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외교안보 제언] “우리는 협상하기 위해 무장한다”
  • 조경환 대통령 정책기획위원회 위원 (kwhan80cho@gmail.com)
  • 승인 2022.01.03 07:30
  • 호수 16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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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임벌린이 히틀러에게 유화책 내민 것은 군비 부족 때문
핵 가진 북한 앞에 재래식 무기 선제 군축하자는 사람들

대통령은 취임하는 순간 국제적 난제와 맞닥뜨린다. 제프리 삭스는 저서 《위대한 협상》에서 존 F 케네디를 군축 협상에 관심이 많은 동시에 강인한 냉전의 전사로 묘사했다. 1960년 9월 미국 시애틀 선거유세에서 “전쟁에 대비하고 있어야 평화를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은 불행한 사실입니다. 윈스턴 처칠은 1949년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협상하기 위해 무장합니다.’” 케네디의 신념이기도 했지만, 당시 미국 내 반공주의자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자세였다.

평화는 특정 진영의 소도가 될 수 없다. 포퓰리즘의 포장재가 되어서도 안 된다. “그렇다면 전쟁을 원하느냐?”는 이분법적 대결을 말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평화는 국민의 생명 안전과 직결된 현실이다. 1938년 네빌 체임벌린이 히틀러의 위세에 눌려 유화책을 낸 것을 두고 그의 의지박약만을 탓할 순 없다. 군비가 불충분했던 현실에 기인한다.

ⓒ연합뉴스
2015년 12월10일 경기도 연천군 한탄강에서 열린 한·미 연합 도하훈련에서 미2사단 M1A2 SEP 전차가 부교를 건너고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 한·미 연합훈련은 대폭 축소됐다. ⓒ연합뉴스

강한 군사력이 한반도 평화 좌초시키는 주범이라는 억지

70년 역사의 한국 외교안보는 ‘친미·동맹 중심의 국제공조파’와 ‘반미·친중의 민족공조파’의 단속적 대결의 장이다. ‘동맹파’의 크기만큼이나 거대한 민족 공조의 ‘평화파’가 형성됐다.

요즘 한국의 군사력이 세계 6위라는 것이 자랑거리다. 문재인 정부가 평화 프로세스에 치중하면서도 실질적으로는 국방력을 강화해 왔다는 것에 높은 점수를 준다. 보수정권 때 GDP 대비 2.2%이던 국방비가 2022년도에는 2.64%로 55.2조원이다. 그런데 ‘평화파’ 일각에서 이제 국방력이 충분하다 못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좌초시키는 주범”이라고 지목한다. 이 지점에서 문제는 발생한다.

최근 학술의 장에서 놀라운 발제를 접하곤 한다. 한·미 연합훈련과 군축협상에 관한 것이다. 하나는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유도하고 종전선언 여건 조성 차원에서도 “내년 3월 한·미 연합훈련을 연기 또는 취소하자”는 주장이다. 꽉 막힌 남북관계를 어떻게든 열어보자는 절박감의 발로이리라. 한발 더 나아가 한·미 연합훈련의 내용을 손봐야 한다는 논거는 여간 예사롭지 않다. ‘작계 5015’와 한·미 연합훈련을 지휘소 훈련(CCPT) 중심으로 유지하되 1부 방어와 2부 반격으로 돼있는 것을, 방어만 하고 반격은 없애자고 한다. 이래도 북한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작계 5015’의 2단계 연습은 자제돼야 한다고 권고한다. 연례 한·미 연합훈련을 북한이 겁내지 않는 수준으로 확 낮추자는 것이다. ‘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북한을 무력으로 점령하는 작계 연습은 사실상 무모하며, 미국도 북한 지역 무력 점령을 원하는 한국군의 계획에 연루되는 것을 거부할 것이라는 상황 논리를 댄다.

그렇지만, 돌이켜보면 한·미 군 당국은 이미 훈련이 비핵화 협상과 남북관계에 장애가 되지 않도록 신축적으로 진행해 오고 있다. ‘자위적, 방어적, 최소한’의 원칙을 지켜왔다. 김정은 위원장조차도 2018년 3월초 정의용·서훈 특사 면담 때나 3월말 폼페이오 CIA 부장에게 “용인한다”고 했던 그 훈련이다.

또 다른 관점은, 국방예산 중 ‘방위력개선비’의 70%가 재래식 전력증강에 들어가는 관성적 군사력 기조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발생한 남북 간 안보 딜레마를 고려해 군비경쟁 완화를 위한 환경을 조성하는 차원에서 북한과의 쌍무적 군축협상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선도적 감군’을 제기한다.

군축은 양쪽이 군비 목록을 다 드러내 놓고 비례적으로 줄여가는 것이 상례인데, 핵 능력을 가진 북한 앞에 우리의 재래식 무기를 먼저 없애가자고 하니 국민 눈높이에서 선뜻 납득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국방력 세계 6위는 근거가 분명치 않다. 우선, 이를 분석한 ‘글로벌파이어파워(GFP)’의 공신력이 의문스럽다. 전비 태세나 군수, 국력 등 데이터에 기반한 점은 대체로 인정할 만하다. 그러나 각국이 군사력 증강에 몰두하는 정도를 평가한 것이지, 맞붙었을 때 누가 이기느냐의 척도는 아니라고 한다. 학계에서는 학술적으로 인용해서는 안 되는 신뢰성 없는 자료라며 경계한다. 이보다 확실한 근거인 국방비 지출로 볼 때도 미국은 2020년 기준 7320억 달러로 전 세계의 38%를 차지한다. 2~11위 국가를 다 합친 것보다 많다. 2위다, 6위다가 무의미하다.

 

대화가 전쟁보다 늘 낫지만 힘에 바탕한 협상이어야

둘째, 북한의 핵미사일, 생화학전 능력과 같은 비대칭 전력은 수치로 평가하기가 불가능하다. 핵보유국인 미·영·프·중·러와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 그리고 이를 자칭하는 북한은 순서에 의미가 없다. GFP 스스로도 이 순위는 재래식 전력이라고 한다.

셋째, 우리 국방비 예산은 크게 ‘방위력 개선비’와 ‘전력운영비’로 나뉜다. 방위력 개선비는 31.3%다. 여기에는 핵, WMD 대응전력으로서 전략타격과 방어능력 향상 예산이 포함된다. 그런데 인건비와 장병 복지 등 전력운영비는 그 두 배가 넘는 68.6%다. 국방비 증가가 곧 방위력 증가로 연결되지 않을 수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전쟁 수행능력이다. 북한은 당 중앙군사위 위원장인 김정은이 최고사령관으로서 리더십의 정점이다. 여기에 전쟁을 최전방에서 수행하는 총참모부, 정치·정보·공작사령부인 정찰총국, 후방 병참을 담당하는 국방성이 일사불란한 총력전 체계를 갖추고 있다. 상대적으로 우리는 어떤가. 한국군, 주한미군, 한미연합군으로 체계가 복잡하다. 유사시 전투 의지도 미지수다.

단순 수치로 군비 태세를 재단하는 것은 안보담론의 건강성과 대북 협상력을 침식할 수 있다. 학자가 무슨 구상인들 펼치지 못하겠는가. 다만 이런 논의가 아직은 ‘학문의 자유’ 범주에 머물러 있기를 바란다. 대화는 전쟁보다 언제나 낫다. 그렇지만 힘에 바탕을 둔 협상이어야 상대를 설득할 수 있다는 게 케네디의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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