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 시론] 왜 정치인은 무속인을 좋아할까
  •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kjm@jbnu.ac.kr)
  • 승인 2022.02.11 17:00
  • 호수 16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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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하고 높은 관료들이 무속인 엄청 좋아해요. 이렇게 앉아서 밥 먹고 얘기하다가 누가 뭐 어디 용한 사람 있다 그러면 대번에 수첩 꺼내서 전화번호 물어본다고요… 제가 그거를 봤으니까 거의 예외없이 그렇더라고요.”

전 환경부 장관 윤여준의 말이다. 꽤 알려진 속설이긴 하지만, 그의 권위에 힘입어 이젠 ‘정설’로 승격시켜도 좋을 듯하다. 그런데 도대체 왜 그럴까? 누구 못지않게 배울 만큼 배웠고 사회의 엘리트 계급에 속하는 사람들인데 말이다.

점술을 어리석은 미신으로 간주하는 사람이 많지만, 이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블랙스완》의 저자인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는 과학의 한계를 거론하면서 “어떤 미신이 그 믿음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이익을 가져다주거나 도움이 된다면, 그리고 주위 사람들에게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는다면 미신을 비판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주장한다. 미신을 ‘플라세보 효과’나 ‘놀이하는 인간’의 재미 추구를 위한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종교와 미신의 차이가 뭐냐고 항변하는 사람들도 있다. 프랑스 사상가 볼테르는 “교회는 늘 마법을 단죄하면서도 한편으론 그것의 존재를 믿었으며, 마법은 동방에서 발생해 기독교 안에 안치되었다”고 했다. 카피라이터 정철은 미신을 이렇게 정의한다. “인디 종교. 힘 있는 신자가 없어 아직은 종교 대접을 받지 못하는 억울한 종교.”

나는 앞서 엘리트가 무속인을 좋아하는 건 이상하지 않냐는 질문을 던졌지만, 질문이 잘못됐다. ‘엘리트임에도’가 아니라 ‘엘리트이기 때문에’ 무속인을 좋아한다고 보는 게 옳다. 미국의 리더십 전문가 마셜 골드스미스의 다음 증언을 참고할 필요가 있겠다. “조직의 계급 사다리를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미신적 사고가 더 강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즉, 통제력의 문제라는 것이다. 어느 조직에서건 높이 올라갈수록 권한은 강해지지만, 통제력은 약해진다. 겉보기엔 통제력도 강해질 것 같지만, 책임을 져야 할 범위가 넓어질수록 불확실성이 강해지면서 통제력 행사엔 명백한 한계가 드러나기 마련이다.

정치인은 ‘승자독식의 도박’과 비슷한 선거에서 공천과 당선의 불확실성과 혈투를 벌여야만 한다. 대권이나 대권에 근접하는 지위를 열망하는 정치인들은 운(運)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전반적인 정세와 민심의 영향을 크게 받는 처지에서 ‘과학’이나 ‘합리성’으로 돌파할 수 없는 영역이 자꾸 생겨나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용한 점쟁이나 도사의 해설을 듣고 싶은 욕망을 어찌 자제할 수 있으랴.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연합뉴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연합뉴스

‘무속 논란’의 한복판에 섰던 윤석열의 경우엔 자신의 삶 자체가 우연과 운의 요소가 워낙 강했기에 무속에 대한 친화성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거기에 더해 도사들과 대화를 즐겨 한다는 김건희의 영향을 크게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진실이 무엇이건, 다른 정치인들이 무속인을 엄청 좋아한다고 해서 그게 그의 면책 사유는 되지 못한다.

미국 사회학자 윌리엄 섬너는 “미신의 전체 양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날의 미신은 종교가 아니라 정치와 결합하고 있다”고 했다. 이른바 ‘이데올로기 미신’을 지적한 것이다. 그런 미신과의 투쟁을 선포한 윤석열로선 자기 주변의 미신과도 완전히 결별해야 한다. ‘과학기술 입국’을 내세운 처지에서 과학의 한계를 거론할 수는 없잖은가. 재미 추구 또는 ‘플라세보 효과’를 위한 미신 실천은 나중에 은퇴 후에 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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