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웅의 팬들은 어떻게 팬덤 문화를 바꿨나
  • 정재학 뉴스장터 대표 크리에이터(전 국민일보 부국장)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1.31 10:00
  • 호수 16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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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시대 덕질이 만들어낸 기적

1월20일 KBS2가 《주접이 풍년》이란 예능을 처음 방송했다. 팬심 자랑대회다. 팬들의 활동과 덕질을 소재로 한 첫 예능 프로그램이다. 첫 방송은 송가인이었다. 27일 2회 방송에는 임영웅 팬들이 나온다. 이처럼 팬들의 움직임도 새로운 문화로 정착하고 있다. 요즘 팬덤은 옛날 나훈아, 남진, 조용필의 ‘오빠부대’와는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오빠부대는 단순히 내 가수들에 대한 응원에 그쳤다면, 요즘 팬덤은 사회적으로 순기능적 역할까지 훌륭하게 수행하고 있다. 그 대표적 예가 임영웅의 팬덤인 ‘영웅시대’다.

‘지금은 영웅시대다’라는 말이 있다. 영웅시대는 임영웅 팬클럽을 통칭하는 말이다. 많은 분이 “영웅시대” “우리는 영웅시대”라고 말하고 있지만 영웅시대 팬클럽 회원들마저도 영웅시대를 제대로 설명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영웅시대는 어떻게 구성됐으며, 어떤 성격을 갖고, 어떻게 활동하는지 살펴보도록 하겠다.

ⓒ멜론 뮤직 어워드 제공

각종 시상식 휩쓴 임영웅의 숨은 힘은 ‘팬덤’

지난해 10월11일 KBS 주말드라마 《신사와 아가씨》의 임영웅 OST 《사랑은 늘 도망가》가 각종 음원사이트에서 발매됐다. 발매 당일 국내 최대 음원사이트 멜론 실시간 차트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 밖에 지니, 벅스 등 다른 음원사이트에서도 1위와 상위권을 장악했다. 음원을 발표한 가수로서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기적 같은 일이다. 영웅시대 덕질이 만들어낸 기적이다. 이런 ‘내 가수 응원’은 아이돌 팬덤과 다를 바 없다. 다만 아이돌 팬덤은 10대, 20대 중심으로 총공에 나선다면, 영웅시대는 50대 이상 중장년층 회원들이 과거에는 불가능했던 온라인 작업을 해내고 있다. 영웅시대의 이 같은 덕질로 임영웅은 TMA(더팩트뮤직어워즈), AAA(아시아아티스트어워즈), MMA(멜론뮤직어워즈), 하이원 서울가요대상 등 각종 음악 관련 시상식에서 4관왕, 2관왕을 차지했다. 이게 영웅시대의 힘, 화력이다.

지난해 11월24일 강원도 강릉시 김아무개씨(68·닉네임 법안행님)는 임영웅 찐팬 3명과 함께 1박2일 전남 강진군 마량면 여행을 했다. 이들은 오래전부터 아는 사이가 아니다. 모두 여행 전날 만났다. 임영웅이 커버한 《마량에 가고 싶다》란 노래가 큰 인기를 얻자 마량면이 임영웅의 성지가 됐다. 법안행님이 한 차로 함께 마량을 여행하기 위해 한 유튜브채널에 요청해 동반자를 구했다. 전북 익산, 충북 청주, 서울 등 전국에서 8명이 함께 가겠다고 연락해 왔다. 이 중 강릉에 사는 3명을 선정해 전날 하루 점심을 먹고 1박2일 여행을 떠난 것이다. 임영웅 팬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법안행님은 “처음 만났는데 왠지 모르게 포근하게 느껴졌다. 20년을 만난 친구처럼 금세 언니, 동생 하며 친해졌다. 임영웅을 좋아하고 응원하는 공동점이 있을 뿐이다. 우리도 신기하게 생각한다. 임영웅 찐팬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고 말했다. 맞다. 임영웅 찐팬들은 하나다. 그리고 ‘우리’다. 아니 가족인 것 같다. 이게 영웅시대의 특징 중 특징이다. 영웅시대 울타리 안에 있는 찐팬들은 하나고 우리고, 가족이다. 그래서 영웅시대는 그동안의 팬덤 문화와 전혀 다른, 새로운 팬덤 문화를 만들고 있다고 말한다.

이처럼 영웅시대는 단순한 팬덤을 뛰어넘는 거대한 공동체다. 커뮤니티다. 공동체 안에서 함께 응원하고, 즐거워하며, 행복해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힘을 모아 봉사하고, 기부하면서 사회를 포근하게, 그리고 아름답게 만들어가고 있다. 그러면서 회원임을 자랑스러워 하고, 보람된 활동에 큰 자부심을 갖는다.

영웅시대는 자발적이다. 그리고 조직적이고 열정적이며, 희생적이다. 여느 팬덤과 마찬가지로 자발적인 참여를 한다. 내 가수를 응원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공동체에 참여하고, 스스로 활동한다. 그러면서 조직적이다. 각종 온라인 인기투표 등 목표가 생기면 조직적으로 움직인다. 회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총공에 참여한다. 하지만 이런 조직적 활동에는 물리적인 동원 등은 전혀 없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특징이다.

또 열정적이기도 하다. 온라인 인기투표를 위한 ‘하트’ 등을 모아야 할 때 밤새워 하트를 모아 투표를 한다. 그것도 한 번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투표 기간 내내 이런 활동을 반복한다. 각종 기부와 봉사활동에는 희생적이다. 지난 2020년 8월 수재의연금 8억9668만원을 모아 ‘NGO 희망을 파는 사람들’에 기부했다. 11일 만에 1만5922명이 참여해 모금을 한 것이다. 당시 이런 영웅시대의 선한 영향력에 깜짝 놀랐다. “영웅시대는 역시 다르구나”라는 이구동성이었다.

트로트 가수 임영웅 팬카페 ‘영웅시대 with Hero 대전·세종’은 2021년 6월1일 한부 모가정 어린이를 위한 장학금 616만원과 선풍기 30대를 대덕구에 기탁했다.ⓒ대덕구 제공

단순 팬덤 뛰어넘은 거대한 공동체

임영웅 전문 유튜브 59TV 류호진 대표는 “영웅시대 팬들은 임영웅 가수를 닮아 봉사하고, 기부하고, 따라서 선한 영향력이 확산되는 것에 대해 자부심이 크다. 그 가수에 그 팬이라는 평가다”고 말했다. 또 이렇게 말을 이었다. “이런 ‘내 가수 덕질’이 활력 있는 삶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다들 젊어졌다, 활력 있게 산다, 얼굴이 피었다 이런 말을 듣는다며 행복해한다.”

그렇다면 영웅시대는 어떻게 구성됐으며, 회원 규모는 어느 정도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다음 에피소드가 대신해 주고 있다. 1월8일 임영웅은 제36회 골든디스크상에서 베스트 솔로 아티스트상을 받고, 수감 소감을 여느 시상식에서처럼 이렇게 말했다. “좋은 상을 받을 수 있게 해주신 영웅시대 가족들에게 감사드린다.”

이런 소감이 나가자 한 임영웅 찐팬 조아무개씨(73)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항의성 댓글을 썼다. “왜 우리들에게는 감사 인사를 하지 않느냐”는 항의였다. 조씨는 온라인에 익숙하지 않아 영웅시대 공식팬카페나 다른 영웅시대 방 등에서 활동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영웅시대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는 찐팬들에게 인사를 해야 하지 않느냐는 지적이다

영웅시대는 임영웅 공식팬카페와 각종 영웅시대 모임에 가입해 활동하는 찐팬과 여기에 가입하지 못했거나, 가입하지 않는 찐팬 모두를 통틀어 영웅시대라 부른다. 따라서 임영웅이 “영웅시대 가족”이라고 감사 인사를 한 것은 임영웅 팬 모두를 향한 인사로 봐야 한다. 이처럼 영웅시대 회원 규모에 대해서는 현시점에서 정확히 말하기 어렵다. 회원에 가입하지 않고 활동하는 분들은 계량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영웅시대의 핵심은 임영웅 공식팬카페(카페지기 신정훈, 물고기뮤직 대표)다. 회원 수가 1월21일 현재 16만8000여 명이다. 임영웅이 유명해지기 전부터 팬카페가 운영돼 왔다. 모든 영웅시대 활동의 방향은 이 공식팬카페를 통해 전달된다. 팬카페에서 분화된 영웅시대 위드 히어로(With Hero)가 가장 큰 영웅시대 조직이다. 전국 조직이다. 서울·경기, 광주·전남, 전북 등 9개 팀을 갖고 있다. 그 밑에 지역별로 ‘방’을 운영하고 있다. 이처럼 분화한 것은 효율적인 운영을 위해서다. 스터디방을 운영하고, 각종 봉사, 기부활동을 보다 긴밀하게 하기 위해 팬카페와 함께 위드 히어로 활동을 하고 있다. 위드 히어로 회원은 4000~5000명 정도다. 이 밖에 봉사활동을 위한 영웅시대 서포터즈, 히어로사랑, 히어로온, 영웅시대 밴드 등 전국에서 수백 개의 소규모 영웅시대가 활동하고 있다.

ⓒ멜론 뮤직 어워드 제공

비조직 팬까지 합하면 300만 명 추정

영웅시대의 규모는 이처럼 조직적으로 활동하는 팬들과 비조직 팬들을 합해 최소 200만에서 300만 명 정도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왜냐하면 《미스터트롯》 결승전 실시간 문자투표 당시 임영웅에게 투표한 팬은 전체 투표자 773만 명(유효표 542만 명) 중 25%인 200여만 명 정도다. 2년 전의 팬 숫자다. 이후 《사랑의 콜센타》 《뽕숭아학당》 등 활발한 방송활동과 지난 연말 KBS 단독쇼 등으로 팬이 젊은 층으로 확산돼 엄청 늘었다는 게 연예계의 일반적 평가다. 따라서 이런 증가세를 포함한다면 영웅시대의 팬은 줄잡아 300만 명 정도일 것으로 보고 있다.

영웅시대 위드 히어로 전북팀 임아무개 팀장(58·닉네임 소나기)은 “영웅시대의 핵심은 팬카페다. 위드 히어로는 내 가수 덕질을 보다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만들어진 모임이다. 코로나도 원인 중 하나다. 하지만 이런 모임에 가입하지 않고 활동하시는 분들까지 포함한다면 영웅시대 규모는 엄청나다”고 말했다

미국 오렌지카운티에 사는 유니스킴(56·어바인)도 영웅시대다. ‘오씨 영웅시대’ 방장이기도 하다. 12명이 활동하고 있으나 이 지역에도 임영웅 찐팬이 500명 이상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코로나19 때문에 오프라인 모임이 없어 정확히 파악할 수는 없지만 한 달에 한 번씩 하는 모임에 파란 스카프와 유니폼을 입고 나가면 “영웅시대냐. 나도 임영웅 찐팬이다”고 반갑게 인사하는 팬이 많다고 말했다.

유니스킴은 “회원들을 만나면 바로 가족 같은 느낌이 든다. 타국 생활의 외로움을 달랠 수 있는 임영웅의 덕질에 대해 이야기하고, 선한 영향력에 대해 얘기하다 보면 타국의 외로움을 말끔히 씻을 수 있다. 앞으로 코로나가 줄어들면 더 많은 회원을 모시려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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