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학동참사 1년…위정자들의 공허한 ‘반쪽 반성문’
  • 정성환 호남본부 기자 (sisa610@sisajournal.com)
  • 승인 2022.06.10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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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참사 현장서 1주기 추모식…쏟아진 정치인들의 반성과 다짐
여전히 ‘형식 선언’만 있고 ‘실천’없는 반성...시민 안전 담보 의문
일부 참석자 “실천 없는 90도 폴더인사 의미 없다” 뼈 있는 농담

지난해 광주 동구 학동4구역 재개발 사업지에서 발생한 철거건물 붕괴참사의 1주기 추모 행사가 9일열렸다. 1년 전 그날 참사 현장에서다. 광주시와 동구는 이날 학동 재개발 붕괴 참사 1년을 맞아 오후 4시 현장에서 추모식을 엄수했다. 추모식에서 유가족과 시민 등은 참사 발생 시각인 오후 4시 22분에 맞춰 묵념했다. 엄숙하게 치러진 추모 행사 내내 일부 유족은 소리 내 울지 못하고 연신 고개를 떨군 채 흐느꼈다.

추모식에는 유가족 30여명과 이용빈·강은미 국회의원, 이용섭 광주시장, 김용집 광주시의회장, 임택 동구청장, 시·구의원, 시민대책위원, 시민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광주시와 동구는 무고한 피해자들의 넋을 위로하고 일상을 위협하는 안전 불감증에 대한 경각심을 환기하고자 추모식을 마련했다. 1년 전 이곳에서는 학동 4구역 재개발 사업지에서 철거 중인 지상 5층 건물이 무너지면서 인근 정류장에 정차한 시내버스를 덮쳐 9명이 숨지고 8명이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9일 광주 동구 학동 4구역 재개발 붕괴 참사 1년을 맞아 오후 4시 현장에서 추모식이 열렸다. 추모식에서 유가족과 시민 등이 참사 발생 시각인 오후 4시 22분에 맞춰 묵념했다. ⓒ시사저널 정성환
9일 광주 동구 학동 4구역 재개발 붕괴 참사 1년을 맞아 오후 4시 현장에서 추모식이 열렸다. 추모식에서 유가족과 시민 등이 참사 발생 시각인 오후 4시 22분에 맞춰 묵념했다. ⓒ시사저널 정성환

 

9일 학동 4구역 재개발 붕괴 참사 1년을 맞아 오후 4시 현장에서 추모식이 열렸다.  추모식에서 유가족과 시민 등이 참사 발생 시각인 오후 4시 22분에 맞춰 묵념했다. 한 유족이 엄숙하게 치러진 추모 행사 내내 소리 내 울지 못하고 연신 고개를 떨군 채 흐느끼고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9일 광주 동구 학동 4구역 재개발 붕괴 참사 1년을 맞아 오후 4시 현장에서 추모식이 열렸다. 추모식에서 유가족과 시민 등이 참사 발생 시각인 오후 4시 22분에 맞춰 묵념했다. 한 유족이 엄숙하게 치러진 추모 행사 내내 소리 내 울지 못하고 연신 고개를 떨군 채 흐느끼고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추모식에서는 광주지역 위정자들의 뼈아픈 반성의 목소리도 나왔다. 이용섭 광주시장은 추모사에서 “붕괴사고가 일어난 지 1년이 지났지만 시민들의 소중한 생명을 지켜드리지 못한 죄스러움에 너무나 괴롭고 힘들다”고 자성했다. 그러면서 이 시장은 “고인들의 넋을 기리기 위한 추모 사업을 차질 없이 추진해 그날의 아물지 않을 상처를 기억하고, 다시는 이러한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역사의 아픈 교훈으로 남길 것이다”고 말했다.

시민 안전에 대한 다짐도 쏟아졌다. ​이 시장은 “사고 이후 시민 안전을 제1순위로 삼았지만 사고 이후에도 이곳저곳에서 크고 작은 사고가 잇따라 안타깝고 죄송하다”며 “국민이 바라는 안전한 대한민국은 광주에서부터 실현해가겠다”고 밝혔다. 

김용집 광주시의회장도 “안전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을 높여 시민들이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는 광주를 만들겠다”고 했다. 임택 동구청장도 “1000여 공직자들과 한마음 한뜻으로 안전만큼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선제적으로 대응해 인명과 재산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 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이런 추상적인 반성과 다짐을 귀 담아 듣는 이는 몇 없는 듯 했다. 대신 “오늘 이 자리에 책임자들이 다 모여 있는 것 같다” “실천 없는 90도 폴더 인사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 일부 참석자의 뼈 있는 농담도 언뜻 들렸다.

이날 추모사에 나선 정치인들이 몸을 낮추고 깎듯한 인사를 보여줬음에도 선언과 각오의 ‘진정성’에 대한 의심을 거두지 못하는 이유는 그동안 누적된 불신 탓이 크다. 평소 기회있을 때마다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시민 안전을 외쳤다. 사고 직후 많은 약속도 있었다. 정치권이 제도적 보완을 약속하며 20개가 넘는 법안을 발의했다. 철거 현장에 감리자를 상주토록 하는 ‘건축물 관리법 일부개정안’만이 지난달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9일 학동 4구역 재개발 붕괴 참사 1년을 맞아 오후 4시 현장에서 추모식이 열렸다.  추모식에서 유가족과 시민 등이 참사 발생 시각인 오후 4시 22분에 맞춰 묵념했다. 추모식에서 광주지역 위정자들은 뼈아픈 반성과 다짐의 목소리를 냈다. ⓒ시사저널 정성환
9일 광주 동구 학동 4구역 재개발 붕괴 참사 1년을 맞아 오후 4시 현장에서 추모식이 열렸다. 추모식에서 유가족과 시민 등이 참사 발생 시각인 오후 4시 22분에 맞춰 묵념했다. 추모식에서 광주지역 위정자들은 뼈아픈 반성과 다짐의 목소리를 냈다. 사진 오른쪽부터 이용섭 광주시장, 김용집 광주시의장, 임택 동구청장. ⓒ시사저널 정성환

나머지 상당수 법안은 아직도 검토 단계에 머물러 있다. 그러는 사이 6명의 목숨을 앗아간 ‘광주 화정동 붕괴 참사’가 또 발생했다. 책임자들이 서로 책임을 미루고 있어 1심 재판도 아직 진행 중이다. 참사 현장에 추모공간 조성도 난항을 격고 있다.

관할 지자체인 광주 동구는 사고 상흔이 채 가시지 않은 참사 4개월 만에 14억 들여 ‘충장축제’를 강행해 추모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지금껏 나온 대책이 여전히 추상적이고 선언적인 수준에 그치고 있어 ‘반쪽’ 반성이란 지적이 나오는 이유이자 참담하기 짝이 없는 학동참사 그 후의 현주소다. 

이진의 학동참사 유가족협의회 회장은 “참사 이후 가족을 잃은 슬픔을 추스를 새도 없이 더 이상의 희생을 만들지 말라고 호소했다”며 “하지만 학동참사 발생 7개월 만에 또 다시 여섯 분의 무고한 시민이 고인이 되었다”고 지적했다. 학동참사 시민대책위원회는 “광주공동체는 여전히 충격과 아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그 이유는 참사 책임자들의 사과와 반성이 없기 때문”이라고 1주기 성명을 발표했다. 

추모식에 참석한 화정동대책위 한 관계자는 “위정자들이 목소리 높여 시민 안전을 외치고 반성문을 내놔도 진정성이 시민에게 전달되지 못한다면 소용이 없고 산속에 홀로 울리는 메아리와 같다”고 쓴소리를 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잘하겠다는 허황된 약속보다 재개발이나 건축행위 과정에서 있었던 각종 편법, 탈법, 불법행위를 해소하기 위한 계획을 제시해야 한다”며 “재개발을 둘러싼 이권 카르텔, 불법 재하도급 문제, 인허가 과정의 투명성 등 현재 제기된 사회적 논란을 해소하는 일이야 말로 제대로 반성하는 일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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