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관위, 대선 관리 똑바로 하라 [쓴소리 곧은 소리]
  • 이상철 성균관대 교수 (커뮤니케이션 전공) (chunyg@sisajournal.com)
  • 승인 2022.02.12 10:00
  • 호수 16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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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부·사법부와 함께 청와대에 굴종적 자세 보이다 신뢰 잃어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 투표권 보장을 위한 정교한 대책 세워야

3월9일 치러질 20대 대선은 역대급 비호감 선거라고 한다. 선거 캠페인은 참여 민주주의의 축제이며 숙의 민주주의의 꽃이다. 그러나 2022년 대한민국의 대통령선거에선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다. 캠페인은 축제이기는커녕 청와대 권력을 독점하기 위한 전쟁터로 변질됐다. 후보자의 정책 메시지는 사라지고 상대 후보자에 대한 흠집내기만 기승을 부리고 있다. 방송사들은 시청률에 집착한 나머지 캠페인을 희화화하고 있으며, 후보들은 향후 대한민국을 어느 방향으로 끌고 가려 하는지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초유의 오미크론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국민은 투표 당일 어떻게 참정권을 행사해야 하는지 우왕좌왕하고 있다. 정부와 선관위는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국민의 눈높이로 투표 절차와 방법을 알기 쉽게 홍보해야 한다. 한마디로 2022년 대선은 유권자 입장에서 제대로 된 정보가 전달되지 않는 깜깜이 선거다. 깜깜이 대선이 발생한 가장 큰 원인은 행정부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법부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 중심에는 독립 헌법기관들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자리 잡았다.

ⓒ연합뉴스
노정희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이 2021년 12월13일 경기도 과천시 중앙선관위에서 열린 2022년 양대선거 선거종합상황실 개소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확진자·자가격리자 등의 투표 참여 방법은?

우선 행정부를 보자. 무엇보다 심각한 건 오미크론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수만 명 혹은 수십만 명에 이를 수 있는 확진자, 자가격리자나 밀접접촉자들이 어떤 방식으로 투표에 참여해야 하는지 명확한 설명을 듣지 못하고 있는 점이다. 선거를 불과 한 달 앞둔 2월8일 문재인 대통령의 ‘코로나 확진자와 자가격리자 중 투표할 수 있는 경우는 투표권이 보장돼야 한다’는 지시가 있고서야 질병관리청, 행안부, 보건복지부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움직였다.

또 다른 문제는 중앙선관위의 정부 예속성이다. 중앙선관위는 3000명이 넘는 직원을 두고 연간 7500억원이 넘는 예산을 쓰는 준사법적인 독립 헌법기관이다. 선관위는 이번 대선에서 감염 상황에 따른 여러 가지 투표 방안을 일찍 마련해야 했다. 멀티미디어를 통한 방역패스를 국민이 활용하고 있는 시대인데 대선 투표에 뉴미디어를 활용하는 방안이나 논의의 장이 제공되지 않고 있다.

이유는 한 가지. 선관위가 청와대의 눈치를 보고 있어서다. 문재인 정부 집권 동안 중앙선관위는 공정성과 중립성에 심각한 상처를 입었다. 2019년 1월 임명 당시부터 문재인 대선캠프 특보 출신 이력 등으로 정치 편향 시비가 제기됐던 조해주 전 상임위원의 연임 추진에 대한 중앙선관위 직원들의 사퇴 성명이 대표적인 사례다. 중앙선관위는 2020년 4·15 총선 때 코로나19 피해 지원을 빙자한 청와대와 정부의 대규모 예산 선심공세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2021년 4·7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 선관위는 더불어민주당을 연상시키는 파란색의 택시 래핑 광고를 제작해 논란을 자초했다. 여당에 유리한 TBS 방송의 ‘일(1)합시다’ 캠페인은 문제 삼지 않았지만, ‘보궐선거 왜 하죠’ ‘내로남불’ ‘우리는 성평등에 투표한다’ 등 야당의 슬로건은 사용을 금지했다. 이는 지나친 선거 개입이며 표현의 자유를 훼손하는 결정이었다. 또한 2021년 4·7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문재인 대통령이 부산 가덕도 신공항 예정지를 방문하자 야당은 청와대의 선거 중립성 훼손에 대해 항의했으나 중앙선관위는 ‘직무상 행위’라고 청와대를 두둔했다.

 

중앙선관위 무너지면 자유민주주의도 붕괴

사법부는 대선 상황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크고 작은 민감한 정치 사건들을 청와대 입맛에 맞춰 요리해 준다는 의심을 샀다. 문재인 정부 집권 동안 사법부의 정치화와 이념화는 심각한 문제로 지적돼 왔다. 사법부의 정치화와 이념화에는 김명수 대법원장과 소위 ‘우리법연구회’ 출신 판사들이 앞장섰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우리법연구회 중심으로 요직이나 주요 정치적 사건을 담당하는 재판부에 코드인사를 감행했다.

이로써 판사의 정치적 성향이나 이념에 따라 재판이 지연되거나 국민이 납득하기 어려운 판결이 속출했다. 사법부가 신뢰의 위기를 맞았다는 대표적인 사례는 기존 인사 관행을 깨고 각각 4년과 6년 장기 복무의 특혜를 누린 서울중앙지법의 김미리·윤종섭 부장판사의 경우다. 김미리 판사는 조국 전 장관 사건과 울산시장 선거 1심 사건을 맡아 하염없이 재판을 끌었으며, 윤종섭 판사는 이른바 사법행정권남용 사건을 맡아 이념 편파성으로 인해 기피신청을 받은 불명예의 주인공이었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취임 때부터 문재인 대통령의 코드인사라는 비판에 직면했다. 사법부의 청와대 종속 문제가 김명수 체제에서만큼 문제가 된 적도 드물다. 지난해엔 이른바 ‘임성근 부장판사 녹취록 공개 사건’이 터졌다. 김 대법원장은 녹취록에서 “내가 (임 부장판사의) 사표를 수리하면 국회에서 무슨 얘기를 듣겠느냐. 법률적인 것은 차치하고 나로서는…정치적인 상황도 살펴야 한다”는 등 사법부의 최종 인사권자가 국회의 눈치를 보면서 인사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다는 인식을 그대로 드러냈다. 대법원장이 사법부의 독립과 헌법상 3권분립을 스스로 무너트린 것이다. 지난 5년간 대법원 주변에 사법부를 불신하는 온갖 현수막이 내걸리고, 판사도 출입할 때 몸수색을 받을 수밖에 없는 흉흉한 분위기가 조성됐는데 이는 김명수 대법원장이 자초했다고 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2022년 대선은 유권자의 참여와 선택을 방해하는 요인이 유난히 많은 깜깜이 선거다. 깜깜이 선거를 바로잡는 중심 주체는 중앙선관위원회가 돼야 할 것이다.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선거관리 기관의 공정성이 의심받으면 선거에 의해 탄생하는 권력 자체에 정통성이 없어진다. 탄생 순간부터 정통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권력이 자유민주주의를 이끌고 가기는 어렵다. 한때 자유민주주의 체제였던 베네수엘라가 두 명의 대통령을 낳는 최악의 분열·무능, 군중 동원 국가로 타락하는 과정엔 중앙선관위가 집권당의 부속 기관처럼 예속되는 대목이 있었다. 한국의 중앙선관위를 비롯한 헌법기관들이 타산지석으로 삼을 만하다.

이상철 성균관대 교수 (커뮤니케이션 전공)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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