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하느니 《솔로지옥》 본다?
  • 정덕현 문화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1.29 16:00
  • 호수 16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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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플 매칭 프로그램, 예능 트렌드로 급부상
현실과 판타지 사이는?

한동안 고개를 숙이고 있던 커플 매칭 프로그램들이 최근 들어 예능의 트렌드로 급부상하고 있다. 혹자들은 현실 연애의 피로를 토로하며 차라리 커플 매칭 프로그램에 과몰입한다고 한다. 그런데 최근 도래한 커플 매칭 프로그램 전성시대는 무얼 말해 주는 걸까. 

국내인지 해외인지 잘 구분이 되지 않는 ‘지옥도’라 불리는 무인도에서 일단의 남녀 출연자가 하나둘 걸어 나와 인사를 나눈다. 이들은 이제 이곳에서 8박 9일간 함께 지내며 서로의 짝을 찾는 과정을 겪게 된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솔로지옥》이 시작부터 보여주는 지옥도의 풍광과 그곳을 찾아온 남녀 출연자들은 이국적인 느낌을 준다. 

ⓒ넷플릭스 제공

《솔로지옥》이라는 판타지 

물론 그곳은 한국이다. 인천 사승봉도. 예능을 좋아하는 시청자들이라면 그곳이 익숙할 게다. MBC 《무한도전》 등에서 단골로 등장하던 무인도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이 지옥도는 생소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야생의 공간이 아니라 《솔로지옥》 제작진이 지옥도라는 가상의 이름을 부여하고 꾸며 놓은 곳이기 때문이다. 지옥도라고는 하지만 남녀가 나뉘어 지낼 숙소가 글램핑장처럼 꾸며져 있고, 함께 요리를 해 먹을 수 있는 식당 공간이 마련돼 있으며, 아름다운 바다 풍광을 품은 곳곳의 ‘뷰 포인트’에는 남녀 출연자들이 짧은 데이트를 할 수 있는 공간이 꾸며져 있다. 현실공간이지만 그곳은 지옥도라는 가상이 겹쳐져 있다. ‘세상에서 가장 핫한’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지옥도이기 때문에 코로나19로 인해 어디론가 떠나지 못하고 TV로나마 여행을 대리충족하곤 하는 우리들에게는 그것마저 로망의 공간으로 다가온다. 바깥세계와 단절된 무인도라는 공간은 오히려 안전하게 자연을 자유롭게 만끽할 수 있는 곳으로 여겨져서다. 

그런데 그곳을 지옥도로 지칭한 건, 정반대의 ‘천국도’를 상정해서다. 지옥도에서 미션 수행과 선택을 통해 커플이 되면 떠날 수 있는 곳, 천국도. 그곳에는 모든 서비스와 음식이 제공되는 으리으리한 리조트가 마련돼 있다. 하지만 이곳을 천국으로 부르는 건 그런 럭셔리한 공간 때문만이 아니다. 1일 커플이 돼 나누는 데이트가 이곳을 진짜 천국으로 만든다. 반면 자신이 좋아하는 이성이 다른 사람과 함께 떠나 데이트를 나누는 걸 바라보기만 해야 하는 이들에게 그곳은 지옥이 된다. 천국도와 지옥도는 공간으로 나뉘어 있지만, 그것은 또한 연애의 연결과 단절이라는 서로 다른 감정으로 구획돼 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이 공간에 그다지 국적성의 장벽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국인지 외국인지 알 수 없을 만큼 가상화돼 있고, 나아가 출연자들조차 한국인들이 분명하지만 피지컬이나 스타일 면에서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 막 튀어나온 인물들처럼 보인다. 즉 이 《솔로지옥》이라는 커플 매칭 프로그램이 보여주는 건 현실이 아닌 판타지다. 비현실적인 공간에 비현실적인 인물들이 등장해 서로서로 마음을 나누고 다가가고 상처 입고 또 사랑을 확인하는 그 일련의 과정들을 마치 게임처럼 겪어보는 것. 더할 나위 없이 짜릿하면서도 현실과의 충분한 거리감 때문에 참으로 안전하게 다가오는 판타지가 바로 《솔로지옥》이다. 

《솔로지옥》은 놀랍게도 공개 후 넷플릭스 글로벌 순위 톱5에 랭크되는 인기를 얻었다. K드라마, K무비가 넷플릭스를 통해 글로벌한 인기를 끄는 건 이제 일상적인 일이 됐지만, K예능이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던 현실을 두고 보면 놀라운 결과가 아닐 수 없었다. 예능 프로그램은 국가와 문화별로 웃음과 재미의 코드나 정서가 달라 생기는 진입장벽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 인기 있는 스탠드업 코미디가 넷플릭스에는 하나의 장르로 구분될 정도로 많지만 이를 즐기는 우리 대중은 상대적으로 적다. 그러니 《솔로지옥》의 글로벌 성과는 K예능 제작자들에게는 중요한 사건일 수 있다. 

물론 이런 국가 간 문화적이고 정서적 편차들 속에서도 그나마 글로벌 공감대가 가능한 장르가 남녀 간 만남과 연애를 소재로 삼는 리얼리티쇼였다. 《투핫》 같은 서구의 리얼리티쇼는 한국에서도 나름의 인기를 구가한 예능 프로그램이었다. 물론 《투핫》은 우리네 커플 매칭 프로그램들과는 사뭇 궤가 다르다. 《투핫》은 훨씬 더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남녀 간 스킨십을 좀 더 전면에 내세운다. 반면 우리가 그간 해왔던 커플 매칭 프로그램들은 대부분 남녀 간 연애 심리에 더 집중했다.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예능 《솔로지옥》의 한 장면ⓒ넷플릭스 제공

무국적성이 가능하게 한 글로벌 인기 

그런데 흥미로운 건 《솔로지옥》이 방영 전부터 ‘한국판 《투핫》’이라는 얘기가 돌았다는 점이다. 그것은 예고 섬네일만 봐도 단박에 느껴지는 부분이다. 비키니와 수영복 차림의 남녀가 잘 다듬어진 몸을 드러내며 섹스어필 하는 장면이 예고로 세워져 있어서다. 실제로 제작진은 《솔로지옥》에 섹스어필 하는 부분을 염두에 두고 출연자를 구성한 면이 있었다. 그것은 인물군 중 상당수를 헬스 트레이너나 필라테스 강사, 모델로 구성한 부분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남녀 출연자들의 몸을 노출하는 장면이나 미션들이 이 프로그램에 들어가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솔로지옥》이 《투핫》과 같은 수위의 자극을 추구하지는 않는다. 일정 부분 섹스어필이 들어가지만 그러면서도 우리네 커플 매칭 프로그램들이 갖는 디테일하고 섬세한 연애 심리에 더 천착한다. 그래서 마치 동서양의 리얼리티쇼를 적절히 섞어 놓은 듯한 수위를 보여준다. 공간이나 인물이 가진 국적이 바로 느껴지지 않는 면면들은 《솔로지옥》이 넷플릭스라는 글로벌 플랫폼과 만나면서 만들어낸 ‘중간지대’로서 글로벌 대중의 진입장벽을 낮춘 면이 있다. 물론 호불호는 갈릴 수 있다. 우리에게는 강하게 느껴지는 판타지가 서구인들에게는 너무 약한 자극으로 다가갈 수 있어서다. 하지만 어쨌든 적절한 선을 끌어내고 현실과 거리를 두는 판타지를 추구함으로써 《솔로지옥》은 성공적인 시리즈가 될 수 있었다. 

사실 우리네 예능사에서 커플 매칭 프로그램의 계보는 꽤 길다. MBC 《사랑의 스튜디오》(1994)와 같이 일반인들이 스튜디오에 나와 ‘사랑의 짝대기’를 잇는 과정을 담던 커플 매칭 프로그램은, 연예인들이 출연하는 MBC 《강호동의 천생연분》(2002) 같은 버라이어티쇼화된 형식을 거쳐, MBC 《우리 결혼했어요》(2008)의 가상 설정으로 이어진 바 있다. 그러다 SBS 《짝》(2011)이 등장하면서 서구의 리얼리티쇼를 우리 식으로 변환한 커플 매칭 프로그램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짝》은 남자1호, 여자1호 등으로 지칭되는 일반인 출연자들이 실제 현실 연애를 담으며 매회 뜨거운 화제를 불러일으켰지만 안타깝게도 2014년 출연 여성의 자살 사건이 벌어지면서 폐지됐다. 일본의 유명 커플 매칭 프로그램인 《테라스 하우스》 역시 2020년 5월 출연자 중 한 명이었던 기무라 하나가 악플에 시달리다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만큼 리얼리티쇼가 가진 자극이 일반인 출연자들에게 얼마나 큰 심적 부담으로 다가오는가를 잘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TVING 《환승연애》의 한 장면ⓒTVING 제공

결국 이렇게 《짝》이 폐지되면서 주춤했던 커플 매칭 프로그램은 2017년 채널A 《하트시그널》의 등장으로 화려하게 부활한다. 그런데 이 커플 매칭 프로그램은 《짝》과는 달리 현실보다는 판타지에 방점을 찍어 마치 한 편의 리얼 멜로드라마를 보는 듯한 과몰입을 만들었다. 이후 커플들이 등장하는 리얼리티쇼는 종편 채널을 타고 좀 더 과감해진다. TV조선이 《아내의 맛》 《우리 이혼했어요》 같은 리얼리티쇼를 선보이고, MBN은 돌싱들의 커플 매칭을 보여주는 《돌싱글즈》를 방영하고, 《짝》을 연출했던 남규홍 PD는 SBS플러스에서 《나는 SOLO》로 현재 버전의 《짝》을 부활시킨다. 여기에 OTT들 또한 가세해 티빙은 오리지널 프로그램으로 헤어진 연인들이 한 공간에 모여 새로운 사랑을 찾아가는 《환승연애》로 작년 최고의 성적을 냈고, 넷플릭스 역시 《솔로지옥》으로 글로벌 인기를 끌었다. 이제 커플 매칭 프로그램들은 현실 혹은 판타지 두 개의 경향으로 나뉘는 양상을 띠고 있다. 즉 《나는 SOLO》가 대표적인 현실 버전이라면 《솔로지옥》은 판타지 버전이다. 

SBS Plus 《나는 솔로》의 한 장면ⓒSBS Plus 제공

위험한 심리게임, 과연 안전장치는 있나 

하지만 달달해 보이는 판타지 버전이든, 아니면 깊은 상처를 남기는 현실 버전이든 출연자들에게는 엄청난 심적 부담을 주는 게 사실이다. 최근 《나는 SOLO》에서 남성 출연자의 강압적인 태도로 방송이 끝난 후에도 벌어진 논란은 여전히 지금도 《짝》의 비극이 과거사로만 남는 일은 아니라는 걸 말해 준다. 이런 문제의 출연자를 제작진이 ‘리얼’을 강조해 제지하지 않은 채 방치하고, 또 그 장면들을 편집하지 않고 방영함으로써 여성 출연자는 심리적 고통을 호소했고 남성 출연자는 방송 후에도 대중의 지속적인 질타를 받았다. 

이러한 출연자들이 짊어져야 하는 유명세는 판타지 버전인 《솔로지옥》에서도 똑같이 벌어진다. 이 프로그램으로 연예인급 주목을 받은 뷰티 유튜버 송지아는 여러 예능 프로그램의 러브콜을 받아 출연하기도 했지만, ‘짝퉁 명품’을 착용한 사실 때문에 논란에 휘말렸다. 결국 공식 사과했지만 주목받는 만큼의 심리적 부담감도 늘어나게 됐다. 

그런데 커플 매칭 프로그램 전성시대가 진짜 말해 주는 건 일반인들이 출연하는 리얼리티쇼의 시대가 우리에게도 활짝 열렸다는 사실이다. 커플 매칭 프로그램은 현실이든 판타지든 자극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더 큰 자극으로 나아갈 가능성이 높다. 즉 《솔로지옥》처럼 이제 섹스어필까지 더한 연애 매칭 프로그램들은 그 성공에 힘입어 점점 더 과감해지게 될 거라는 점이다. 지상파 개념에서야 이를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지 몰라도, OTT로까지 확장된 플랫폼 속에서 통제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심지어 자살 충동까지 일으키는 이 위험한 심리게임 속에서 일반인 출연자들이 겪을 부담은 갈수록 커질 수밖에 없다. 또 사전 검증되기 어려운 일반인 출연자들의 인성 문제 또한 방송에는 위험요소가 될 수 있다. 

당연하지만 연애 매칭 프로그램들이 잘되는 건 현실의 연애가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걸 방증한다. 현실적인 문제들로 인해 연애도 결혼도 사실상 피로해진 N포세대들은 그래서 차라리 《솔로지옥》이 주는 잠깐의 판타지에 빠져든다. 하지만 그 판타지 속 일반인 출연자들은 어떨까. 과연 달달한 해피엔딩만 있을까. 아닐 게다. 심지어 해피엔딩이라고 해도 사적인 연애가 방송으로 소비되고 노출됨으로써 지게 될 부담 역시 결코 작지 않기 때문이다. 일반인의 사생활을 들여다보는 판도라의 상자는 이미 열렸다. 이제 걸맞은 안전장치들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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