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로 세계 지배하는 디즈니 마법의 ‘정수’를 엿보다
  • 조용신 뮤지컬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2.06 12:00
  • 호수 16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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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성과 대중성으로 무장한 뮤지컬 《라이온 킹》
1월28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서 3년 만에 국내 개막

미국 미주리주 캔자스시티에 위치한 페스만 아트 스튜디오에서 도안을 그리는 일을 하던 청년 월트 디즈니(1901~1966)는 1922년 사무실 동료 어브 아이웍스와 함께 실험적인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래프 오 그램(Laugh-O-Gram)을 창업한다. 물론 처음부터 사업이 잘된 건 아니었다. 1923년 사무실을 로스앤젤레스로 이전한 후 디즈니 스튜디오를 개업했다. 1928년 ‘미키 마우스’ 캐릭터를 완성하며 디즈니의 성공신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뮤지컬 《라이언킹》의 무대 한 장면ⓒ에스앤코 제공

동물 캐릭터를 예술적인 방식으로 표현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사업은 시대를 잘 만났다. 그 당시 무성영화 시대에서 유성영화 시대를 열어주는 새로운 음향기술이 도입됐다. 이들이 1928년 발표한 단편 《증기선 윌리》에서는 배경음악과 미키 마우스의 목소리를 넣을 수 있었다. 스크린에서 화면과 더불어 소리가 함께 나오자 관객들은 처음 보는 광경에 흥분했다. 디즈니의 애니메이션은 사운드트랙 앨범으로 이어졌고 음악이 있는 스토리는 뮤지컬 어법을 도입했다. 첫 번째 장편 애니메이션 《백설 공주와 일곱 난쟁이》(1937)도 큰 흥행을 기록했다.

이후 1940년대에 접어들면서 《피노키오》 《판타지아》 《덤보》 《밤비》 등을 잇달아 발표하며 디즈니는 전성기를 구가했다. 디즈니의 뮤지컬 애니메이션은 시청각을 모두 만족시키며 남녀노소를 망라하는 폭넓은 대중성을 얻기 시작했다. 청년 디즈니가 시작한 사업은 이제 한 세기에 걸쳐 애니메이션뿐만 아니라 가족용 실사영화, 브로드웨이 뮤지컬, 디즈니랜드, 케이블 채널 및 OTT 서비스인 디즈니 플러스까지 이어지며 디즈니는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콘텐츠 기업으로 여전히 손꼽히고 있다.

디즈니랜드는 1955년 로스앤젤레스를 시작으로 전 세계에 지점을 설립했고, 브로드웨이 뮤지컬은 1994년 《미녀와 야수》로 스타트를 끊었다. 《미녀와 야수》는 애니메이션으로는 처음으로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 올랐던 원작을 무대에서 배우들로 실사화한 버전이다. 《미녀와 야수》의 성공 이후 디즈니는 연타석 홈런을 기록하게 된다. 바로 두 번째 뮤지컬 《라이온 킹》(1997)이다. 작품의 흥행에 확신을 가진 디즈니는 《라이온 킹》의 초연을 위해 브로드웨이에 위치한 뉴 암스테르담 극장을 아예 매입하기도 했다. 디즈니는 장기 공연에 필요한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모두 갖추고 막강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외부의 투자 없이도 자체적으로 작품을 올릴 수 있는 독보적인 제작사가 된 것이다.

《미녀와 야수》가 원작 애니메이션의 마술적 느낌을 무대 메커니즘으로 최대한 리얼하게 재현하려고 애썼다면 《라이온 킹》은 인형극 전문가이자 소품 디자이너 겸 연출가 줄리 테이머를 영입해 가면과 각종 소품, 의상으로 아프리카 동물들과 자연을 환상적으로 표현했다. 특히 오프닝 장면에서 아프리카의 광활한 자연과 동물들이 평온한 초원에서 훗날 왕이 될 어린 사자 심바의 탄생을 축하하는 축제 분위기로 막이 열리는데, 이 장면은 브로드웨이 뮤지컬 150년 역사상 가장 인상적인 오프닝으로 선정될 가치가 있다.

무대 뮤지컬 《라이온 킹》의 성공 요인은 일단 작곡가 엘튼 존과 작사가 팀 라이스가 참여한 원작의 힘도 컸지만 동물을 예술적인 방식으로 표현한 캐릭터들과 아프리카 사바나의 정글을 환상적으로 재현한 무대미술이 압권이다. 이는 단순한 애니메이션의 재현에 그치지 않고 완전히 새로운 환타지를 만들어 극장을 찾은 관객들에게 무대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했다.

《라이온 킹》 캐릭터 중에서 어린이 관객뿐 아니라 성인 관객들에게도 가장 인기 있는 동물은 기린과 코끼리일 것이다. 기린을 연기하는 배우는 두 팔과 두 다리에 죽마를 연결해 가늘고 긴 네 다리를 표현하고 목과 머리는 긴 모자를 써서 묘기를 부리듯 공중걸음을 우아하게 걷는다. 인간의 관절과 동물 관절의 특성을 정확히 이해해 예술적으로 결합한 모양새다. 코끼리의 경우는 거대한 몸집을 실감 나게 표현하기 위해 네 사람이 각각 하나의 다리를 맡아 4인 1조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배우의 두 다리를 앞다리로 사용한 얼룩말과 뒷다리로 사용한 치타에게는 얼굴까지 덮는 검은 옷을 입은 세 명의 인형사가 두 팔, 두 다리(혹은 네 다리) 인형을 조종하며 일본의 인형극 분라쿠의 조종기법을 도입하기도 했다.

대사와 노래가 있는 주인공 캐릭터인 사자를 표현하는 방식은 조금 더 특별하다. 연출가는 사자의 얼굴이 새겨진 가면을 배우의 얼굴에 덧씌우지 않고 마치 로마군 투구처럼 머리 위에 얹는 방식을 택했다. 이는 배우의 얼굴도 드러내고 목소리와 표정이 가면과 오버랩되며 통합적으로 사자를 표현할 수 있게 됐다. 게다가 가면이 배우의 얼굴을 가리지 않기에 배우가 대사나 노래를 하는 데도 물리적인 불편함이 없다. 줄리 테이머가 4년 전 일본에서 오자와 세이지가 지휘한 스트라빈스키의 오페라 《오이디푸스 렉스》(1992)의 연출을 맡았을 때 이미 시험해 호평을 받은 적이 있는 방식이기도 했다. 줄리 테이머의 이처럼 특별한 가면 활용법으로 인해 무파사, 스카, 심바, 날라 등 사자 가면을 쓰고 있는 주연 캐릭터들은 표정 변화로 동물의 심리와 정서를 표현하는 게 가능해진 것이다.

 

선악의 정도에 따라 인형 표현 방식도 구분

또한 선악과 진화의 정도에 따라 인형의 외적인 표현 방식도 구분했다. 가령 사자 전체와 그들의 친구 티몬, 코뿔새 자주는 두 발로 걷게 해 직립인간처럼 우월한 권위를 부여한 반면, 하이에나 등 악역은 진화가 덜 된 네 발 달린 동물로 표현하고 있다. 정글의 정신적인 지주이자 주술사로서 심바를 왕의 길로 인도하는 개코원숭이 라피키는 아예 신비한 능력을 가진 존재임을 상징하기 위해 배우의 얼굴 분장으로만 캐릭터를 표현하고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이렇듯 《라이온 킹》은 총 230여 개의 실물 크기 인형과 그림자 인형 등이 출연하는 ‘인형 맛집’이다.

《라이온 킹》이 이룩한 예술성과 대중성으로 인해 디즈니가 이후에 만든 《메리 포핀스》 《타잔》 《인어공주》 《뉴시스》 《알라딘》 등 수많은 무대 뮤지컬보다도 이 작품이 아직도 훨씬 긴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2019년 《라이온 킹》 내한공연이 매진 사례를 기록하며 큰 인기를 끌었다. 3년 만에 한국을 찾는 《라이온 킹》 인터내셔널 투어 프로덕션은 특별방역대책으로 한 차례 개막을 미뤘다가 1월28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드디어 개막했다는 소식이다. 비록 바깥세상은 2년째 팬데믹이 지속되고 있지만 방역에 철저한 공연장에서 특별한 디즈니 마법을 즐기는 이러한 기회를 놓치기는 아쉽다. 때가 때여서 그런지 극 중 품바와 티몬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하쿠나마타타’(걱정하지 마 다 잘될 거야)를 주문처럼 무대와 객석이 하나 되어 내적으로 조용히 외쳐보고 싶은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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