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권자를 움직이는 건 세금이다 [쓴소리 곧은 소리]
  • 안창남 강남대 세무학과 교수 (acnanp@naver.com)
  • 승인 2022.01.02 10:00
  • 호수 16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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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는 부가세 급증에 중산층 등 돌려 정치적 비극 맞아
노무현·문재인도 종부세 실패…세원은 넓고 세율은 낮아야

대선을 앞두고 후보들의 세금 관련 발언이 잦다. 증세냐 감세냐의 전통적인 세금 부담 논쟁이 이어지고 있고, 그 중심엔 부동산 세제가 있다. 세금은 본질적으로는 정치의 영역이다. 법률에 따라 세금을 걷도록 헌법에서 규정하고 있고(제59조), 이러한 법률의 개정 등 입법권은 국회를 비롯한 정치집단의 몫이기 때문이다(제40조). 그 정치집단의 정점에 대통령이 있으므로 유권자들이 ‘세금 답안지’를 어느 후보가 잘 작성했는지를 보고 투표권을 행사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2021년 12월20일 서울 송파구 공인중개사무소에 부동산 상담 관련 안내문이 붙어있다.ⓒ시사저널 박은숙

지역감정·이념논쟁 쇠퇴하고 생활밀착형 이슈 떠올라

이번 대선에서 망국적인 지역감정이나 이념논쟁의 영향력이 쇠퇴하고 세금과 같은 생활밀착형 이슈가 전면에 등장했다는 점에서 한국 정치도 선진국형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본다. 사실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의 주된 선거 이슈는 세금이다. 2016년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의 부자 감세와 힐러리 클린턴의 부자 증세가 정면으로 충돌했다. 2020년 대선에서는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가 트럼프 행정부 시절의 부자 감세 폐지안을 전면에 내세워 승기를 잡았다. 물론 모든 나라에서 세금이 대선의 핵심 이슈로 부각되진 않는다. 세금보다 더 화급한 현안이 많은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재임 기간 중 세금을 잘못 다뤄서 곤욕을 치른 나라는 한둘이 아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1980년대 사회당 정부가 도입한 부유세(ISF·동산과 부동산에 과세)를 외국자본을 끌어들일 목적으로 2018년 부동산자산세(IFI·부동산에만 과세)로 개정했다가 ‘부자들의 대통령’이라고 비판하는 노란 조끼를 입은 서민들의 항의 시위에 부닥쳤다. 그 바람에 집권 초기 60%대였던 국정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했고, 우리나라와 비슷한 시기에 치러질 대선에서 당선을 확신하지 못할 지경에 몰려 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박정희 정부는 지하경제를 양성화해 국가 경제 발전의 재원을 마련할 요량으로 1976년 종합소득세와 1977년 부가가치세를 잇달아 도입했다. 그러나 급격한 세 부담의 증가로 견고한 지지층이었던 자영업자들이 등을 돌렸으며, 이것이 부마항쟁과 10·26 사태로 이어지는 단초를 제공했다고 한다. 부동산 투기를 근절하겠다며 종합부동산세제를 도입한 노무현 정부는 만만치 않은 세금 저항에 시달렸고, 문재인 정부도 여기에서 자유롭다고 볼 수 없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할까? 세금은 수학이나 과학처럼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라 상황마다 다르게 적용되는 태생적 한계를 갖고 있고, 아무리 이론적으로 훌륭한 체계라도 사회 및 국민 의식 수준이 뒷받침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흔히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어야 한다’고들 하지만, 막상 당사자가 되어 세금을 내라고 하면 볼멘소리를 하는 게 인지상정이다.

세금을 많이 낼수록 복지 수준이 높아지리란 점은 인식하지만, 납세자 자신이 아직 높은 수준의 복지를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증세에 부담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북유럽은 높은 수준의 복지를 위해 많은 세금을 내고 있다. 자기들 눈앞에서 선대들의 경험을 지켜봤기에 가능한 일이다. 결국 세금정책은 재정건전성을 충족하고 세금 부담의 예측 가능성이 높아야 하며,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구조를 지녀야 한다.

이런 점에서 보면 세금정책의 수립과 변경은 매우 신중해야 한다. 문제가 있다고 해서 없애버리자는 주장은 초등학생 수준의 대처에 불과하다. 종합부동산세를 걷어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방자치단체 지원에 사용하는 현실에서 이를 없애자고 주장하려면 그 대체 재원은 어떻게 마련할지도 함께 제시해야 한다. 우리나라 납세자 수준이 결코 낮지 않다.

툭하면 세법을 고쳐서 일을 해결하려는 법률만능주의에 매몰돼서도 안 된다. 세금 부담의 예측 가능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2019년에 아파트를 구입했는데 2022년에 양도소득세율과 종합부동산세율을 인상하는 세법 개정이 있다고 하자. 납세자는 2019년에 아파트를 구입하면서 얼마 정도 세금을 부담할지를 예측했을 텐데 개정세법에 따라 세금을 더 내야 한다면 이는 날벼락을 맞은 꼴이리라.

 

현대는 세금국가…합리적·논리적이어야 성공

또한 세금정책은 합리적이고 상식적이어야 한다. 도시화와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고향에 집을 두고 수도권으로 이주한 납세자가 부지기수다. 조정지역 내에 20억원 상당의 아파트와 은퇴 후 돌아갈 시골에 1억원 상당의 주택이 있는 경우, 아파트의 종부세는 150만원이지만 시골 주택 때문에 2000만원으로 13배 이상 증가한다. 시골 집값의 20%를 매년 세금으로 내고, 5년 뒤에는 그 집을 국가에 홀랑 수용당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주택에 대한 종합부동산세 최고세율은 6%다(종부세법 제9조). 16년 뒤에는 그 아파트마저 국가가 가져가게 되는 계산이 나온다. 이런 상황을 어느 납세자가 납득할 수 있을까. ‘종부세 납세자가 국민의 2%에 불과하므로 괜찮은 세금’이라는 식의 논리는 비합리적이고 편가르기식 사고에 불과하다. 이 중에는 깨끗한 부자도 많다. 그들이 내는 세금의 총액은 전체 세입의 20%를 족히 넘는다.

국가는 국민 세금에 의해 운영된다. 세금은 국가 운영의 핵심 기반이며 시민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현대사회를 세금국가라고 칭하는 것도 지나치지 않다.

결코 단순하지 않다. 복합적이고 중층적인 사고가 요구된다. 국가재정의 건전성 유지를 위해 정부 지출을 감당할 정도로 걷되, 공평과세 원칙을 준수하며 국민 모두 세금을 형편에 따라 부담하는 국민개세주의 원칙에 입각해 세원은 넓게 하고 낮은 세율을 적용하는 것이 세금의 정석이다. 그렇게 하면 세금 저항은 자연스레 줄어든다. 유권자들은 대선후보들이 이런 세금 원칙에 맞는 언행을 하는지와 이를 임기 내내 지킬 능력이 있는지를 지켜보고 있다.

안창남 강남대 세무학과 교수
안창남 강남대 세무학과 교수

※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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