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성과와 과오, 진솔하게 돌아볼 때”
  • 조철 북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6.26 11:00
  • 호수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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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인 김진현의 회고록 《대한민국 성찰의 기록》

“한반도 전체가 ‘세계 인류 평화’의 중심이 되는 꿈. 그런 선진(先進)으로의 혁명, 변환, 승화, 개벽의 꿈을 꾼다. 거기 하나의 씨알, 한 줌의 거름 되기를, 죽는 날까지, 저승에 가서도 꿀 것이다.”

동아일보 기자로 시작해 과학기술처 장관, 서울시립대 총장 등 다양한 분야에서 종횡무진 활약한 언론인 김진현씨가 회고록 《대한민국 성찰의 기록》을 통해 전통과 혁신이 교차하는 역사의 격랑 속에서 자신이 겪은 한국 현대사의 일면을 생생하게 전한다. 1936년생인 그는 자신의 세대를 민족사에서 가장 다채로운 경험을 한 ‘다생세대’라고 명명한다.

대한민국 성찰의 기록│김진현 지음│나남출판사 펴냄│656쪽│3만9000원
대한민국 성찰의 기록│김진현 지음│나남출판사 펴냄│656쪽│3만9000원

“단군 이래 우리 민족사에서 가장 장수하면서 다단계, 다차원, 다문화, 다문명, 다혁명을 한꺼번에 모두 겪은, 아마도 전무후무한 세대라는 의미다. 전통, 근대, 현대, 인류세를 모두 살았고 대륙 시대에서 해양 시대를 개척·영위한 그들은 우리 민족의 말, 글을 못 쓰고 이름조차 바꿔야 했던 일제 식민지배를 체험하지 못한 아래 세대, 디지털 세대의 복잡성을 겪지 못한 윗세대와는 확연한 차이가 있는 독특한 세대이다.”

김씨는 레이몽 아롱과 월터 리프먼 같은 칼럼니스트가 되는 꿈을 평생 간직한 언론인으로서 남이 안 가는 길, 안 가본 길을 혼자 제일 먼저 걸어간 독특한 삶을 지냈다.

“레이몽 아롱(Raymond Aron)과 월터 리프먼(Walter Lippmann)이 내 롤모델이었다. 그쪽으로 참 열심히 노력했다. 지금 보면 책이건 신문이건 잡지건 참 낭비적 다독을 했다. 그 버릇이 남아 지금도 매일 국내 신문 4개, 뉴욕타임스, 니혼게이자이신문을 읽고 일주일에 한두 번 강대국 과학기술 관계 인터넷 사이트도 두드린다. 그런 ‘다면, 다차원’의 노력이 신문인·언론인으로 성공하는 필수요소라고 생각했다.”

1957년 말 연합신문 견습 1기로 언론계에 입문해 경제부에 배속된 김씨는 연합신문이 1962년 1월 자진 폐간하자, 동아일보 경제부로 옮겼고 입사 5년 만인 1967년 2월 논설위원이 됐다. ‘만 31세 논설위원’은 해방 이후 동아일보 역사상 지금까지 깨지지 않은 최연소 기록이다. 1980년 전두환 정권에 의해 강제 해직됐다가 1984년 말 동아일보에 복직한 그는 “1985년 3월 논설위원실장에서 1990년 11월10일 논설주간으로 동아일보를 퇴사할 때까지 내 칼럼은 가장 힘들였고, 힘들었고, 고통스러웠지만, 보람 있던 시절이었다”고 회고한다. ‘혼과 정열, 혼신의 정력을 바쳤다’고 자찬하는 김씨의 ‘김진현 칼럼’은 언론계 종사자들 사이에 많은 울림을 줬다.

"저널리즘의 대의(大義)를 지키기 위해 몇날 며칠을 생각하고 뒤집어 보고, 어제와 오늘을 새겨보며, 좋은 결의 글을 써야 했다. 한 편의 칼럼을 완성하기 위해 밤을 꼬박 새운 적도 흔했다. 담배 잿더미가 수북이 쌓였다. 그만큼 한 편 한 편 칼럼을 갈고 닦았다. 정성을 다했다. 밤새 한 갑 피우는 것은 보통이었고 그 이상일 때도 꽤 있었다.”

김씨가 회고록을 집필한 가장 중요한 목적은 대한민국의 훼손된 정체성과 정통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을 이끌었던 큰 어른들이 회고록을 집필해 국민에게 역사의 대목에서 일어난 성과와 과오를 진솔하게 설명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신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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