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양원가 공개, 집값 잡을 묘수 될까
  • 길해성 시사저널e. 기자 (gil@sisajournal-e.com)
  • 승인 2022.01.30 10:00
  • 호수 16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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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이재명 잇단 분양원가 공개 행렬…공급 위축에 집값 자극 우려도

‘분양원가 공개’가 집값 안정화의 묘수로 떠오른 모양새다. 서울시는 최근 서울도시주택공사(SH)가 공급한 공공아파트의 분양원가를 잇따라 공개했다. 이를 기준으로 민간아파트 분양원가를 추정해 가격 거품을 빼겠다는 의도다. 장기적으로는 집값 안정화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서울시와 SH는 1월17일 강남 3구에 속한 ‘송파 오금지구 1·2단지’와 서울 마지막 보금자리로 관심을 받는 ‘구로 항동지구 2·3단지’의 아파트 분양원가를 공개했다. 오금 1·2단지(2016~2017년 분양) 분양원가는 3.3㎡당 1074만~1076만원 선이다. 당시 분양가는 1604만~1680만원에 형성됐다. 분양 수익률은 32.9~36.1%에 달한다. 항동지구 2단지와 3단지도 20% 안팎의 수익률을 낸 것으로 집계됐다. 분양 수익은 임대주택 건설사업이나 수선 유지비에 사용됐다.

ⓒ연합뉴스
2021년 12월23일 서울 종로구 경실련에서 조대원 SH 건설사업본부장 직무대행(왼쪽)이 김성달 경실련 정책국 장에게 분양원가 상세내역 자료를 전달한 뒤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연합뉴스

시민단체들도 원가 공개 결정 환영

서울시와 SH가 분양원가를 공개하는 건 지난해 12월 강동구 고덕강일 4단지에 이어 두 번째다. 앞서 서울시와 SH는 최근 10년간 주요 사업지구 34개 단지의 분양원가를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앞으로 서초구 내곡지구, 강남구 세곡2지구, 강서구 마곡지구 내 공공아파트 등도 공개될 예정이다.

분양원가 공개는 오세훈 서울시장의 핵심 공약이자 김헌동 SH 신임 사장이 취임 전부터 강조해온 내용이다. 두 사람은 공공아파트 분양원가 공개가 궁극적으로 집값 안정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민간 건설사들이 턱없이 높은 분양가를 책정하지 못하도록 견제할 수 있고 덩달아 민간도 원가를 공개하라는 압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판단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등 시민단체 역시 분양원가 공개 결정에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경실련 관계자는 “분양원가 공개는 소비자들이 집값 거품을 검증하는 근거가 돼 저렴한 가격에 주택이 공급되는 데 큰 영향을 줄 수 있다”며 “가격 거품을 제거한 저렴하고 질 좋은 아파트가 계속 공급되면 오를 대로 오른 집값이 떨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문가들 역시 분양원가 공개를 두고 투명한 정보 공개 차원에서 바람직하다고 보고 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제시된 원가가 ‘공공부문에서조차 과도한 이익’을 얻는 수준이라면 이후로는 더 낮출 수 있는 근거 자료가 된다”며 “당초 목표한 주택 품질을 획득하는 데 얼마만큼의 원가가 필요한 것인지에 대한 자료가 공공으로부터 제시된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최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분양원가 공개 민간 확대’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1월9일 본인 SNS에 다섯 번째 ‘무한책임 부동산 공약’을 통해 “분양가 상한제를 민간에도 도입하고, 분양원가 공개를 확대해 분양가 인하를 유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업계와 전문가들 사이에선 공공아파트 분양원가 공개가 집값 안정화로 이어지기엔 무리가 있다는 시선이 적지 않다. 공공과 민간 아파트를 동일선상에 두고 비교하기 쉽지 않아서다. 공공과 민간은 택지비와 건설원가에서 큰 차이를 나타낸다. 공공아파트의 경우 입지가 상대적으로 불리한 곳에 공급될 확률이 낮고, 민간에 비해 땅을 확보하는 데 드는 비용이 적은 편이다. 자재부터 옵션, 실내구조 등도 차이가 크다. 공공아파트 분양원가 기준을 민간과 비교하기 어려운 이유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공공아파트 분양원가 공개가 하나의 주거 기준이나 자료로 쓰일 수 있지만 민간아파트 분양가와 비교해 건설사가 폭리를 취한다는 식으로 논리를 단순화하는 것도 지양해야 한다”며 “예를 들어 민간이 고급 단지를 지향하면서 실내수영장 등 대형 커뮤니티 시설을 넣을 경우 분양가 산정에 반영되는 건축비에 포함되기 때문에 분양원가도 오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공공의 경우 경영비용이나 운영비 등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는 점도 민간과 다른 부분이다”고 덧붙였다.

과거 참여정부 시절에도 집값 안정화를 위해 공공아파트에 분양원가 공개를 도입했지만 큰 효과를 거두진 못했다. KB국민은행 월간주택가격동향 시계열 자료를 살펴보면 분양원가 공개가 도입된 2007년 서울 아파트값은 1.77% 상승률을 나타냈다. 직전연도 상승률이 22.97%라는 점을 감안하면 오름세가 사실상 멈춘 것이다. 오 시장과 김 사장은 이를 두고 분양원가 공개 효과가 있었다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당시 서울 아파트값이 주춤했던 데는 연이어 발표된 정부의 강력한 부동산 대책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쳤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2007년엔 대출 규제가 강화되고 세금 부담 증가, 금리 인상, 2기 신도시 등 공급 물량 확대 방침 등으로 매수세가 크게 꺾인 시기였다. 2008년엔 강북권 아파트를 중심으로 다시 아파트값이 올랐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기 전인 8월까지 서울 아파트값 상승률은 5.6%를 나타냈다.

ⓒ시사저널 박은숙
2018년 12월19일 여의도 국회에서 진행된 ‘아파트 분양 원가 공개 토론회’에서 이재명 경기지사가 발언하고 있다.ⓒ시사저널 박은숙

전문가들 ”민간 확대 땐 득보다 실 많아”

분양원가 공개 민간 확대도 신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건설사의 분양원가 공개가 다른 업종과의 형평성 문제나 공급 감소 등 부작용을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복 규제 우려도 존재한다. 이미 ‘분양가 상한제’나 ‘고분양가 심사 규제’로 분양가를 통제하는데 원가 공개까지 더해지면 가격을 내리라는 이중 압박과 다름없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명지대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만약 카페에서 커피 원가를 공개하면 사람들이 비싼 돈을 주고 커피를 사먹을 수 있겠나”라며 “분양원가 공개 제도가 단기적으로 집값을 안정화시킬 수는 있지만 영업기밀 사항인 원가를 공개하는 것은 건설사엔 큰 부담이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건설사들이 공급을 줄인다면 중장기적으로는 수요 대비 공급이 부족해 집값이 다시 오를 수 있다”며 “자칫하면 득보다 실이 클 수 있는 만큼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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