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지 감수성’ 가장 높은 이대남, 사회 불만도 가장 많아 [배정원의 핫한 시대]
  • 배정원 세종대 겸임교수 (보건학 박사)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1.27 07:30
  • 호수 168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30 남녀, 성별 갈등과 갈라치기 구도에 매몰되지 않아야
청년 세대가 힘을 뭉쳐 기성세대의 불공정 쳐부수는 모습 기대

[편집자주]

시사저널은 우리 사회에서 점점 더 심화돼 가는 젠더 갈등, 세대 갈등을 치유하고, 시니어들의 건강한 제2의 인생을 준비하고자 새해부터 ‘배정원의 핫한 시대’ 칼럼을 3주마다 한 번씩 연재합니다. 필자인 배정원 교수는 보건학 박사로 성 칼럼니스트 및 성교육 상담가이며 현재 세종대 겸임교수, 행복한성문화센터 소장, 대한성학회 명예회장 등을 맡고 있습니다. 활발한 강의 및 학회·저술 활동은 물론 최근 유튜브 채널 ‘배정원 TV’를 통해 인기 유튜버로도 활약 중입니다.

-----------------------------------------------

대학생, 청년들과 성에 대한 수업과 강의를 통해 만나온 지 어언 20년 가까이 되었다. ‘성과 문화’라는 교양수업을 통해 처음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나는 일부터, 호감을 얻고 사랑에 빠지는 과정, 연애와 안전한 섹스, 남녀의 성건강 관리, 다른 성생리와 성심리, 결혼, 이별, 성폭력, 성매매까지 사랑과 섹스에 관련된 주제를 다양하게 다뤄왔다. 젊은 청년들과 나누는 이와 관련된 대화는 언제나 낭만적이고 흥미진진하고 즐거웠다. 돌아보면 20대에서 30대까지의 나이는 인생에서 가장 무겁고, 가진 것이 없어 초라하고 미래를 알 수 없어 두렵지만, 사랑과 열정이 있어 성큼성큼 그 시간들을 건너올 수 있었잖은가.

그런데 최근 몇 년, 강단에서 남녀의 문제를 이야기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음을 느낀다. 아마도 2020년대에 들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비약적으로 많이 사용된 단어는 ‘젠더’가 아닐까. 젠더 갈등, 성인지 감수성, 여혐·남혐 등 성역할·성차별과 연관된 것들일 것이다. 특히 전 세계가 코로나19 팬데믹에 빠지고 비대면과 물리적 거리 두기가 요구되면서 우리나라에서는 남녀 갈등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

ⓒfreepik
ⓒfreepik

20대 남녀, 절반 가까이 ‘섹스오프’ 상태

지난해 발표된 사회학자 염유식 연세대 교수의 ‘2021년 서울 거주 성인들의 성생활 실태’ 연구에 따르면, 서울에 거주하는 19세 이상 성인 3명 중 1명이 지난 1년간 한 번도 섹스를 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1년에 한 번도 안 한 상태라면 이건 섹스리스가 아니라 섹스오프 상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이번 연구에서 괄목할 만한 점은 20대 남녀의 뚜렷한 섹스오프 상태다. 인생을 통틀어 가장 많은 상대와의 탐색을 통해 연애와 섹스가 있어야 할 20대 남성의 섹스오프는 무려 43%로 남성 전 세대 중 가장 높은 수치였다는 것이다. 20대 여성 또한 60대(53%)에 이어 43%가 섹스를 하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가장 피가 뜨거울 이 젊은이들이 섹스를 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에 대해 20대 남성들은 ‘관심은 있지만 상대가 없어서’가 가장 많았고, 20대 여성은 ‘아예 흥미가 없어서’라고 답한 이가 가장 많았다. 연구를 진행한 염 교수는 “결국 여성은 성에 관심이 없고, 남성은 성적 파트너를 못 만나 섹스를 못 하는 ‘미스매칭’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면서 미국에서 결혼 등 기성 사회의 관습을 거부하는 히피문화가 젊은 층을 휩쓸었을 때 오히려 성관계가 활발해졌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비혼’이 대두되며 동시에 섹스도 없어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우리나라의 청년 여성들은 왜 성에 관심이 없어졌을까? 청년 남성들은 왜 파트너를 만날 수 없었을까? 물리적 거리 두기를 강조하는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이 어느 정도 일조했겠지만, 아마도 더 큰 이유는 1980년대를 지나오며 우리나라의 남녀 성별비가 깨진 이유도 한몫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국가의 출산정책은 오랫동안 ‘아이 적게 낳기’에 집중해 왔다. ‘부부와 두 자녀’가 정상 가족으로 간주되어 오다가 1980년대부터는 한 자녀로 바뀌었다.

‘하나 낳아 젊게 살고, 좁은 땅 넓게 살자’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는 표어가 내세워졌고, 정부는 여전히 적극적인 산아제한 정책으로 일관했다. 이 과정에서 우리나라 부모들은 딸보다는 아들을 선택했고, 그 결과 성별비가 무참히 깨졌다. 극적인 남아선호사상은 1990년 여아 100 대 남아 116.5까지 성비가 깨졌고, 그 후로 저출산 위기의식이 급속히 고조되면서 정부는 적극적인 출산장려 정책으로 회귀했지만 깨어진 성비는 좀처럼 회복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 성비가 사실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남성의 숫자가 더 많아질수록 사회는 폭력적이 된다는 인구사회학자들의 분석이 있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신붓감 숫자가 부족하게 된 것이다. 잘 알겠지만, 남성과 여성의 결혼 대상은 분포가 크게 다르다. 남성의 경우 자신과 위아래로 4~5세 정도 여성이라면, 여성의 경우는 20~70대까지로 스펙트럼이 넓다. 그러니 꼭 결혼이 아니더라도 파트너를 찾아야 할 남성들에게는 적색경보가 켜진 것이다. 이렇게 남성 인구수가 많아지면 당연히 결혼시장 진입장벽은 높아진다. 좀 더 출중한 외모와 학력, 그리고 사회적·경제적 능력이 요구되면서 남성의 파트너 만나기가 더 어려워졌다.

게다가 우리나라 남녀 임금의 심한 격차와 입사·승진의 불공정, 여전히 여성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육아의식 등등이 여성의 경력 단절과 취업 불안정을 유도하기 때문에 경제력에 취약한 여성들은 점점 경제적으로 능력 있는 남성 위주로 선택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부모에게 받은 것이 없고, 사회에 진출한 기한이 짧아 가진 것이 없는 남성들은 계속 박탈감을 느끼게 되고, 이는 기득권을 가진(결혼에 성공한) 남성에게 ‘설거지남’ ‘퐁퐁남’이라는 조롱을 던지고, 이에 발끈한 기혼남들은 결혼하지 못한 ‘도태남’이라고 화답하고 있다. 결국 균형이 깨진 성별비와 그 저변에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우리 사회의 남녀 불평등이 남녀 갈등뿐 아니라 남성 간에도 갈등을 가져오고 있는 것이다.

 

불공정한 정책과 균형 잃은 시스템의 문제

또 하나 여성들에게 만남이나 결혼이 어려워진 이유로는 여성들이 연애 과정의 안전에 대해 확신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요즘 들어 더더욱 젊은 여성들로부터 ‘만남부터 사랑을 유지하고, 헤어짐까지 자유권과 안전함이 확보되지 않은 교제를 섣불리 시작하지 못하겠다’는 고민을 자주 듣게 된다. 데이트 중 거절이나 ‘헤어지자’고 했다는 이유로 연인에게 맞아 죽는 뉴스가 하루가 멀다 하고 올라오고, 그 폭력성은 점점 더 심해져 가고 있다. 그래서 불안한 연애를 하느니 차라리 안전한 동성친구와 우정의 시간을 보내겠다는 여성도 증가하는 추세다.

결국 이 문제는 남녀의 본질적인 성차 때문에 일어나는 갈등이 아니다. 여성이 특별히 노력 없이 돈만 밝히는 상대여서도 아니고, 남성이 특별히 폭력적인 존재거나 능력이 없어서도 아니다. 남자와 여자는 적이 아니고 오히려 서로 돌보고 아끼고, 사랑하며 살아야 할 존재이며 동반의 대상이다. 이것은 우리 사회의 불공정한 정책, 균형을 잃은 시스템 문제인 것이다. 성별 갈등 지형도에서 가장 불만이 많은 20대 남성들은 역설적으로 가장 ‘성인지 감수성’이 높은 세대다. 필자는 여기에 희망이 있다고 생각한다.

남녀 청년들이 서로를 반목하지 말고, 언론이나 정치권이 조장하는 성별 갈등과 갈라치기 구도에 매몰되지 않기를 바란다. 청년 세대가 똘똘 힘을 뭉쳐 기성세대가 만들어온 불공정을 쳐부수는 모습을 보고 싶다.

배정원 세종대 겸임교수 (보건학 박사)
배정원 세종대 겸임교수 (보건학 박사)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