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건: 매버릭》, 이것이 바로 궁극의 오락 영화!
  • 정시우 영화 저널리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6.25 11:00
  • 호수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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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크루즈의 리얼리티를 입증한 영화
시네마의 부활을 증명했다

부담감이 톰 크루즈의 어깨를 짓눌렀다. 일에 있어 완벽을 추구하는 워커홀릭인 그이지만 이번 부담은 조금 달랐다. 그건 자신의 지금을 있게 한, 톰 크루즈라는 신화의 서막을 안긴 매버릭을 불러내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기대만큼이나 우려의 목소리가 컸다. ‘좋은 추억을 왜 굳이…’라고 말끝을 흐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대놓고 영화의 실패를 예단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톰 크루즈는 30년 넘게 자신에게 먼지처럼 따라붙는 매버릭과 제대로 인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가 다시 전투기에 올라탄 이유다.

그리고 톰 크루즈가 옳았다. 35년 만에 돌아온 《탑건: 매버릭》은 일각의 우려를 활주로에 묻어버리고, 기대는 제트 엔진에 달아 하늘로 쏘아올린다. 이건 단순히 선방한 정도의 영화가 아니라, 톰 크루즈라는 신화가 현재진행형임을 알리는 선언에 가까운 작품이다. 매버릭의 복귀를 회의적인 시선으로 바라봤던 입장에서 영화를 보는 내내 톰 크루즈에게 100배 석고대죄하는 마음이었음을 고백한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추억은 방울방울, 스릴은 두근두근

《탑건: 매버릭》은 쉽고도 고전적인 화술로 관객의 마음을 충만하게 매료시키는 궁극의 오락 영화다. 이 뭉클하기 그지없는 순도 100%의 블록버스터는 35년 전 《탑건》을 기억하고 있는 이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다가가야 하는지, 《탑건》을 모르는 세대들을 위해 어떤 전술을 영화에 태워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다. 그것은 지나간 것들에 대한 예우, 다가올 시대와의 멋진 화합이다. 동시에 영화는 OTT에 풀 죽어있던 극장가의 기를 팍팍 세워주며, 아직 시네마는 죽지 않았음을 증명해 낸다.

콜 사인명 매버릭. 포기를 모르는 남자 피트 미첼(톰 크루즈)은 35년이 지난 지금도 포기와 담을 쌓고 살고 있다. 자유분방한 성격 탓에 상부에 미운털도 제대로 박혔다. 동기들은 제독 달고, 별도 여러 개 달았는데 그는 여전히 대령이다. 그러나 이 남자, 진급 따위엔 큰 관심이 없다. 그저, 사랑하는 전투기와 함께 하늘을 오래도록 누비고 싶을 뿐. 대형 사고를 치고 좌천될 위기에 놓인 매버릭에게 또 한 번의 기회가 주어진다. ‘상위 1%의 조종사들을 훈련시키고 세계 최고의 조종사 탑건을 양성하는’ 탑건 훈련소 교관으로 복귀하라는 명령을 받은 것. 매버릭은 그렇게 젊은 날의 추억과 영광과 아픔이 녹아있는 훈련소로 돌아온다. 그런데, 이런. 그곳엔 오래전 세상을 떠난 파트너 구스(앤서니 에드워즈)의 아들 루스터(마일즈 텔러)도 있다. 매버릭에겐 테러 지원국의 우라늄 농축시설을 파괴하라는 목숨 건 미션만큼이나, 자신을 원망하는 루스터와의 관계 회복이 절실하다.

탑건 훈련소의 비화를 소개하는 오프닝 문구. 노을 진 활주로를 배경으로 전투기들이 이착륙하는 모습. 오프닝 신부터 오마주의 향연이다. 멈추지 않고 영화는 《탑건》의 주옥같은 오리지널 스코어 ‘탑건 앤섬(Top Gun Anthem)’과 ‘데인저 존(Danger Zone)’을 차례로 깔며 추억을 소환한다. 레이벤 선글라스를 쓴 매버릭이 가와사키닌자 오토바이를 타고 활주로를 미끄러지듯 질주하는 장면도 빠지면 섭섭하다. 이 모든 건 《탑건》을 극장에서 즐긴 탑건 세대만이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은 아니다. 토요 명화든, VHS 비디오든, 영화 정보 프로그램을 통해서든 《탑건》을 무의식적으로 잠시라도 접한 이들이라면 누구나 추억의 부스러기 하나쯤은 챙길 수 있다.

이야기는 새로운 게 없다. ‘필드로 돌아온 고수가 자기 멋에 취해 사는 자존감 강한 후배들에게 팀워크의 중요성을 가르치고, 종국엔 해결사로 나선다’로 요약되는 이야기는 익숙하고 복고적이다. 그러나 캐릭터 개개인의 개성이 톡톡 튀고, 편집과 액션 스타일이 유려한 덕분에 복고적인 것이 낡은 것이 아니라 불특정 다수 관객이 쉽게 소화할 수 있는 친근함으로 다가간다. 1편과의 연결성이 높지만, 1편을 다시 챙겨 보지 않더라도 충분히 이해할 만큼의 과거 회상 장면을 적절하게 녹여낸 것도 오락 영화로서의 장점이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탑건: 매버릭》의 한 장면ⓒ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탑건: 매버릭》 포스터ⓒ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탑건: 매버릭》 포스터ⓒ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전투 액션 시퀀스 등 볼거리 넘쳐

무엇보다 《탑건: 매버릭》은 ‘앙꼬 없는 찐빵’ 같은 영화들과 질적으로 다르다. 관객이 항공 액션 블록버스터에 기대하는 활력과 흥분, 스펙터클이 빵빵하게 들어차 있다. 상대 전투기를 정확히 포착해 격추하는 ‘도그파이트(dogfight)’ 액션에선 심박수가 자연스럽게 빨라지고, 2분30초라는 짧은 시간에 미션 완료를 위해 몇 톤 무게의 중력과 맞서는 파일럿들의 모습에선 손에 힘이 빡 들어간다. 특히나 영화 후반부 30분 동안 펼쳐지는 전투 액션 시퀀스는 공중전 액션의 교본으로 삼아도 될 정도로 정교하고 영리하게 구성돼 있다. 아드레날린을 한껏 뿜어내는 장면 앞에서 속으로 외치게 될지 모른다. ‘웅장함이란 이런 것이구나!’

그리고 이 두근거리는 공중 곡예에 스릴을 더하는 것은 아슬아슬한 상황을 견디고 있는 인간의 육체다. 톰 크루즈와 배우들은 혹독한 비행 훈련을 거쳐 실제로 전투기에 탑승했는데, 덕분에 중력으로 일그러지는 얼굴, 피가 한쪽으로 쏠리는 광경, 헉헉거리는 실제 숨소리가 초 단위로 생생하게 카메라에 포착된다. 배우가 관객의 쾌감을 위해 자신의 신체적 한계를 실제로 견뎌내고 있다는 인식은 자연스럽게 영화를 향한 몰입감을 높인다. ‘그린 스크린’ 앞에서 아무리 메소드 연기를 한다고 한들, 진짜가 전하는 사실감을 이겨내지는 못하는 법. 《탑건: 매버릭》의 탑승 만족도가 더 높게 다가오는 이유다.

영화 초반 매버릭은 후배들로부터, 그리고 시대로부터 퇴물 취급을 받는다. 실제로 시대가 많이 변했다. 냉전 시대 적대국과 싸웠던 파일럿들은 이제 기계 문명이라는 거대한 장벽 앞에 섰다. 아무리 날고 기는 매버릭이라도 시대의 흐름을 홀로 거스를 수는 없는 법. 그러나 매버릭은 여전히 인간의 힘을, 파일럿의 실력을 믿는다. “전투기를 파일럿이 모는 시대는 끝났어”라고 사형선고를 내리는 상사에게 매버릭은 말한다. “언젠가는 그럴지 모르죠. 그러나 오늘은 아닙니다(Not today).”

이것은 영화 밖 톰 크루즈의 행보와 겹치며 묘한 울림을 전한다. 아날로그가 힘을 잃고 그 자리를 매끈한 CG가 대체한 시대. 초능력을 지닌 히어로들이 영화시장에 군림하는 시대. 변화하는 시장 안에서 자신의 ‘부캐(부캐릭터)’인 이단 헌트(《미션 임파서블》)와 리얼리즘을 사수해온 톰 크루즈는 《탑건: 매버릭》을 통해 다시 한번 진짜가 지닌 울림을 전한다. 물론, 나이가 더 들면 톰 크루즈도 CG에 의존해야 할지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낫 투데이. 오늘은 아니다. 톰 크루즈는 여전히, 어쩌면 마지막까지 남을 리얼리티의 등불일지 모르겠다. 《탑건: 매버릭》이 이를 확인 사살한다.

ⓒ시사저널 최준필
ⓒ시사저널 최준필

한계를 모르는 남자, 톰 크루즈

1981년 데뷔한 톰 크루즈는 《탑건》으로 인기에 제트 엔진을 단 후, 지금까지 대중의 시야에서 단 한 번도 멀어진 적 없는 스테디셀러 배우다. 《7월 4일생》의 베트남 참전군인, 《어퓨 굿 맨》의 군법무관, 《파 앤 어웨이》의 서부 개척민 역할을 거치며 톰 크루즈는 ‘아메리칸 드림’을 대변하는 배우로 각인됐는데, 이후 《제리 맥과이어》 《아이즈 와이드 셧》 등 다양한 장르에 도전하며 배우로서의 활동 영역을 넓혔다. 그리고 1996년 《미션 임파서블》을 통해 평생의 동반자 같은 캐릭터인 이단 헌트를 만났고, 대역을 쓰지 않고 위험천만한 상황에 불나방처럼 뛰어드는 톰 크루즈의 극한 스턴트 연기는 6편까지 이어지며 그를 ‘한계를 모르는 남자’로 각인시켰다. 《미션 임파서블7》 촬영을 끝낸 그는 현재 8편 촬영에 들어간 상태. 이 와중에 나사(NASA)와 협력해 국제우주정거장(ISS)을 배경으로 한 액션 어드벤처 영화도 준비 중이라고 하니, 지구를 넘어 우주로 이어질 그의 무한 액션을 기대해 봐도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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