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채권 대학살’ 사태 재연될까 [최준영의 경제 바로읽기]
  •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2.01 10:00
  • 호수 16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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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금리 인상으로 전 세계 환율 및 채권 가격 큰 변동…보수적이고 안정적인 투자 접근 필요

1월14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는 정례회의를 통해 기준금리를 연 1%에서 1.25%로 0.25%포인트 인상했다. 2021년 11월 이후 다시 금리를 인상하면서 기준금리는 0.5%포인트 상승했다. 최소한 금리는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가게 됐다. 금통위가 2차례 연속 금리를 인상한 것은 2007년 이후 14년 만의 일이다.

2021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연 2.5%로 1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는데, 이는 한국은행의 물가안정 목표인 2%를 웃도는 수준이다.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물가 상승과 이로 인한 금리 인상이 반복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미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7%에 이르자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는 오는 3월부터 3차례 금리 인상을 시사한 바 있다. 시장에서는 4차례 인상할 것이라는 시각도 확산되고 있다. 금리의 향방은 언제나 경제 흐름과 자산시장의 흥망성쇠를 불러오는 핵심요소로 작용해 왔다.

미국의 금리 인상으로 전 세계 환율 및 채권 가격이 요동치고 있다. 사진은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모습ⓒ시사저널 박정훈

금리 인상→신흥국 자금유출→외환위기

금리 인상은 대출 부담을 증가시키고 증권 등 위험자산 선호도를 낮춘다. 한국은행의 설명에 따르면 기준금리가 0.25%포인트 상승하면 가계 이자부담은 3조2000억원 증가한다. 많은 경우 금리 인상은 증시의 하락으로 이어지곤 한다. 안정적인 금리를 받을 수 있는 예금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미국의 금리 변화는 전 세계 환율과 채권값에 큰 영향을 미친다. 미국이 기준금리를 올리면 더 높은 금리를 찾아 신흥국에 투자됐던 외국인 자금이 유출되기 시작한다. 통화가치 하락이 나타나는 경우도 많다. 이것이 심해지면 외환위기로 진행되기도 한다. 우리가 과거에 겪었던 경제 및 금융위기의 근원에는 미국의 금리 변화가 자리 잡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미 미국 국채 2년물 금리는 2020년 2월 이후 2년 만에 1.05%까지 치솟았다. 10년물의 경우도 1.87%까지 올라 2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반면 미국 주식시장에선 기술주를 중심으로 하락세가 두드러지고 있다. 원유 등 원재자주만 예외적으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긴축에 대해 금융시장이 발작적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1990년대 이후 미국의 금리 인상은 여러 차례 있었다. 그 가운데서도 국제적으로 큰 영향을 미친 사건은 1994년 2월부터 95년 2월까지 7차례 있었던 금리 인상이었다. 연방준비제도(FRB)는 1990년 시작된 경기침체에서 벗어나기 위해 1992년 9월부터 1994년 2월까지 17개월간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 수준인 3%로 유지했다. 이 조치로 인플레이션 조짐이 보이자 1994년 2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1년 동안 기준금리를 3%포인트나 급격히 올렸다. 물가보다 높은 금리는 물가를 안정시키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1995년부터 물가 상승률이 3%대 중반으로 높아질 것이라는 전망이 대두되면서 급속한 금리 인상이 진행됐다. 1980년대 후반 부동산을 중심으로 한 과도한 레버리지가 문제가 된 바 있는데, 경기침체 발생 이후 낮아진 금리를 기반으로 다시 신용 레버리지 상품이 등장하자 그린스펀 의장이 예상을 뛰어넘는 강력한 대응을 주도했던 것이다.

금리 인상 폭도 컸지만, 연방공개시장위원회가 사전 공지 없이 기습적으로 금리 인상에 나섬에 따라 채권시장이 폭락했다. 예정된 금리를 받는 채권은 시중금리가 상승할 경우 가격이 폭락한다. 1994년은 ‘채권 대학살’로 기억될 만큼 채권 가격이 폭락하면서 금융시장에 큰 충격을 줬다. 미국 국채 10년물 금리는 1994년 1월말 5.7%에서 연말에는 7.8%로 2.1%나 급등했다.

국제 금융시장의 자금이 미국으로 쏠리면서 금리 인상 전 저금리에 기반한 대량의 유동성이 유입돼 주식시장 호황을 가져왔던 멕시코, 아르헨티나 등 중남미 국가의 주식이 폭락했다. 미국의 유동성 유입이 본격화된 1989년부터 1994년까지 멕시코 주가는 약 30배 가까이, 아르헨티나 주가는 약 20배 이상 폭등했다. 하지만 미국의 금리 인상 이후 이러한 미국발 중남미행 캐리 트레이드(국가 간 금리 차이에 바탕한 거래)는 청산됐고 유동성은 급속히 감소했다. 주가가 1년 만에 고점 대비 50% 이상 폭락하는 등 중남미 금융시장이 뿌리째 흔들렸고, 멕시코는 ‘테킬라 위기’로 잘 알려진 외환위기를 맞아 미국과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는 신세가 됐다. 위기는 중남미를 넘어 이후 동남아, 그리고 우리나라와 러시아까지 파급되면서 많은 국가를 힘들게 했다.

현재까지의 금리 인상은 예상된 것이지만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강력한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서는 급격한 금리 인상이 필요하지만, 그로 인해 겨우 살려 놓은 경기가 다시 침체 국면으로 접어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시장을 인플레이션 우려에서 돌아서게 하려면 시장에 충격을 주는 것이 필요하며, 한 번에 금리를 대폭 높여야 하지만 현실은 쉽지 않다. 파월 FRB 의장은 통화정책을 정상으로 되돌리기까지는 갈 길이 멀다고 했으며, 통화부양책을 축소하는 것이 고용률에 부정적인 영향을 줘선 안 된다고도 했다. 긴축은 필요하지만 그 수단 가운데 하나인 금리를 마냥 높일 수는 없다는 얘기다.

 

“과거 잣대로 대책 마련하는 것은 회의적”

일각에서는 고삐 풀린 인플레이션을 길들이려면 보다 적극적인 통화긴축 선언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1979년 볼커 당시 연준 의장의 통화공급 제한 결정은 단기금리 급등을 가져왔다. 덕분에 1980년 3월 연간 14.8%에 달했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983년 7월 2.5%까지 낮아지면서 볼커는 영웅으로 부상했지만 미국의 제조업과 중산층은 붕괴했고 중남미 국가를 중심으로 국가부도 사태가 이어졌다. 1980년대에는 가능한 수단이었지만 2020년대에도 과연 같은 수준의 카드를 활용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장기적인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피해와 어려움을 겪은 기억이 소멸한 상태이기 때문에 큰 대가를 치러서라도 인플레이션을 잡겠다는 정책은 지지를 받기 어렵다.

인상이 항상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2004년의 인상은 달랐다. 미국 기준는 그해 6월 1.0%부터 2006년 6월 5.25%까지 2년에 걸쳐 4%포인트 이상 상승했다. 1994년과 차이가 있었다면 한 번에 0.25%포인트씩 17차례로 나눠 기준를 인상함으로써 시장에 주는 충격을 줄였고 예측 가능성을 높여줬다는 것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물가 인상에 대한 우려가 없었기에 단계적 접근이 가능했지만 현재의 상황은 그때와 다르기 때문에 막연한 긍정론 역시 위험하다고 볼 수 있다. 급변하는 상황에서 지난 2년의 기억을 지워버리고 좀 더 보수적이며 안정적인 투자와 자산에 대한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다. 다시 한번 겨울이 찾아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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