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가족부 폐지’ 일곱 글자가 부린 마법 [임명묵의 MZ학 개론]
  • 임명묵 작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2.06 10:00
  • 호수 16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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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만이 이대남을 움직일 것’이라는 오해…정서·감정·문화·정체성에도 움직이는 힘 작용

‘여성가족부 폐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의 페이스북 계정에 이 일곱 글자가 뜨자마자 두 눈을 의심했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게 진짜 현실 맞나 의심이 들 정도로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그 후 필자가 주로 찾는, 2030 남성들 위주의 ‘남초 커뮤니티’에 들어갔다. 그야말로 열광적인 환호성이 펼쳐지고 있었다.

1월초만 하더라도 윤 후보의 지지율은 정권교체 바람이 다수임에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를 크게 하회했다. 소위 ‘윤핵관’·이준석·김종인 등이 후보 주위에서 치고받는 모습은 바라보는 이들에게 피로감을 안겨줬다. 어떤 후보를 지지하는가와 상관없이 다들 이대로 가면 무난하게 이 후보가 당선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저 일곱 글자가 화면에 올라온 것은 바로 그 무렵이었다. 하지만 1월이 끝나갈 즈음, 즉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지지율은 급격히 반전되었다. 오히려 이 후보가 40%의 벽을 뚫지 못하고 있었고, 윤 후보는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에게 표를 어느 정도 빼앗기고 있었음에도 이 후보를 상회하게 되었다.

1월22일 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도전하는 청년 국가인 재 영입 발표 및 청년 공약 발표를 하고 있다.ⓒ이재명 캠프
1월22일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청주에서 열린 충북 선대위 필승결의대회에 참석하고 있다.ⓒ윤석열 캠프

특정 주제에 집단 이루고 밈 생산해 ‘관철’

정말 이런 마법 같은 일이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일곱 글자 때문에 벌어진 것일까? 물론 그 이후에도 사건은 많았다. 윤석열 캠프가 태세를 정비하고 각종 쇼츠를 비롯해 젊은 감각의 공보물을 쏟아내기 시작했지만, 이재명 캠프에서는 그에 필적할 만한 아이템을 더는 내놓지 못하고 있었다. 여당 측의 최대 공격 카드인 ‘김건희 녹취록’은 오히려 윤 후보 부부에 대한 호감을 높이며 역효과를 불러일으켰다. 이런 변화까지 감안하면 여성가족부 폐지와 ‘이대남’의 영향력을 너무 과대평가하는 것 아닐까? 실제 민주당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전체 유권자에서 차지하는 비율로 보았을 때 결국 이대남은 ‘한 줌’에 불과하니 민주당이 그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더라도 크게 걱정할 건 없다는 예상이 자주 나왔다. 지난해 4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또한 20대 효과가 아니라 부동산 문제가 핵심이었다고 말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이대남’이 사태의 열쇠를 쥐고 있었다고 볼 여러 근거는 분명히 있었다. 모든 이야기는 중앙 통제형 조직의 힘이 와해되고, 자발적으로 움직이며 다양한 정체성에 따라 쪼개진 무정형의 대중이 여론의 중심으로 떠오르게 된 변화에서 시작된다. 이로써 특정 주제에 아주 높은 수준으로 관여하면서 집단을 이루고 밈(meme)을 생산하고 자신의 사회적 네트워크를 모두 동원해 자신의 희망사항을 관철하고자 하는 집단이 탄생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지금의 20대는 이런 변화와 함께 태어나서 성장한 존재들이었다. 따라서 그들의 훈련된 온라인 여론전 능력은 판세 전체를 뒤흔들 수 있는 능력으로 떠올랐다. 여성가족부 폐지 일곱 글자가 뜨자마자 윤 후보에 환호하는 온갖 밈이 생산되어 삽시간에 유통된 것을 떠올려보면 이해하기가 더 쉬울 것이다.

그렇다면 그중에서도 왜 하필이면 ‘여성가족부’였을까? 이 후보는 이전부터 청년층을 공략하려고 노력했고, 기본소득을 비롯한 여러 청년 지원 의제를 선점하면서 청년 문제에서 앞선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렇다면 이런 이슈는 중요하지 않았단 말인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맞다. 이재명 후보, 그리고 ‘일곱 글자’ 이전의 윤석열 후보가 공략했던 문제들은 어찌 보면 모두 ‘부차적’ 문제들이었다.

사람들은 종종 다른 이들의 말과 행동에 숨겨진 동기, 혹은 겉에 드러나지 않는 ‘진짜 원인’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청년층의 젠더 갈등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시선이 있었다. 이 후보는 얼마 전 유튜브 채널 ‘닷페이스’에 출연했을 때, 젠더 갈등은 이미 어려운 청년층끼리 제한된 기회를 두고 경쟁하다 보니 생기는 일이기에, 그들에게 기회를 확대해 주는 것이 진짜 해결책이 돼준다고 진단했다. 이런 시각은 이 후보만의 것이 아니다. 젠더 갈등의 ‘진짜 원인’이 불평등, 부동산 가격 상승, 양질의 일자리 부족이니까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는 주장은 어디서나 많이 볼 수 있는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인간은 경제적 이익만으로 움직이는 존재가 아니다. 우리 스스로를 돌아만 봐도 쉽게 내릴 수 있는 결론이다. 명예, 인정 욕구, 사회적 친분, 자유, 공동체에 대한 소속감 같은 감정들은 때로는 물질적 이익을 초월하는 수준으로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결정한다. 예컨대 2021년 한 해를 달군 젠더 갈등 사건들을 확인해 보면 이를 쉽게 알 수 있다. 챗봇 이루다 문제, 유튜버 보겸과 그를 언급한 논문을 둘러싼 문제와 같은 문화적 사안이나 흉악범 제압 시 여경의 실효성 같은 사회적 사안, 현대사회에서 결혼의 의미는 무엇인지에 관한 논쟁인 ‘설거지론’ 등.

 

무엇보다 청년 남성에게 필요했던 것은 ‘인정’

특히 무엇보다 그들에게 필요했던 것은 ‘인정’이었다. 많은 청년 남성층은 사회의 시스템, 특히 논의를 이끌어가는 정치권·학계·언론계가 모두 여성에게 우호적이며 남성에게 적대적이라고 인식한다. 성적 표현, 병역 의무 등에서 이들 집단이 이중 잣대를 적용하고 있으며 여성들의 요구는 즉각적으로 수용하는 반면 남성들의 불만은 ‘비합리적’이고 ‘찌질한’ 것으로 묵살한다는 이야기다. 이런 불만이 오랜 기간 누적돼온 결과, 그들은 오직 딱 하나, 자신들의 불만을 인정해 주고 그 불만을 대의해 주겠다고 나서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전폭적으로 지지하겠다고 소리치게 된 것이다. 그러니 ‘여성가족부 폐지’ 일곱 글자가 집단적 인정에 대한 갈망을 풀어주는 마법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 정치를 결산하는 선거가 온전히 경제에 의해 움직인다는 가정, 어쩌면 마르크스주의와도 통하는 가정은 때때로 상식처럼 통한다. 하지만 여성가족부 폐지의 마법만 보더라도, 사람들을 움직이는 힘은 정서·감정·문화·정체성에도 엄청나게 존재한다.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은 흔히 미국에 시장주의를 다시 불러오고 1970년대의 정부 실패를 해결한 사람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그는 68혁명과 히피 운동으로 피로감을 느끼고 있던 사회에 기독교와 가족으로 상징되는 보수적 가치를 다시 외친 대통령이자, 소련과 공산주의 진영에 강경 일변도의 자세를 견지함으로써 베트남 전쟁으로 무너진 미국의 자신감을 회복시켜준 대통령으로도 기억된다.

불평등이 심화되고 청년들 사이에서 기회의 문이 좁아지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그런 구조 속의 청년이라고 해서 자신들의 경제적 기회 이외의 다른 사회적 문제를 모두 부차적인 것으로 취급하는 이들은 아니다. 그러니 대선이 누구의 승리로 끝나든 간에, 경제뿐 아니라 문화와 정체성 문제에 대해서도 답하라는 질문을 피해 가기는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다. 그게 청년들의 요구사항이었음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임명묵 작가
임명묵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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