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생은 아우성인데 국회는 언제까지 공회전할 건가 [쓴소리 곧은 소리]
  • 이현출 건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한국지방의회학회 회장 (chunyg@sisajournal.com)
  • 승인 2022.06.25 10:00
  • 호수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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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수완박’ 땐 신속하게 열린 국회, 국민 생활 위기엔 손 놓고 있어
국회의장과 법사위원장은 양당이 나눠 맡는다는 약속 지켜져야

21대 후반기 국회가 개원한 지 한 달이 돼가지만 원 구성도 하지 못한 채 공전을 거듭하고 있다. 여야는 서로 네 탓 공방만 벌이고 산적한 민생현안을 내팽개치고 있다. 원 구성의 쟁점인 국회 법사위원장을 어느 당이 맡을 것인가를 두고 힘겨루기를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일단 법사위원장 문제는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는 법언을 따라야 한다. 민주당 출신이 국회의장을 차지하는 대신 국민의힘이 법사위원장을 맡는 게 상식이다. 더 좋은 대안이 있다면 그건 원부터 구성해 놓고 논의할 일이다.

국회 원 구성을 두고 여야 협상이 지지부진하면서 국회가 2주째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6월13일 국회 의안과 앞 복도에 처리되지 못한 법안 서류들이 수북이 쌓여 있다.ⓒ시사저널 박은숙
국회 원 구성을 두고 여야 협상이 지지부진하면서 국회가 2주째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6월13일 국회 의안과 앞 복도에 처리되지 못한 법안 서류들이 수북이 쌓여 있다.ⓒ시사저널 박은숙

원 구성 자체를 협상의 대상과 수단으로 삼는 나쁜 정치 관행

이처럼 원 구성이 지연되는 가장 큰 이유는 원내 정당 간 정치현안을 둘러싼 힘겨루기에서 국회 원 구성 자체가 협상의 대상과 수단으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국회는 국민의 대표자로서 민생을 챙겨야 함에도 국회 회의 진행을 위한 원 구성 자체를 협상의 대상으로 활용하는 것은 매우 잘못된 관행이다. 특히 다수결주의의 의사결정 원리가 적용될 경우 불리한 위치에 있는 소수당이 다수당을 정치적으로 압박하기 위한 수단으로 원 구성을 이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나, 이제는 다수당이 조건을 걸며 소수 여당을 압박하는 기현상을 보이고 있다. 이른바 검수완박 법안 처리에 보여준 신속함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국회는 원 구성 지연을 막기 위해 최초 임시회의 소집이나, 국회의장단 선출, 상임위원장 선출 및 상임위원 선임 등을 법정화하는 내용으로 국회법을 개정했다. 입법 공백을 막고자 국회 스스로 만든 법마저 어기고 있다.

20대 국회는 대선, 지방선거 등으로 실제 민생을 챙길 시간이 물리적으로 적었다. 이제야말로 코로나19로 휜 민생의 고통을 해소하고 세계적인 경제위기에 대한 처방을 제시해야 할 중차대한 시기다. 국회가 입씨름만 벌이며 공전을 거듭하는 사이 민생과 경제는 만신창이가 되고 있다.

연일 천정부지로 치솟는 유가로 화물차, 택시, 택배로 생계를 지탱하는 업계 종사자뿐만 아니라 전 국민적으로 고통이 확산되고 있다. 코스피는 2400선이 붕괴됐고 환율은 1300원을 넘어서고 있다. 미국이 기준금리를 연말까지 연 4~7%로 올린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세계 각국에서도 금리 인상이 줄을 이을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되면 경기가 급속히 위축되고, 기업의 실적 악화는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실적 추락은 투자·고용 부진, 가계 부실, 소비 침체로 이어져 종국적으로 경제를 불황으로 몰아넣는 악순환을 초래하게 된다. 경제 불황이 오면 서민들의 고통은 더더욱 심해진다.

눈을 밖으로 돌리면 미·중 패권경쟁의 격화 속에 야기되는 지정학적 위기, 북한의 끊임없는 핵 위협,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으로 유발된 세계적인 공급망 위기 등이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IMF 사태보다 더 어려운 위기가 올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경고가 줄을 잇고 있다. 우리가 이러한 위기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전통적 안보뿐만 아니라 남북관계, 경제, 산업 분야 등에서 우리나라의 장래에 미칠 영향은 매우 커진다.

 

국회 계류 법률안 1만1000건…유류세 인하, 임대차 3법 등 시급

이러한 중차대한 시기에 금융정책 사령탑인 김주현 금융위원장 후보자의 청문회는 언제 이루어질지 기약할 수 없는 상황이며, 코로나19 후속조치를 맡아야 할 김승희 보건복지부 장관 청문회는 청문 자체가 물 건너간 상황이다. 6월말 현재 국회에 계류된 법률안만 해도 1만1000여 건에 이른다. 보건복지위원회, 행정안전위원회 그리고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된 법률안은 1000건이 넘는다. 화물연대가 요구했던 안전운임제 일몰제 폐지 법안이나 임대차 3법, 유류세 인하 폭 확대 관련 법안도 여기에 묶여있다. 치솟는 물가, 유가, 금리로 인해 서민의 삶은 하루하루가 고달프다. 민생을 위한 국회가 하루속히 열려야 하는 소이가 여기에 있다.

이러한 갈등은 국회 상임위원장, 특히 법안 처리의 관문인 법사위원장을 누가 맡을지를 둘러싼 싸움 때문이다. 민주화 이후 역대 국회는 원 구성 자체가 엄청난 갈등의 장이었다. 민주화 이후에는 여야 협의에 의해 상임위원장직을 나누어 왔으나 21대 국회 전반기에는 상임위원장 배분에 여야가 합의하지 못해 다수당이 모든 상임위원장직을 독식하는 초유의 사태를 가져왔다. 차제에 국회 상임위원장 배분도 비례대표 선거에서 의석 배분 방식으로 활용되는 동트(D’Hondt) 방식을 원용하는 방안을 하나의 대안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 방식은 ‘1, 2, 3…’이라는 숫자로 득표수를 나누어 의석을 배분하는 방식인데, 이는 상임위원장 배분에도 원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의석수를 1, 2, 3…으로 나누어 크기에 따라 상임위원회를 순서대로 선택하자는 것이다.

제도적 대안보다 더 중요한 것이 국회의원들의 자성이다. 대의민주주의는 대리인인 국회의원이 주인인 국민의 목소리에 반응해야 하고, 결과에 따라 국민이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국회가 국민이 아파하고 힘들어하면 입법과 정책으로 반응해야 한다. 대리인의 활동과 성과가 주인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음 선거에서 그 책임을 물어 심판하는 제도다. 우리는 지난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에서 유권자들의 심판을 목도했다. 그런데도 국회는 여전히 당리당략에 몰두해 거대한 민심의 쓰나미를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 반응하지 않는 정치, 책임지지 않는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저항이 끓어올라 임계 수준에 이르기 전에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국민의 고통에 반응하지 않는 국회의원을 다음 선거에서 심판하려면 2년이나 기다려야 한다. 국민은 이제 단순히 세비 삭감을 요구하는 수준이 아니라 국회의원 정수 삭감을 요구하는 수준으로 분노가 비등하고 있다. 지난 촛불시위 때 요구한 국민소환이나 시민의회를 통해 기능하지 않는 대의기구를 대체하려는 시도가 또 일어날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현출 건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한국지방의회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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