매트릭스》를 전설로 만들었다. 그래서다. 《매트릭스》를 만든 라나 워쇼스키가 전설을 깨운다고 했을 때 기대만큼이나 우려가 따라붙은 건. 괜히 전설에 구멍을 내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 말이다.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돌아오는 전설에 대한 기대와 우려

《매트릭스》의 주인공 키아누 리브스에겐 두 개의 신분이 있었다. 하나는 게임 프로그래머 ‘토마스 앤더슨’, 나머지 하나는 인류를 구원할 메시아 ‘네오’다. 《매트릭스》 트릴로지는 거칠게 말해, 토마스 앤더슨으로 살던 남자가 네오로 각성해 인간을 생체 배터리로 써먹는 기계들로부터 인류를 해방시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2003년 《매트릭스3-레볼루션》에 네오는 평화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선택으로 안녕을 고한 바 있다. 그렇다면 따라오는 질문. 18년 만에 다시 쓰는 《매트릭스: 리저렉션》은 네오를 어떻게 부활시킬 것인가. 라나 워쇼스키는 네오의 기억을 초기화하는 방법을 쓴다.

《리저렉션》에서 네오는 어쩐 일인지, 예전처럼 가상현실 속 토마스 앤더슨으로 살고 있다. 파란 약을 달고 사는 그에겐 과거의 기억이 없다. 즉 영화는 토마스 앤더슨이 네오로 활약했던 과거를 잊고 사는 설정을 통해 1편의 시작점으로 주인공을 돌려놓는다. 물론 네오가 기억을 잃었을 뿐, 있었던 일이 사라진 건 아니다. 토마스 앤더슨을 네오로 다시 각성시키는 게 돌아온 《리저렉션》의 큰 임무인 셈이다.

《리저렉션》에서 가장 흥미로운 설정이자 갸우뚱하게 되는 건 네오를 깨우는 과정에서 영화가 과거·추억을 다루는 부분이다. 《리저렉션》은 시치미 뚝 떼고, 《매트릭스》 트릴로지에서 다뤄진 이야기를 ‘게임 매트릭스’ 속 시나리오라고 설정한다. 이 게임으로 대박을 친 프로그래머는 우리의 주인공 토마스 앤더슨. 게다가 게임 제작사는 《매트릭스》 시리즈를 제작한 워너브러더스다. 이것은 현실인가, 꿈인가, 혹은 거대 농담인가.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영화 《매트릭스: 리저렉션》의 한 장면ⓒ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과 무엇이 달랐나

《리저렉션》은 워너브러더스가 토마스 앤더슨에게 네 번째 매트릭스 게임 개발을 요구하면서 본격 가동되는데, 게임 ‘매트릭스4’ 개발을 위해 모인 토마스의 동료들은 아이디어 회의에서 매트릭스 세계를 잘근잘근 품평한다. 누군가는 ‘매트릭스는 난해해야 제맛’이라고 말하고, 누군가는 ‘도대체 뭔 소리야?’라는 반응이 나와야 한다고 하며, 또 다른 누군가는 ‘매트릭스는 총싸움일 뿐’이라고 한다. 즉 《매트릭스》 트릴로지를 만든 연출자가, 게임 개발자들의 입을 빌려 《매트릭스》 시리즈를 논평하고 지지고 볶고 심지어 셀프 디스를 하며, 《매트릭스》 시리즈를 둘러싸고 나왔던 평단과 대중의 반응을 자신들도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을 명징하게 드러내는 동시에 ‘메타 비평’을 하는 셈이다.

이것은 일견 흥미롭다. 동시에 위험하다. 이 ‘가벼움을 가장한 풍자’ 혹은 ‘거침없는 자조적 유머’가 자칫 《매트릭스》에 대한 대중의 추억을 훼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중의 기억 속에 《매트릭스》는 가상과 현실, 진실과 거짓, 운명론과 자기 의지론 등이 팽팽하게 대립하는 논쟁적인 동시에 뜨겁고도 진중한 세계였다. 그런데 정작 영화를 만든 창작자 본인이 이를 낄낄거리며 풍자하는 모습은 뭐랄까, 시리즈의 팬으로서 다소 당황스럽다. 라나 워쇼스키는 시리즈를 사랑해온 팬들의 어떤 면을 파고들고자 한 것일까.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리저렉션》이 추억을 다루는 방법은 최근 극장가에서 사랑받고 있는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과 비교하면 더욱 자명하게 드러난다. 나는 《노 웨이 홈》이 정갈하게 잘 만든 영화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영화엔 ‘어떻게 하면 《스파이더맨》 시리즈를 사랑해온 팬들이 그들의 추억을 감싸안게 할 수 있을지 고민’한 흔적이 역력하다. 관객의 머리가 아닌, 가슴을 건드리는 일. 그것이 《노 웨이 홈》이 추억을 소환한 방법이고, 대중이 눈물을 훔치며 극장을 나오는 이유일 것이다. 그에 반해 《리저렉션》이 과거 세계관을 대하는 자세에선 팬들에 대한 이해가 쉽게 느껴지지 않는다.

물론 추억을 다루는 방식이 《리저렉션》의 온전한 단점은 아니다. 진짜 문제는 영화 자체가 재미없다는 것이다. SF영화 흐름을 일거에 바꿔놓았던 《매트릭스》의 전설적 여정을 생각하면, 《리저렉션》의 행보는 여러모로 ‘철 지난 유행가 가사’ 같은 면이 있다. 혁신적이라 평가받은 ‘불릿 타임(bullet time)’ 등을 대신할 신선한 액션은 거의 등장하지 않고, 기존 시리즈의 주제 의식을 뛰어넘을 만한 인식의 충격 역시 이번 편에는 없다. 토마스 앤더슨이 각성해야 하는 동기 또한 허약해서, 이야기 빌드업이 좀처럼 쫀쫀하게 이뤄지지 않는다.

과거보다 강화된 건, 사랑. 기억을 잃고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된 트리니티를 되찾으려는 네오의 ‘일편단심 민들레’ 같은 사랑이 작품의 큰 물줄기인데, 네오와 트리니티의 사랑이 영화가 품은 현학적 이야기와 스타일에 멋스럽게 복무했던 과거와 달리, 이번엔 모든 설정과 위기와 극복이 두 사람의 사랑을 위해 희생되는 감이 있어 허무하기도 하다.

라나 워쇼스키의 자신감은 대단하다. 《리저렉션》은 과거 팬들의 추억과도 싸우지만, 1~3편을 보지 않은 관객을 전혀 배려하지 않은 결과물인데, 처음 이 시리즈를 접하는 관객이라면 보는 내내 ‘당최 이게 무슨 소리인가’라는 물음표를 던질 구간이 너무 많다. 결과적으로 《리저렉션》은 새로운 팬 확보는커녕, 기존 《매트릭스》 팬들을 갈라놓는 시리즈가 됐다. 《리저렉션》의 부활(리저렉션)을 지지하지 못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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