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 문제에 할 말 하는 기업 늘어날 것”
  • 이석 기자 (ls@sisajournal.com)
  • 승인 2022.01.28 10:00
  • 호수 16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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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조수영 경희대 미디어학과 교수 “해외에서는 CSA가 하나의 기업 트렌드”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의 ‘멸공 논란’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신세계 계열인 이마트나 스타벅스 불매운동으로 논란이 확산될 정도다. 회사 주가도 크게 흔들렸다. 올해 들어서만 신세계와 이마트 주가가 5~6% 하락했다. 당황한 정 부회장은 뒤늦게 ‘멸공 절필’ 선언을 했다. ‘정치 운운 말라’는 글을 올리며 정치와 선긋기에 나섰지만 대중의 언짢은 시각은 풀리지 않고 있다.

조수영 경희대 미디어학과 교수는 정 부회장의 발언이 넓은 의미에서 ‘CSA(Corporate Social Advocacy)’에 해당한다고 설명한다. CSA는 기업이나 CEO가 정치나 사회 이슈에 공개적으로 입장을 표명하거나 적극 개입하는 것이다. 기업의 사회공헌활동인 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이나 CSV(Creating Shared Value)보다 한 단계 나아간 개념이다. 그는 “애플과 인텔, 이베이 등 미국 주요 기업들은 2017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반이민 행정명령에 대해 반대 성명을 냈다”면서 “국내에서는 CSA가 아직 낯선 개념이지만 해외에선 기업이나 기업인이 정치·사회적 현안에 활발히 개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정 부회장의 멸공 발언이 다소 성급한 면이 있다고 그는 지적한다. 조 교수는 “CSA를 위한 필수조건이 동성애나 반이민주의 등 인도주의적 측면, 혹은 대중이 공감할 수 있는 어젠다다. 형식 역시 개인보다 공동성명 형식이 훨씬 무게감이 있다”면서 “정 부회장의 경우 노조가 성명서를 내는 등 내부 공감대도 얻지 못했다는 점에서 논란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다음은 조 교수와의 일문일답.

ⓒ시사저널 박정훈

최근 정 부회장의 멸공 논란이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

“그동안 한국의 기업 문화를 봤을 때 당연한 현상이다. 우리 기업이나 기업인들은 정치나 사회 문제에 대해 발언하는 것을 금기처럼 여기고 있다. 오너가 침묵으로 일관하다 보니 전문경영인들도 외부활동에 소극적이 된다. 정용진 부회장은 이 금기를 깼다. SNS에 자신의 의견을 올리는 데 주저함이 없다. 이 기업인의 발언이 이슈화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일부 정치인이 동조하면서 논란이 더 커진 듯하다.

“그렇다. 정치인들이 비슷한 글을 SNS에 올리면서 이슈가 정치권으로 옮겨붙었다. 개인이라면 문제가 없다. 얼마든지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수 있다. 하지만 정 부회장은 개인이 아니다. 재계 11위인 신세계그룹 경영을 사실상 총괄하고 있는 공인이다. 발언에 무게가 있다. 선거가 얼마 안 남은 시점에 ‘멸공 발언’을 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있다.”

시점이 문제라는 얘긴가.

“그렇다. 정 부회장이 멸공을 외친 이유는 ‘코리아 디스카운팅’이었다. 하지만 정 부회장이 멸공 발언을 한 시점에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 이슈가 없었다. 그렇다고 멸공이 인류애적인 주제도 아니다. 이런 민감한 내용을 내부 구성원과의 교감도 없이 올리다 보니 안팎으로 표적이 된 것으로 본다.”

형식이나 시점을 조정했다면 괜찮았다는 뜻인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재임 당시 미국 정부는 반이민 행정명령을 발표했는데, 153개 기업이 반대 성명을 냈다. 관련 시민단체인 미국시민자유연맹(ACLU)에도 기부금을 내는 등 적극적으로 반대에 나섰다. 이런 행동을 CSA라고 일컫는다. 기업이나 기업인이 정치·사회적 이슈에 적극적으로 입장을 표명하고 행동에 나서는 것이다. 정용진 부회장의 멸공 발언 역시 넓은 의미에서 볼 때 CSA라고 볼 수 있다.”

CSA란 용어가 낯설다.

“국내에서는 그동안 기업이 정치 문제에 개입하거나 발언하는 것이 금기처럼 여겨졌다. 기업인들 역시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기보다 조용히 뒤에서 회사를 챙기는 ‘은둔의 경영자’ 스타일이 많았다. 하지만 해외에서는 이 CSA가 기업의 새로운 트렌드로 주목받고 있다. 나이키나 P&G의 경우 인종차별이나 여성 인권에 대한 광고를 만들어 공개했다. 미국의 유명 스포츠용품 체인인 디스 스포팅 굿즈는 총기류 판매 규제 캠페인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다.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인 일론 머스크의 경우 특정 사안을 놓고 미국 상원의원과 SNS를 통해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그만큼 기업이 경제를 넘어 정치·사회적 이슈에 대해서까지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 아직 초기 수준이긴 하지만 우리나라 기업도 최근 이런 흐름에 동참했다. 오비맥주는 최근 성소수자에 대한 지지를 공개적으로 표명했다. 국대떡볶이의 경우 오너가 조국 사태에 대해 여당을 비판하는 발언을 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이런 활동 역시 CSA의 일종이라고 보면 된다.”

CSA 활동이 자칫 기업의 불매운동으로 확산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앞서 언급한 P&G도 여성 인권이나 왕따 문제를 제기한 후 주가가 급락했다. 하지만 이후 P&G 주가나 실적이 크게 반등했다. CSA 활동이 소비자의 충성도와 사회적 주목도를 높임으로써 ‘보이콧’이 아니라 ‘바이콧’ 캠페인을 유도한 대표적인 사례다. 우리나라 소비를 주도하는 MZ세대 역시 ‘가치소비’를 중시한다. 앞으로는 P&G 같은 사례가 더 많아질 것으로 본다.”

최근 멸공 발언으로 논란을 빚은 신세계의 경우는 반대다. 계열사 주가가 크게 출렁였고, 소비자들로부터 불매운동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아쉬운 면이 있다. 다시 강조하지만 개인이 SNS를 통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것은 나쁘지 않다. 오히려 사회적 여론을 다각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 효과도 있다. 다만 정용진 부회장은 인스타그램 팔로워만 70만 명대를 보유한 인플루언서다. 그럼에도 정치적으로 민감한 시기에 민감한 발언을 해 정치인들이 개입할 빌미를 제공했다.

기업이나 기업인이 CSA 활동을 할 때는 그 기업 고유의 철학이 반영돼야 한다. 내부 구성원과의 공감대도 필요하다. P&G나 나이키의 사례처럼 진정성을 가지고 꾸준히 진행해야 한다. 그래야 그 활동이 기업의 아이덴티티로 굳어진다. 자체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응답자들은 대체로 ‘기업이 그들 기업의 가치에 맞는 정치·사회적 이슈에 대해 발언해야 한다’고 답했다. 하지만 ‘논쟁적인 정치·사회적 이슈에 대해 발언하는 것’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의견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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